◇ 생각 한 조각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아리마대 사람 2025. 6. 29. 02:13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벗어난 지 둘째 해의 일이다.

(민수기 10:11)
11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에 진을 쳤다.

(민수기 12:16)
16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진을 친 장소는 바란 광야의 가데스 혹은 가데스바네아라는 지역이었다.
 
(민수기 13:26)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민수기 32:8)
8 너희 조상들도 내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냈을 때에 그리 하였었나니
(신명기 1:19)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여기서 하나님은 각 지파에서 지휘관 한 사람씩을 차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명령하셨다. 12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꼼꼼하게 정탐했다.
 
(민수기 13:21-22)
21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그리고 그 땅이 어떤 곳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과일 샘플들도 준비해서 돌아온다.
 
(민수기 13:23)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돌아온 정탐꾼들은 과일 샘플들을 보여주면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아낙 자손을 비롯한 강한 거주민들을 보았다고 보고한다. 땅은 좋지만, 우리가 차지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말인 것이다.
 
(민수기 13:25-29)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이 말에 정탐꾼들 중의 한 명인 갈렙은 긍정적인 의견을 낸다.
 
(민수기 13:30)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러나 다른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어 말한다.
 
(민수기 13:31-33)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한다. 지난 두 해 동안 광야를 지나온 수고가 헛된 것이 되었고, 하나님을 믿고 모세를 따라 애굽을 벗어난 일이 헛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민수기 14:1)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갈 궁리를 한다. 
 
(민수기 14:2-5)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정탐꾼 대부분의 의견, 그리고 이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 모세와 아론의 처지를 보다 못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분연히 일어나 두려워하지 말 것을 외친다.
 
(민수기 14:6-9)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했다. 이 순간,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나셨다.
 
(민수기 14:10)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지독히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염병으로 전멸시키고자 하셨고, 모세는 서둘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구한다.
 
(민수기 14:11-19)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지독히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민수기 14:20-25)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에게 공식적으로 선포하신다.
 
(민수기 14:26-35)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
 
(민수기 14:36-38)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사족을 덧붙이자면, 모세로부터 하나님의 공식적인 선포를 전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말렸음에도 뒷늦게 가나안 땅의 사람들과 싸우겠다고 나섰다가 패하고 만다.
 
(민수기 14:39-45)
39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41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민수기에 기록된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벗어나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떠돌아다녀야 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애굽으로부터 가나안 땅까지의 거리는 시나이반도 북서쪽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경우에는 약 320km 정도이며, 고센지역에서 출발하여 이동하는 경우에는 약 640km 정도가 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비교해 보자면, 서울시청으로부터 경주시청까지의 거리가 고속도로 기준으로 340km 정도이고, 서울시청으로부터 나주시청까지의 거리가 고속도로 기준으로 320km 정도이다. 320km의 거리는 시속 2.5km/h 정도의 느린 걸음으로 하루에 8시간씩 걷는다면 16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고, 640km의 거리는 시속 2.5km/h 정도의 느린 걸음으로 하루에 8시간씩 걷는다면 32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한달 남짓한 여정에 불과한 거리를 40년 동안 떠돌아다녀야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반역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완악함과 불순종의 댓가로서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떠돌다가 단 한 명도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한 채 죽고 만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돌아와 보고할 당시에 그들의 보고를 함께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 결과로서 이처럼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 정탐꾼을 포함하여 20세 이상이었던 자들은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예외없이 모두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죽었지만, 그 미만의 나이였던 아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이다.
 
(민수기 14:26-33)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애굽을 벗어난 지 둘째 해에 20세 이상이었던 자들은 애굽을 벗어날 때에는 18세 이상의 나이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대략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광야를 지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시간이 지날 수록 줄어들었을 것이다. 광야에서 40년 이내에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출애굽 당시를 기준으로 18세의 연령대는 58세가 되기 전에 모두 사망했고, 출애굽 당시를 기준으로 19세의 연령대는 59세가 되기 전에 모두 사망했고, 출애굽 당시를 기준으로 20세의 연령대는 60세가 되기 전에 모두 사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애굽을 벗어날 때에는 18세 미만의 연령대는 평균수명이 다시 늘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18세 이상이 되면 생각이 굳어버리고 좀체 순종하지 않는다는, 좋지 않은 의미에서 성인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당시에 20세 미만이었던 아이들을 생각해 보자.
애굽을 벗어난 지 둘째 해에 20세 미만이었으면 애굽을 벗어날 때에는 18세 미만의 나이였다. 18세 미만의 나이에 아직 생각이 굳어버리지 않은 아이들이 경험한 것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었다.
 
(출애굽기 13:20-22)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구름 기둥은 낮에 백성들의 길을 인도했고, 불 기둥은 밤에 백성들을 비추었다. 흔히 구름 기둥은 한낮의 뙤약볕으로부터 백성들의 가려주었고, 불 기둥은 한밤의 추위로부터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었다고 얘기되곤 하는데...
 
민수기 1장에는 레위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들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남자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
 
(민수기 1:18-19)
18 둘째 달 첫째 날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인 남자의 이름을 자기 계통별로 신고하매
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민수기 1:45-46)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아주 단순하게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나이대의 레위 지파의 숫자를 위의 총계의 평균(603,550÷12)인 50,296명으로 가정하면,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나이대의 모든 이스라엘 남자의 숫자는 653,846명이 된다. 또 다시 단순하게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나이대에 해당하는 모든 이스라엘 여자의 숫자도 이와 같다고 가정하고, 이십세 미만과 고령자 등 움에 나갈 만한 나이대에 해당하지 않는 이스라엘 남녀의 숫자도 이와 같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출애굽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숫자는 1,961,538명이 된다. 거의 200만명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 기둥은 기둥 윗부분이 쟁반의 형태를 취해야 하며, 쟁반의 면적은 200만명의 사람들을 덮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좁은 면적에 서있는 경우 0.5㎡의 면적을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쟁반은 총 1,000,000㎡의 면적을 가져야 하며, 이는 축구장 면적 7,140㎡를 기준으로 할 때, 축구장 140개의 면적이 되어 기둥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구름기둥이 한낮의 뙤약볕으로부터 백성들의 가려주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한 불기둥이 200만명의 사람들 중 불기둥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사람들에게까지 열을 전해주었다고 생각하면, 불기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람들은 그 열로 인해 견디기 어려웠을 것임을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불기둥이  한밤의 추위로부터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밤낮으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번갈아가며 보았다는 사실이다. 즉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기적이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경험하는 기적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애굽을 벗어나자마자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에는 태어나서부터 40년 간 매일의 일상 속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기적을 경험했다. 물론,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도 태어나서부터 줄곧 매일의 일상 속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기적을 경험했다.
이 아이들은 애굽의 생활을 전혀 몰랐고, 광야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래서 애굽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전혀 없었을 것이고, 광야생활에 대해 불만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밖에 몰랐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서 일상 속에서 더 이상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그들에게는 낯설지 않았을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볼 수 없게 된 일이 그들에게는 기적이 아니었을까?
 
애굽을 벗어날 때 18세 미만의 나이였던 아이들...
생각이 굳어버리지 않은 상태였던 아이들...
애굽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지니지 않았던 아이들...
광야생활에 불만이 없었던 아이들...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없었던 아이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기적이 일상이었던 아이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이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께서는 '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2-4)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그리고 이에 덧붙여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는 말씀하셨지만, 적어도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는 혹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18세 미만의 아이들을 떠올리시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래디컬"이라는 책의 "하나님은 속수무책으로 주님의 탁월한 섭리에 기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즐겨 쓰신다"라는 구절을 언급한 적이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18세 미만의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이 구절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속수무책으로 주님의 탁월한 섭리를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을 즐겨 쓰신다"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탁월한 섭리를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항상 눈으로 보고 일상에서 경험함으로 인해서 그 사실에 일말의 의심조차 없고, 그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어린 아이와 같은 그런 모습이 되고 싶다.
다만, 그것이 혹시 광야에서만 가능한 일인가 싶어 인지부조화를 겪는 나의 초라함을 실감하는 것도 사실이다...
 
※ 인지부조화: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의 믿음이나 가치와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감이나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강력한 믿음을 지니기를 바라면서도, 그 믿음을 얻기 위해 광야로 나가야 한다면 주저하는 상반된 심리상태가 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