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편
'설교의 황태자' 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찰스 스펄전 목사(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는 시편 131편을 가리켜 '가장 읽기 쉬운 시이면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시' 라고 말했다. 전체 3절에 불과한 짧은 시이고, 내용도 어렵지 않지만, 이 시의 말씀대로 삶을 살기는 매우 어렵다.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My heart is not proud, O LORD, my eyes are not haughty; I do not concern myself with great matters or things too wonderful for me.
여호와여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다짐한다.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중심에서 "교만"이 시작된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 속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교만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것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했던 사람의 속성인 것이다.
(창세기 3:5)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아니하고"는 살아가면서 결코 행하지 않겠다는 1절의 첫 번째 다짐이다.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 눈"이 통로가 되어 내 마음의 교만이 "오만"한 모습으로 외부로 표출된다. 이는 마음에서 시작된 교만이 눈을 통해 외부로 표출되는 경로를 나타낸 것이다. 이 오만은 시기와 질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니하오며"는 살아가면서 결코 행하지 않겠다는 1절의 두 번째 다짐이다.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눈이 오만하지 않은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다.
(시편 1:1)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교만과 오만을 멀리하는 사람은 패망하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잠언 16:18)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는 행위는 마음의 교만이 눈을 통해 오만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이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는 행위이고, 그 이유는 자신이 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교만이고, 나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만이다. 이것은 바벨탑은 쌓으려 했던 행위와 같다.
(창세기 11:4)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런 행위의 결과는 결국 패망하고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교만과 오만으로부터 시작하여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쓸 때,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은 '꾀'이다. 꾀는 사람이 제 힘, 제 지혜에 의지하는 행태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부터 멀어지는 시작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이루려는 본성이 있다. 예전 중학교 영어교과서를 참고하면, 사람은 식욕, 성욕 등의 원초적 욕구 외에 '위대해지려는 욕망 a desire to be great'을 지니고 있으며,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정욕과 자랑의 유혹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1서 2:16)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일을 이루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 맡길 때에만 일은 이루어진다.
(잠언 16:3)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정욕을 위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루어져서도 안된다.
(야고보서 4:3)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이 모든 것의 출발은 마음의 교만이다. 1절은 교만을 멀리하겠다는 다짐으로 볼 수 있다.
"아니하나이다"는 살아가면서 결코 행하지 않겠다는 1절의 세 번째 다짐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But I have stilled and quieted my soul; like a weaned child with its mother, like a weaned child is my soul within me.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실로"는 앞의 내용에 대한 긍정이자 확신을 의미한다.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눈이 오만하지 않으며,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고 있음을 확실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내 영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의 고요와 평온을 말하고자 한다.
"고요하고"는 스스로의 노력을 멈추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평온하게 하기를"은 누군가가 마음을 격동시키더라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것은 1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만과 오만과 스스로 크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현실의 상황을 초월하여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겠다는 하박국의 마음과 같다.
(하박국 3:17-19)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시인으로서 다윗은 전적으로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마음의 상태를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 아기에 비유했다. 젖을 떼고, 밥을 배불리 먹은 아이는 부족한 것이 없고, 근심이나 염려가 없으므로 어머니의 품에 평안하게 안겨있는다.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젖 뗀 아이'에 비유하였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을 나타낸 겸손한 표현이자 하나님의 품 안에서의 평안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린 자식에 자주 비유하셨다.
(신명기 1:31)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사야 46:3-4)
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이사야 49:15)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호세아 11:1)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것이 '안식'의 의미이기도 하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O Israel, put your hope in the LORD both now and forevermore.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개인의 다짐의 기도가 이스라엘 공동체로 확대된다.
"자금부터 영원까지"는 '언제나 항상'을 뜻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교만과 오만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며 평안하기를 노래하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