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생각해 보았던 대로 거짓말은 '거짓'에 관한 말, 곧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댄 말'로서 말의 표현과 이해의 과정에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훼손이 발생된 말이다. 애초에 있지 않았던 것을 말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보편타당하지 않은 이해와 해석을 가리킨다.
범죄의 유래가 된 에덴동산 사건의 과정에는 뱀의 거짓말이 있었고, 이 과정에는 마귀가 개입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가리켜 진리에 서지 못한 존재, 거짓을 말하는 존재,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44)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실 거짓말은 자연스럽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자신의 사고와 언어능력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정확히 표현하는 참말이 자연스럽고, 또한 쉬운 일이다. 참말이 아닌 것을 참말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서는 참말에 대한 훼손이 필요하며, 이는 사고와 언어능력에 대한 부가적인 부하와 함께 양심에 대한 강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연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곤한 일이다. 물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는 거짓말에 수반되는 피곤에 비하면 무시할 만 한 정도이다.

이런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참말에 대한 훼손, 곧 사실에 대한 왜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목적은 과정과 방법이 드러내고 있듯이 정당성을 갖추기 어렵다.
그렇다면 거짓말이 나쁜 이유는 그 목적의 정당성이 나쁘기 때문일까?
거짓말이 나쁜 이유는 그 목적이 무엇이든, 그 목적의 정당성의 여부와 무관하게 '의도된 목적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다. 이는 참말이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 따른 흐름을 바꾸어 의도된 결과를 얻으려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도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의도된 결과를 얻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행위를 "꾀"라고 한다.
단순하게 보자면, "참말이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 따른 흐름"의 결과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결과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고, "꾀"를 부리는 행위는 이의 반대, 곧 사람이 일을 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그분의 뜻에 따라 그분의 일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가 만들어내려는 행위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하는 행위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으로부터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존재가 담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곧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 참말로서 존재하는 상황이 필요로 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곧 그 거짓말에 기반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한 사람은 거짓말의 세상을 만들어낸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소위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창조자가 되는 셈인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생각한다면, 진리에 서지 못한 존재, 거짓을 말하는 존재,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본래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이사야 14:13-14)"라고 생각했던 존재, 그래서 마귀를 통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5)"라고 하와를 유혹했던 존재, 곧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대적했던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거짓말은 그런 것이다. 참말을 훼손시킨 거짓말을 통해 왜곡된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존재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거짓말이 참말로서 존재하는 가상현실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행위는 진리에 서지 못한 존재, 거짓을 말하는 존재,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인 마귀와 한 통속이 되는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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