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27권이 배열된 순서는 어떤 일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신서의 경우 개인보다는 교회에 보낸 서신이 우선이고, 분량이 많은 순서대로 배열했다는 점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신약 전체에 걸쳐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배열된 순서대로 성경을 읽는 것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특별히 바울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에 효과적이지 못하며 성경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본 뜻을 왜곡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신약 27권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14권이 사도 바울과 누가를 통해 작성되었다는 점은 신약성경을 읽는 순서에 상당한 통찰력을 줍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신실했던 동역자 누가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을 전도할 때 이들 성경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발자취를 좇아가면서 말씀을 읽으면 보다 생생한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복음서는 지금의 배열된 순서대로 읽어도 무난합니다. 다만, 저술된 순서와 내용을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저술된 복음서는 마가복음입니다. 가장 먼저 저술되었기 때문에 마가복음은 가장 간단하고 짧습니다. 이 복음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한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곧 예수님의 행적과 이적들,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단순하게 기록한 듯한 특징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인자"의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마태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이 저술되었습니다. 마가복음보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저술된 이 두 권의 복음서는 마가복음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들 외에 예수님의 말씀이 더해져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설교 말씀'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왕으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왕국에 관해 배울 수 있도록 모세오경과 유사하게 5개의 주제로 설교가 정리된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록하였으며,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율법과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면서도 율법과 분리되고 있으며,누가복음은 이방인 저자가 기록했다는 특징이 묻어납니다.
4복음서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책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깊이 묵상한 결과로서 기록된 책이며,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들이 입체적으로 모두 합쳐져야 예수님의 모습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외부인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말과 행동,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을 객관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세 권의 책들은 공통된 관점에서 쓰여지다보니 구성과 내용, 표현방법과 문체 등에 있어서 상호 유사성이 크기 때문에 '공관복음'이라고 불립니다. 요한복음은 가까운 내부인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과 본질을 기록했습니다.
저술의 대상 측면에서 볼 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습니다. 요한복음은 저 유명한 3장 16절 때문에 초신자들에게 많이 권해지지만, 실은 이미 믿음을 가진 이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흔들림없는 믿음을 갖고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한 책입니다.
(요한복음 20:31)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와 같은 구절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구약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구약을 가장 많이 인용한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나타나 있으므로 구약과 연계하여 4복음서를 읽을 때는 배열된 순서대로 읽어도 무난합니다. 또는 저술된 순서와 시점에 따라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순서로 읽어도 됩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기록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읽는 것이 유익합니다.
사도행전의 전반부는 유대인을 향한 사도인 베드로가 주인공이며, 후반부는 이방인을 향한 사도인 바울이 주인공입니다. 베드로는 12장까지 등장하며, 바울은 9장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이때부터 이방인 선교를 시작합니다. 즉, 9장부터 12장까지는 유대인 선교 이야기와 이방인 선교 이야기의 교집합이며, 유대인 선교와 이방인 선교가 겹쳐지면서 전환되는 지점입니다. 10장에 기록된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 고넬료 이야기는 이러한 전환을 명확하게 보여주며, 또한 환상을 통해 베드로의 고정관념이 깨어짐을 보여줌으로써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확보합니다.
12장까지는 순서대로 그냥 읽어도 됩니다만, 이후에는 바울의 일생과 그의 사역을 연결지어 읽으면 크게 도움이 됩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에 속한 서신서들의 주요 저자이자, 1세기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닦은 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자로서 시작해 회심한 후 이방인의 사도로서 순교했습니다.
바울의 히브리어식 이름은 '사울'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에만 등장하는 이름이며, 바울 자신이 쓴 서신서에서는 라틴어식 이름 '파울루스'의 그리스어식 표기인 '파울로스'를 사용했습니다. 이 이름은 현대 그리스어로는 '파블로스'라고 하며, 라틴어 파울루스는 영어권의 남성 인명인 '폴'의 어원입니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 소속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A.D. 5년경 길리기아 지방의 중심도시인 항구도시 다소에서 출생했습니다. A.D. 1~2년경 혹은 A.D. 9~10년경 출생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정확한 시기는 알기 어렵기 때문에 대략 이 시기에 출생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출생 지역과 연대로 미루어 보아 바울은 로마제국의 시민권이 있었다고 추측되며, 이에 관한 간접적인 기록으로서는 선교 활동 중에 유대 민족과의 충돌로 로마군에 체포되었을 때 자신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라고 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2:25-29)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29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또한 바울은 자신의 유대 혈통을 부정한 적이 없으며, 게다가 그가 이른바 다메섹에서 회심하기까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에 앞장섰다는 점으로 미루어 그의 유대인 혈통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바울은 다소에서 성장했으며, 대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했습니다. 이 시기 바울이 나이는 10~15세 무렵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당시 선진적인 그리스 철학은 물론, 정통 유대교의 율법학에도 능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서를 읽어 보면 그의 철학과 율법학이 매우 뛰어난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2:3)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엄격한 바리새파로 활동했던 바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박해하는데 있어서 선봉에 섰습니다.
(빌립보서 3:5)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그러한 행위 중 대표적인 것이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된 스데반의 순교 당시 유대인 측의 증인으로 선 것입니다. 이 때는 A.D. 32년경, 바울의 나이 27세 무렵입니다. 바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바울의 열성적인 박해 탓에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각처로 뿔뿔이 흩어지자 그는 흩어진 기독교인들까지 추적해 잡아들이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일을 언급하며 자신이 주위 사람들보다 유대교를 과하게 믿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13-14)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간 때는 A.D. 33년경, 바울의 나이 28세 무렵입니다.
(사도행전 9:1-2)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바울이 A.D. 5년경 출생했다고 생각하면, 사도행전 9:3-20에 나타난 대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시기는 대략 A.D. 33년경으로 생각되며, 이때 바울의 나이는 28세 무렵입니다.
(사도행전 9:3-5)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회심한 바울은 '즉시로'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9:18-20)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이후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낸 때는 A.D. 34~36년경 그의 나이 29~31세 무렵입니다.
(갈라디아서 1:15-17)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이 아라비아는 다메섹 동남부의 아라비아 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며, 여기서도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증거하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계교를 피해 탈출한 사건이 사도행전과 고린도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9:23-25)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고린도후서 11:32-33)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아레다는 나바테아 왕국의 여러 통치자들의 이름으로서 여기서 언급된 인물은 아레다 4세 아에니아스입니다. 아레다 왕은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장인이었지만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과 억지로 이혼하자 마침 국경 분쟁 문제도 뒤엉켜 있던 상황에서 헤롯에 대적하여 군대를 파견할 기회를 잡았고, 아레다 왕의 군대는 헤롯을 물리쳤습니다. 헤롯은 로마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황제 티베리우스의 죽음으로 인해 수리아 총독 비텔리우스 장군이 이끌던 로마 군대의 출정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을 피해 달아난 때가 이 무렵이었습니다. 아레다 4세가 언급되어 있는 이 시기는 아레다 왕이 로마 제국 측으로부터 다메섹의 통치권을 이양받은 A.D. 37년부터 아레다 왕이 죽은 A.D. 40년 사이로 좁혀집니다.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바울은 A.D. 37년경, 32세 무렵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15일 동안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납니다.
(갈라디아서1:18-19)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처음에는 바나바 외에는 아무도 바울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바울의 회심을 이야기해 줍니다.
(사도행전 9:26-27)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그 후, 바울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위치한 고향 다소로 돌아갑니다.
(사도행전 9:28-30)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갈라디아서1:21)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거기서 A.D. 37~45년경, 32~40세까지 8년 정도의 기간을 지냅니다. 8년 후,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갑니다.
(사도행전11:25)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그리고,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옵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40~41세의 기간 동안, 1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1:26)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사역을 시작하기까지 적어도 1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아가보가 예언했던 천하의 큰 흉년으로 말미암아 부조를 걷고 이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한 때는 바울의 나이 41세 무렵입니다.
(사도행전 11:27-30)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부조를 전달하는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가를 데리고 왔습니다.
(사도행전 12:25)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제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사도행전 13장부터는 지도를 펴 놓고 그 행로를 짚어 가면서 읽으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의 무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사도행전 13-14장에 걸쳐 기록된 1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1차 전도 여행의 기간은 약 2년 반 가량이었으며, 이 때 바울의 나이는 41-44세였습니다.
1차 전도여행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차 전도여행을 마쳤을 때, 이방인의 할례 문제와 바울의 사도적인 권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사람들(할례당)로 인해서 큰 다툼과 변론이 일었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 및 디도 등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며, 이에 대해 바울은 14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1)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바울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일치하여 가결한 결론, 즉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하고 율법적인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편지를 얻어 가지고 다시 안디옥으로 와서 편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44-45세의 기간인 약 2년 간 안디옥에서 머물게 됩니다.
(사도행전 14:26-28)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그리고, 바울은 주의 말씀을 전했던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기 위하여 2차 전도여행에 오르게 됩니다.
사도행전 15:36-18:22에 걸쳐 기록된 2차 전도여행의 기간은 약 3년이었으며, 이 때 바울의 나이는 45-48세였습니다.
2차 전도여행에서 주목할 사실은 일생을 동역하게 될 사람들을 만난 일들입니다. 바울이 만난 사람들을 대략 정리하면, 디모데, 루디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아볼로, 오네시보로, 두기고 등의 인물들과 교제하면서 동역하였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아마도 아시아(아스(동쪽)+이아(땅)=헬라의 동쪽 땅)를 목적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므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6)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에서 심한 중병에 걸린 듯 합니다.
(갈라디아서 4:13)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때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이는 바울에게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감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온전치 못한 몸을 이끌고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성령이 허락지 아니하므로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누가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행전 16:7-8)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드로아는 당시 의과대학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버가모와 가까왔고, 바울은 여기에서 좋지 못한 몸을 치료받기를 소원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과 누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고, 누가는 복음을 접하고 개종하여 평생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성령에 이끌려 마게도냐로 들어갔습니다.
(사도행전 16:9-10)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 빌립보에서 수일을 유하면서 두아디라성의 자주장사인 루디아와 함께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점하는 여인의 귀신을 쫓아냈다가 옥에 갇혔는데, 실라와 함께 옥중에서 기도하고 찬미할 때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고,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구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31)”는 선언을 남겨주었습니다.
바울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세 안식일, 즉 3주를 머무르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였으나, 유대인들에게 쫒겨 베뢰아와 아덴으로 가게 됩니다.
이 때 유대인들의 심한 방해와 핍박, 아덴에서의 복음전파의 실패로 인하여 바울은 심히 낙담했습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1년 6개월 동안을 체류하며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에도 핍박과 환난에 시달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음에 많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덴에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내 그 근황과 형편을 살피게 하였는데,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온 디모데가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6)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에 바울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곧 있을 예수님의 나라에 대해 문서선교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문서선교 제1호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의 내용이 곧 임박하는 예수님의 강림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이에 대한 해명으로 데살로니가에 두 번째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후서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2)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의 서두에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들은 2차 전도여행에 참여했던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쓰여졌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8장 11절까지 읽은 후에는,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를 같이 읽습니다.
다시 사도행전 18장 12절로 돌아옵니다.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왔지만 그곳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남기고, 자신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교보고를 한 후, 안디옥으로 돌아와 제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합니다. 2차 전도여행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3차 전도여행(사도행전 18:23-)의 기간은 약 5년이었으며, 이 때 바울의 나이는 48-52세였습니다.
3차 전도여행에서는 이미 개척된 갈라디아 교회들의 형편을 살피면서 서쪽으로 나아가 에베소에서 약 3년 정도 체류하게 됩니다.
바울의 사역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처음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정도의 사역을 했지만,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점점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사역 기간이 길어지는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때,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2년 동안 가르치므로 역사상 최초의 신학교를 세우게 되기도 합니다.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이 기간 동안에 애착을 가지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여러 가지 문제를 듣게 되어 이에 대한 해명과 답변을 고린도 교회에게 보내게 됩니다.
분파문제, 패륜아(아버지의 첩을 데리고 사는 아들)에 대한 경계, 성도 간의 송사로 불신자 앞에서 재판하는 문제, 결혼문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의혹, 두건 문제, 주일 낮 예배 후의 애찬이 시들해진 것, 은사 문제, 부활과 헌금 문제 등 교회 문제와 신학 문제가 불거진 것에 대한 답변을 서신으로 보낸 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계속된 의혹, 바울의 외모에 대한 판단, 어눌한 말솜씨에 대한 트집, 독신으로 지내는 모양에 대한 트집, 사례비에 대한 비난, 담력이 부족하다는 폄훼, 약속을 안지킨다고 비난, 못생긴 사람에 대한 판단, 질병문제 등으로 다소 격한 어조로 보낸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에 보낸 편지는 고린도전후서를 통틀어 살펴볼 때 적어도 4통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 이전에 먼저 보낸 편지가 있었음을 고린도전서 5장 9절, 13절에서 알 수 있는데,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권면하는 편지였던가 봅니다.
이에 따라 “음행하는 자들”에 대한 해석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로 오해되어 세상에서 불신자와의 교제에 혼란이 야기되었는데, 그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이란 불신자를 말함이 아니라 교중 사람들 중에 음행하는 자들을 가리키며, 교중 사람들 즉 믿는 사람들 중에 음행하는 자들과는 사귀지 말고 교중에서 쫓아내라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9-13)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그리고,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가 작성되었습니다.
이후, 바울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도전과 외모에 대한 판단, 어눌한 말솜씨, 사례비에 대한 비난, 약속을 안지키는 우유부단한 사람...등등의 음해가 있으므로 고린도에 직접 방문하여 이를 해명하고자 했으나 고린도 교회가 맞아주지 않으므로 에베소로 다시 돌아와 눈물로써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이 별도의 다른 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위의 편지를 보내고서는 바로 후회를 했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주를 따라하는 말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감정의 절제가 없이 씌여진 편지였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가 실족할 것이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드로아로 가서도 전도도 못하고 디도를 만나기 위해 마게도냐로 가서야 비로소 디도를 만났습니다.
(고린도후서 2:12-13)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걱정한 바와는 다르게 디도를 통해 보낸 서신에 의해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바울에게 동역하기로 하므로 그 기쁨과 감사로 권면의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고린도후서 1장~9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는 10장~13장을 먼저 읽어야 1장~9장 내용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18장 12절부터 19장 20절까지 읽은 후에는,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부터 9장 순서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사도행전 19장 21절로 돌아옵니다.
바울은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소동 가운데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는 마게도니아(고린도후서 1장부터 9장까지를 기록한 곳)를 거쳐 고린도에 와서 3개월간 체류하면서 로마 교회에 로마서를 기록하여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이었던 뵈뵈라는 자매에게 들려서 로마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9장 21절부터 20장 3절까지 읽은 후에는 로마서를 읽어봐야 합니다.
다시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올라가서 마침내 아시아의 관문이었던 드로아에서 한 주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여 가르치고는 (유명한 유두고 사건이 있었던) 밀레토스에 와서 에베소 지방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작별하고, 그 길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3차 전도여행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환영은 고사하고 체포되어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4:23)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그 때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 약 2년 동안 구금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4:27)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이 때 바울의 나이는 52-54세였습니다.
항상 그림자처럼 바울 곁에서 동역하던 누가는 이 때에 비로소 바울 곁을 잠시 떠나 여기저기 다니며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및 그 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누가복음서를 쓸 자료를 철저하게 수집하였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이용하여 가이사의 재판을 받겠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호송된 때는 A.D. 59년 8월이었으며, 이때 바울의 나이는 54세였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도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항해 도중에 있었던 고난들이 바울의 사역을 돕게 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로마까지의 4차 전도여행의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울은 55세가 되던 A.D. 60년 봄에 로마에 도착합니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감옥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셋집에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짐작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바울의 호송을 맡았던 백부장 율리우스의 배려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결수라도 일단 구치소나 감옥으로 보내지는 것이 상식인데 바울은 감옥이 아니라 자신의 셋집에 머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8:30-31)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때 바울은 에베소, 골로새, 빌립보 교인들과 골로새의 빌레몬에게 각각 편지하는데, 이 서신들이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를 가리켜 옥중서신이라고들 하지만, 감옥은 아니고 2년 간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울의 나이 55-56세 기간 동안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때에 시간을 얻은 누가는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정리하여 기록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0장 4절부터 끝까지 다 읽으신 후에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로 오는 길에서 약 6개월, 로마에서 2년... 이렇게 연이어 약 4년 반 내지 5년이라는 기간 동안 바울은 활동이 제한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로마를 본 후에는 스페인까지 가려고 했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스페인이 땅 끝일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스페인에 복음이 전파되면 말씀대로 주님이 강림하리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4:14)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나 바울은 로마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 세상이 상상했던 것보다 크고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스페인이 아니라 오히려 에베소, 골로새, 그리고 마게도니아 아가야 지방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미 개척해 놓은 교회들을 굳게 세우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사실은 셋집)에서 잠시 풀려났던 것 같습니다. 이 때가 바울이 57세, A.D. 62년무렵이었습니다.
바울은 57-61세의 약 4년간 그레데, 밀레도, 에베소, 드로아, 마게도냐, 니고볼리로 이동했습니다.
그길로 바울은 그레데로 왔고, 거기에 디도를 떨어뜨려 두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일행과 함께 에베소에 왔습니다. 에베소는 이미 아시아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번 여행이 마지막 여행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베소 와서는 디모데를 거기 머물게 하고 자신은 골로새, 히에라볼리스, 그리고 드로아를 거쳐서 마게도니아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마게도니아 교회들과 그 외 여러 교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시험과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고, 각 지방 각 교회마다 교회를 다스릴 장로들과 집사들을 세우면서 교회를 조직화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 중 이 내용으로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가 디모데전서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레데에 있는 디도에게도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옥중서신을 읽으신 후에는 디모데전서, 디도서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후에 바울은 디모데를 제외한 모든 동역자들을 니고볼리로 모이게 했고, 거기서 과동하면서 마지막으로 큰 집회를 가지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A.D. 66년 늦은 봄, 61세의 바울은 니고볼리에서 집회를 준비하는 도중에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 진짜로 투옥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더 이상 자기의 수고와 사역이 허락되지 않음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마치 유서와 같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때에 쓴 편지가 디모데후서입니다.
이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언과 같은 서신입니다.
그 후 바울은 네로 황제에 의하여 참수되었고, 그 때는 A.D. 67년 6월경, 그의 나이 62세였습니다.
그러므로 디도서를 읽은 후에 디모데후서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서신을 다 읽은 후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읽으시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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