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출애굽기 3:13-15)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또는 '야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발음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유대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는 계명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면 '나의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로 읽거나 '이름'이라는 뜻의 '하솀' 등으로 읽었다고 한다. 따라서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은 전해지고 있지만 정확한 발음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출애굽기 20:7)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위와 같이 네개의 히브리 문자로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을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maton)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네개의(tetra) 글자(grammaton)이라는 뜻인데, 우리말로는 이해하기 쉽도록 '神名四文字'로 번역되어 있다.
히브리 문자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는데, 첫 글자인 י는 Yud, 두번째 글자인 ה는 Heh, 세번째 글자인 ו는 고대에는 Waw, 현대에는 Vav로, 그리고 마지막 글자인 ה는 다시 Heh로 읽는다. 로마자로 바꾸면 YHWH 또는 YHVH, 혹은 JHWH 또는 JHVH 등으로 표기할 수 있다.
히브리 문자는 모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음만으로 기록된 테트라그라마톤의 정확한 발음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테트라그라마톤에 여러가지 언어학적 추론에 따른 모음 부호가 합쳐져서 오늘날 '여호와'라는 발음이 받아들여졌다. 일찌기 독일이 히브리어를 풀면서 독일식으로 발음되어 여호와가 되었다고 하며, 또는 나의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나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로힘'의 모음이 합쳐져서 '여호와'라는 발음이 구성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정확하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히브리 문자는 상형문자이다. 그래서, 각각의 글자는 고유한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테트라그라마톤의 네 글자도 각각의 뜻을 지니고 있다.
첫 글자인 י(Yud)는 '손'의 의미가 있고, 두번째 글자인 ה(Heh)는 '창문'의 의미로부터 '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으며, 세번째 글자인 ו(Waw 또는 Vav)는 '못'의 의미가 있고, 마지막 글자인 ה(Heh)는 다시 '보다'의 뜻이 있다. 따라서, 테트라그라마톤의 글자는 '손을 보다, 못을 보다'라는 의미가 되며, 좀 더 표현을 다듬으면 '손을 보아라, 못을 보리라' 또는 '손을 보면 못이 보인다'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알려주셨는데, 그 이름을 기록하는 글자들은 '손을 보아라, 못을 보리라'라는 뜻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뜻은 창세기 3:15 말씀에서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과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 그것은 뱀이 여자의 후손의 손에서 못을 보게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뜻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인류 구원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담고 있다.
(마태복음 1:21)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자의 후손, 곧 성령으로 잉태된 여자가 낳는 아들의 이름은 예수이고, 이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써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며, 뱀은 그의 발끔치를 상하게 함으로써 그의 손에서 못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손을 보았을 때, 못을 보게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내며, 그 일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 혹은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하나님께서 태초에 예비하신 구원의 계획이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 테트라그라마톤에 새겨져 있으며, 이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음을 사도들의 기록을 통해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처음으로.
(출애굽기 6:2-3)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모세 이전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믿음의 사람들인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전능의 하나님'을 알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이, 야곱이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마치 그들이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 아브라함(아브람)의 경우
(창세기 12:7-8)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 이삭의 경우
(창세기 26:22)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26:25)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 야곱의 경우
(창세기 28:13)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세기 28:16)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이미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알려주시기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의 부분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려 주신 후에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하나님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로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기록된 것은 그들의 역사를 기록한 저자가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무의식적으로 기록할 만큼 하나님의 이름에 너무나 익숙했음을 의미하고, 이는 저자가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과 매우 친밀했음을 의미한다.
성경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창세기 1:1 말씀부터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창세기 2:3 말씀까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 곧 여섯째 날까지 하늘과 땅과 사람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기까지의 기록에는 '하나님이' 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창세기 2:4 말씀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이'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창세기 2:4-6)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세기 2:4 이후의 창세기 2장의 기록은 아담을 만드시고 하와를 만드신 일, 그리고 에덴동산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의 기록은 뱀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이 담겨 있다. 창세기 2:4 말씀부터 창세기 3장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사용되지만, 창세기 4장에서는 '여호와'라는 호칭이 일관되게 사용된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의 출생, 가인의 살인, 가인의 후손들, 그리고 셋의 출생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창세기 5장부터는 '하나님'과 '여호와'라는 호칭이 함께 사용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섬세하고 정교한 역사를 볼 수 있다.
창세기 1:1부터 2:3까지의 하나님(엘로힘)의 이름은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창세기 2:4부터 3장까지의 여호와 하나님(여호와 엘로힘)의 이름은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죄를 지어 죽게 된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준비하시는 구세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창세기 4장의 여호와의 이름은 죄 가운데서 세대를 이어 살아가는 죄인들을 구원하실 구세주 하나님, 인간들의 삶을 매우 밀접하게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
창세기 1장부터 4장까지의 기록은 하나님이 끝이 없는 우주를 질서 가운데 창조하신 광대하신 창조주이신 동시에, 믿기 어렵게도, 사람을 만들고 그들을 보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광대하신 창조주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이다.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닫는다면, 욥과 같이, 다윗과 같이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욥기 7:17)
17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시편 144:3)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창세기 1장부터 4장까지의 기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엄밀한 기록을 볼 때에, 이를 기록한 사람은 '손을 보아라, 못을 보리라'라는 테트라그라마톤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단순히 테트라그라마톤의 의미를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구속의 역사의 방법론임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와 같은 엄밀함을 적용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이와 같이 기록했다면, 그것은 이를 계획하고 이루실 분의 지시에 따라 받아쓰기 하듯 기계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창세기 1-4장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시기에,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며 테트라그라마톤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사람이 기록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잘 알려졌을 수도 있다.
요한복음에는 위에서 언급된 논의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 일이다.
(요한복음20:19-20)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때, 함께 있지 않았던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자신이 직접 확인하겠다고 말한다.
(요한복음20:24-25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팔일 후에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던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20:26-29)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때, 도마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은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는 것이었다. 이중에서 특별히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라는 말씀은 도마의 말, 곧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에 대한 허락이자 증거이다.
도마의 말과 예수님의 말씀은 테트라그라마톤의 의미와 동일하다. 도마가 손가락을 통해 예수님의 손, 그리고 그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겠다고 말한 것은 테트라그라마톤을 확인하겠다는 의미로 읽히며, 예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심으로써 그 분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증거하셨다. 그래서, 도마의 대답이 "나의 주님이시요"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까지 고백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왜 기록되었을까?
(요한복음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그 중의 일부인 "오직 이것을 기록"하였다. 많은 표적 가운데서 일부만을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요한이 도마의 말과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인 것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도마와 더불어 요한도 테트라그라마톤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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