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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유다서

유다서 1장

아리마대 사람 2017. 1. 18. 11:04

유다서는 25개 구절 중 최소 15개의 구절이 베드로후서 2장 및 3장과 겹친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 곧 거짓 선생, 거짓 선지자 등 교회에 해를 끼치는 자들을 다루고 있는 내용 측면에서 유사하고, 또한 그런 자들에 대한 설명과 비유가 유사하며, 유사하거나 동일한 용어를 사용해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논박하는 것을 볼 때, 유사한 상황 하에서 같은 이단을 염두에 두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다서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잘못과 특성이 무엇이며, 그들의 최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이단들이 잘못된 진리를 전파하고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에 따라 물질은 부정한 것으로 보았고, 이에 따라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으로 보았던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은 인정하였으나 완전한 인성은 부정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육신을 부정하는 이단교리인 가현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가현설은 그리스도가 물질인 육체없이 태어났으며, 십자가 수난은 모두 환상이라고 주장했고, 그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부정했다. 이처럼 오직 영만 중요하다는 입장은 육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으로 이어져 극단적 금욕주의로 가거나 혹은 극단적 쾌락주의로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단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자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사라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성적 방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유다는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이단들을 경계하고 타협없는 거룩한 싸움을 이어나갈 것을 독려하기 위해 유다서를 기록하게 되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다서가 먼저 기록되었다고 하므로 베드로후서가 유다서의 영향을 받고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유다서 1장 ************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Jude, a servant of Jesus Christ and a brother of James, To those who have been called, who are loved by God the Father and kept by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야고보, 요셉, 시몬과 함께 자랐다.

(마태복음13:55)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마가복음 6:3)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유다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은 후 이제는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바울, 베드로 및 자신의 형제인 야고보와 같은 자기소개이다.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야고보서 1:1)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베드로후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는 가족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요한복음 7:5)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활동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도행전 1:14)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여기서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의 형제', 유다’로서 표현하고 있으며, 이처럼 3개씩 나열하는 표현 방식은 유다서의 특징이다.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다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큰 권위를 인정받았고 영향력이 있었으므로, 유다가 예수님을 제외하고 가장 큰 형인 야고보를 언급하며 자신을 소개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유다가 형제들 중에서 가장 어리다는 점도 형인 야고보를 언급한 데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유다는

편지의 발신자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편지의 수신자는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이를 설명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은 이 편지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것임을 나타낸다. 즉 이 편지는 수신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은 공동서신이다.

수신자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는 않으나 본문에 애굽, 소돔과 고모라, 천사장 미가엘, 모세, 가인, 발람, 고라, 아담의 칠대손 에녹 등 구약의 내용이 풍부하게 등장한다는 점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지키심을 받은'이란 표현의 헬라어 원형은 '테레오'이며,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심판의 날까지 택하신 자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이 서신이 복음의 진리로부터 벗어나게 만들려는 영지주의 이단들을 경계하고 바른 진리를 붙잡도록 교훈하기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쓰여진 것임을 생각할 때, 성도는 영생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진리 가운데에서 지키기에 힘써야 할 것임을 나타내는 있는 것이다. 이는 뒤에 6절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언급함으로써 대비시켜 더욱 선명해진다.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Mercy, peace and love be yours in abundance.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편지의 인사말이다.

'긍휼'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평강'은 히브리어 '샬롬'에서 온 유대식 인사로서 '완전한 용서와 완전한 화해를 통해 사랑을 이룬 평화'를 가리킨다.

'사랑'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는 '긍휼'과 더불어 유다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긍휼', '평강', '사랑’과 같이 3개씩 나열하는 표현 방식은 유다서의 특징이다.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필요하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Dear friends, although I was very eager to write to you about the salvation we share, I felt I had to write and urge you to contend for the faith that was once for all entrusted to the saints.

사랑하는 자들아

이는 1절에 기록된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편지에서 언급되는 악한 자들과 대비되는 호칭이다.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일반으로 받은 구원'이란 사도와 교회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구원의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 있는 구원을 가리키는 동시에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이 행하실 종말론적 구원을 가리킨다. 

원래 유다는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진 '일반으로 받은 구원'의 은혜에 관한 편지를 작성하려고 했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편지를 쓰게된 직접적인 목적이다. 본래의 예정했던 편지의 기록 목적을 급하게 바꾸어 '힘써 싸우라'는 말을 반드시 전해야 할 정도로 영지주의 이단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긴급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말은 '믿음의 도를 바르게 지키기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힘써 싸우다'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에파고니조마이'로서 '다투다', '격렬하게 싸우다'라는 뜻이 있다. 본문에서 사용된 시제를 적용하면 영적인 싸움을 '매순간 끊임없이 싸우다'로 직역할 수 있다. 즉 유다는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영지주의 이단들과 지속적으로 싸워 나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힘써'라는 말은 온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로서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으며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의미이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객관적 은혜의 사실에 멈무르지 말고, 그 믿음을 현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치열하게 지켜 나가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For certain men whose condemnation was written about long ago have secretly slipped in among you. They are godless men, who change the grace of our God into a license for immorality and deny Jesus Christ our only Sovereign and Lord.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본래 생각했던 '구원에 관한 편지'에 대한 계획을 긴급히 변경하여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쓰게 된 까닭이 바로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 때문이다. 이들은 1절에 기록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에 '가만히' 드러나지 않게 들어와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이단들이다. 유다서는 이런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와 이런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바르게 살도록 권면하고, 이단을 향해 경고와 강한 정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가만히 들어온'은 직역하면 '그들은 이미 몰래 들어왔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고전 헬라어에서 어떤 악한 것이 조용히 비밀리에 침투하는 것을 표현할 때 쓰였다. 이들은 사도들의 권위를 경멸하고, 율법의 폐기를 주장하며, 육체적인 방종을 일삼고, 교회를 미혹하여 무너뜨리려 하였다. 기독교 공동체가 외부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에는 성도들이 더욱 단결하고 더욱 강해져서 오히려 교회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지만, 공동체 내부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르침은 점차적으로 교회를 붕괴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 유다서는 문체가 매우 역동적인 것은 이와 같은 자들에 관해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유다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에 대해 매우 엄하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이며,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통해 이들이 이단을 끌어들이는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들은 옛적부터 존재했으나 결국 멸망하게 될 자들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후서 2:1-3)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그들이 받게될 판결의 결과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0:13-14)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유다서에서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에 대해 '경건하지 않다'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다.

(요한복음 9:31)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따라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며, 이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들로서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초기 영지주의(proto-Gnosticism)’적 요소를 지닌 이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영지주의는 한마디로 신플라톤주의를 기본 철학으로 하여 그 위에 잡다한 사상들을 마구 뒤섞어 놓은 이단이며, 형태나 양식에 있어 다양한 부류가 존재했다. 유다서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적 이단은 그런 여러 부류 중 특별히 육체와 관련한 도덕무용론에 가까운 ‘방탕 영지주의(libertine Gnosticism)’적 요소를 강조했던 자들로 추정할 수 있다.

영지주의 이단들은 영과 육을 철저하게 분리하였고, 영적인 것만이 중요하고 육체란 악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육체적 방탕은 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육체를 어떻게 사용하던 구원과 관계가 없고, 방탕하고 부도덕하게 사는 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성도들을 미혹시켰다. 또한 이신득의의 교리를 왜곡하여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무조건적 용서가 있으므로 더 이상 율법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영지주의자들은 영과 육을 철저하게 분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신, 즉 그분의 완전한 인성을 부정했다. 그리스도의 육신을 부정하는 이단교리인 가현설은 그리스도가 물질인 육체없이 태어났으며, 십자가 수난은 모두 환상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부정했으며, 하며 재림과 심판도 부정했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요한1서의 말씀은 이와 같은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요한1서 2:22-23)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주장의 형태는 이단과 사이비이며, 또한 다원주의나 종교통합이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장, 참된 진리는 하나지만 그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또 다른 구원의 길들이 있다는 주장,  지구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종교가 연합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나타나고 있다.

'경건하지 아니하여',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과 같이 3개씩 나열하는 표현 방식은 유다서의 특징이다.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Though you already know all this, I want to remind you that the Lord delivered his people out of Egypt, but later destroyed those who did not believe.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유다는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한다. 이것은 강조의 의미인 동시에 심각한 경고의 의미이다. 또한, 이것은 유다가 편지를 쓸 당시의 성도들에게 전한 말씀인 동시에 오늘날 유다서를 읽는 성도들에게도 전하는 말씀이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행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는 영지주의 이단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성도라면 이미 알고 있을 내용이지만,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세 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교훈을 전한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이것이 첫번 째 사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칭하셨으며,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내셨다.

(출애굽기 3:7-10)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구원을 받고 애굽으로부터 탈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민수기 14:21-23)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민수기 14:26-30)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수기 14:35)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며 애굽 땅에서 기사와 이적을 통해 인도해내시고 종살이를 면하게 하신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불평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 곧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순종하지 않고 원망하며 거역하였을 때, 그들은 '결단코' 가나안 땅을 보지 못했고, '반드시' 광야에서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And the angels who did not keep their positions of authority but abandoned their own home-these he has kept in darkness, bound with everlasting chains for judgment on the great Day.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이것이 두번 째 사례이다.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는 천사들의 이야기가 낯설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충분히 인식되고 있었던 내용이다. 그렇기에 유다는 5절에서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내용의 일부는 이사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사야에는 사탄의 범죄가 기록되어 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으로 불렸던 사탄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나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리를 높이고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며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다.

(이사야14:12-14)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또한, 이러한 마음을 품은 사탄을 따르며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 있었다.

(요한계시록 12:9)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천사들은 심판 때까지 결박되어 흑암에 갇히게 되었다. 베드로후서도 이를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2:4)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아침의 아들 계명성'으로, 또한 '두로 왕'이라고 칭해진 사탄은 본래 하나님께서 지혜가 충족하며 아름답다고 칭찬하셨던 존재이다.

(에스겔 28:12-14)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그러나, 불의가 드러났을 때, 사탄은 하나님의 산으로부터 쫓겨났고 땅에 찍히고 말았으며, 사탄을 쫓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천사들도 결박되어 흑암에 갇혔음을 기억해야 한다.

(에스겔 28:15-16)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이사야 14:12)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여기서 '가두셨으며'의 헬라어 원어는 '테레오'이다. 1절에서 '지키심을 받은'이란 말도 헬라어 원형이 '테레오'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보호하시고 지키시지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은 흑암 속에서 심판의 날까지 단단히 가두어지는 것이다.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In a similar way, Sodom and Gomorrah and the surrounding towns gave themselves up to sexual immorality and perversion. They serve as an example of those who suffer the punishment of eternal fire.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이것이 세번 째 사례이다.

소돔과 고모라 주변에는 아드마와 스보임이 있었다. 

(창세기 10:19)
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동맹을 맺은 것처럼 함께 행동하였으므로 '이웃 도시들'은 아드마와 스보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14:1-2)
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소알도 소돔과 고모라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롯이 그리로 도망한 덕분에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꾼(4절) 자들의 행위와 같다.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질 때부터부터 소돔 사람은 이미 하나님 앞에 악한 죄인이었다.
(창세기 13:13)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의 죄악은 주변으로 번져서 고모라를 비롯한 이웃 도시들도 또한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 심히 무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창세기 18:20)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직접 보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셨다.

(창세기 18:21)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두 천사가 직접 소돔을 찾아갔으며 롯을 만났다. 

(창세기 19:1)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롯의 집을 방문한 두 천사는 소돔 사람들의 죄악을 직접 목도하게 되었다. 그곳은 음란이 일상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음란'의 헬라어 원어는 강조의 의미를 가진 접두어 '에크'와 포르노의 어원으로서 간음을 행한다는 의미의 '포르뉴오'의 합성어인 ‘에크포르뉴오’이다. 이 단어는 단순한 간음의 상태가 아니라 비상식적인 성적결합도 불사하는 혐오스러운 간음에 푹 빠져 있는 타락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성적 타락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심각한 범죄 행위이다.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단순히 직접적인 원인은 그 지역에 의인 10명이 없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음란의 결과로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셔서 그 지역을 멸하셨다.

(창세기 19:24-25)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이 지역은 본래 땅 속에 역청이 많은 지역이었다.

(창세기 14:10)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따라서, 유황과 불이 하늘로부터 비같이 내렸을 때, 그 지역은 완전히 멸망되었다.

본래 소돔과 고모라가 위치한 지역은 마치 에덴동산이나 애굽 땅과 같이 비옥한 지역이었다.

(창세기 13:10)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나, 그 죄악으로 인한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들렸을 때, 그리고 그 지역에 의인 10명이 없었을 때,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과 유황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거울이 되었느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셨고, 베드로후서, 그리고 이곳 유다서에서도 언급되며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받는 멸망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 세가지 사례는 모두 공통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의 결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한 사건들이다.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In the very same way, these dreamers pollute their own bodies, reject authority and slander celestial beings.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꿈꾸는 이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헛된 주장을 하는 자들로서 4절에 기록된 '가만히 들어온,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다.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들이 헛된 사상과 주장에 빠져있기 때문이거나, 무아지경 속에 빠져 신과 접촉했다고 주장하거나, 신비한 체험을 내세우며 방탕함에 빠져 살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행위가 애굽에서 구원받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한 자들과 같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자기 지위와 자기 처소를 떠나 영원히 결박되고 흑암에 갇힌 천사들과 같으며, 육체를 더럽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과 같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행위가 심판을 받은 자들과 같으므로, 이들의 최후는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와 같이 3개씩 나열하는 표현 방식은 유다서의 특징이다. 


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But even the archangel Michael, when he was disputing with the devil about the body of Moses, did not dare to bring a slanderous accusation against him, but said, 'The Lord rebuke you!'

천사장 미가엘이

미가엘이라는 천사의 이름은 다니엘서(다니엘 10:13, 10:21, 12:1)에 등장하며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 '군주', '큰 군주' 등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천사장 미가엘이라는 기록과 관련해서는 비정경적인 유대 문학인 에녹서라는 위경으로부터 천사들의 이름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에녹서에는 대표적으로 미가엘, 라파엘, 가브리엘, 바누엘 등의 천사들의 이름이 나타나 있다.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구절은 현재의 자료로써는 정확하게 증명할 수 없지만 초대교회의 교부 도리게네스에 의하면 '모세승천기'라는 위경에서 인용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모세의 시체를 소유하는데 있어서 천사장 미가엘과 사단이 논쟁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미가엘은 사단을 비방하는 대신 하나님께 판결을 맡긴다. 미가엘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사단의 권세가 컸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만 재판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Yet these men speak abusively against whatever they do not understand; and what things they do understand by instinct, like unreasoning animals-these are the very things that destroy them.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9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천사장도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인정하는데,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며 짐승들과 같이 본능을 따라 음란을 행하여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의 행위는 멸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Woe to them! They have taken the way of Cain; they have rushed for profit into Balaam's error; they have been destroyed in Korah's rebellion.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화 있을진저'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실 때 사용하셨던 표현이다. '가만히 들어온, 경건하지 않은 자들'도 동일하게 화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의 성품과 행위가 기본적으로 가인, 발람, 고라와 같은 죄인의 길을 따르기 때문이다.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

(창세기 4:3-5)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이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함을 참지 못했던 대상은 아벨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었다. 가인은 결국은 동생을 분함의 대상으로 삼아 동생을 불러내어 쳐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범죄를 모두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아벨의 행방을 물어보실 때 하나님을 속이려는 듯이 참으로 뻔뻔하게 대답하였다. 

(창세기 4:8-9)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은 하나님께 분을 내었고, 동생에 대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육체를 더럽혔고, 하나님의 질문에 뻔뻔하게 대답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업신여겼다. 가인의 길은 분노의 길이다.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민수기 22-24장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모압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에게 재물과 명예를 약속하며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부탁한다. 발락은 모압왕의 초대에 응했으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세 번이나 축복한다. 발람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압왕에게 여자들을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미혹하라고 권고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과 우상숭배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염병으로 이만 사천 명이 죽었다(민수기 25:1-9).

(민수기 31:15-16)

15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16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은 발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버가모교회에 대한 말씀에도 나타난다.

(요한계시록 2:14)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의 어그러진 길에 관해서는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참고하여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후서 2:15-16)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나귀가 말을 하기까지 했던 것은 발람의 길이 옳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자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민수기22:32-33)
32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발람의 길은 탐욕의 길이다.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고라의 사건은 민수기 16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민수기 26장은 이 사건에 관해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민수기 26:9-10)
9 엘리압의 아들은 느무엘과 다단과 아비람이라 이 다단과 아비람은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니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여호와께 반역할 때에
10 땅이 그 입을 벌려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고라는 무리를 지어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여호와께 반역을 했다. 민수기 16장에는 이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민수기 16:1-3)
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고라는 야심찬 사람이었고, 자신도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에 모세와 아론을 질투하였던 것이다. 이는 사탄이 품었던 욕심과 교만과 동일한 것이다.

(이사야 14:13-14)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사탄의 마지막은 스올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는 것이다.

(이사야 14:15)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고라의 무리도 동일한 마지막을 맞이하고 멸망했다.

(민수기 16:32-33)
32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33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고라의 길은 야심으로 인한 패역의 길이다.


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These men are blemishes at your love feasts, eating with you without the slightest qualm-shepherds who feed only themselves. They are clouds without rain, blown along by the wind; autumn trees, without fruit and uprooted-twice dead.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가만히 들어온,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교회 공동체 내에서 함께 먹고 어울리며, 표면적으로는 위험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관계를 통해 친밀하게 다가오지만, 실은 이들은 가인, 발람, 고라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며, 그 성품과 행위가 분노와 탐욕과 야심으로 가득찬 자들이다. 따라서 매우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암초,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물 없는 구름, 열매 없는 가을 나무 등의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4절에서 이자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이며,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라고 정의했다. 여기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복된 표현과 정반대의 비유를 사용하여 이자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 묘사는 베드로후서 2장에 기록된 묘사와 매우 흡사하지만, 훨씬 더 과격하다.

(베드로후서 2:17)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교회 공동체에 끼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They are wild waves of the sea, foaming up their shame; wandering stars, for whom blackest darkness has been reserved forever.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바다의 거친 물결, 유리하는 별들 등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Enoch, the seventh from Adam, prophesied about these men: 'See, the Lord is coming with thousands upon thousands of his holy ones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아담으로부터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을 거쳐 에녹에 이른다.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에녹은 예언자였고, 어쩌면 최초의 예언자였다. 에녹이 65세에 낳은 아들의 이름은 므두셀라였다.

(창세기 5:21)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죽음'이라는 뜻의 므두와 '가져오다'라는 뜻의 셀라가 합해진 이름으로서, '그의 죽음이 가져오다', 곧 '그가 죽으면 발생한다'라는 뜻이 된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고 죽었다.

(창세기 5:25-27)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그의 손자 노아는 600세였으며 이 해에 홍수가 일어났다. 

(창세기 7:11-12)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홍수가 일어난 날짜는 정확하게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의 둘째 달 열이렛날이었다. 어쩌면 므두셀라가 사망한 날은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의 둘째 달 열엿새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녹이 이와 같이 무드셀라의 이름을 지은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와 같이 독특하고 정확한 이름을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에녹은 심판을 예언한 예언자로 생각할 수 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후부터 15절까지의 내용은 비정경적인 유대 문학인 에녹서라는 위경으로부터 인용한 내용이다. 에녹서에는 이와 같은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에녹서는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라는 구절을 바탕으로 후대(중간기)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유다도 에녹서를 읽었고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to judge everyone, and to convict all the ungodly of all the ungodly acts they have done in the ungodly way, and of all the harsh words ungodly sinners have spoken against him.'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부패한 자들에 대하여 4절에서 사용한 '경건하지 않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4차례에 걸쳐 사용함으로써 이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부패한 자들의 '경건하지 않음'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뭇 사람에 대한 심판의 기준이 '경건'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심판의 때에는 경건한 자와 경겅하지 않은 자가 양과 염소처럼 구분될 것임을 나타낸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행위는 주를 거슬러 완악한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이들의 말을 통해 경건하지 않음이 판단될 것이다.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These men are grumblers and faultfinders; they follow their own evil desires; they boast about themselves and flatter others for their own advantage.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15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의 행위와 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을 설명하고 있다. 원망, 불만, 정욕, 자랑, 아첨과 같은 것들이다.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But, dear friends, remember what the apostles of our Lord Jesus Christ foretold.

사랑하는 자들아

이는 1절에 기록된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편지에서 언급되는 악한 자들과 대비되는 호칭이다.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이는 사도들이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 관해 미리 전해준 가르침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사도들에게 미리 가르쳐 주셨다.

(마가복음 13:21-23)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They said to you, 'In the last times there will be scoffers who will follow their own ungodly desires.'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17절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며, 여기서는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것이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의 내용이다.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These are the men who divide you, who follow mere natural instincts and do not have the Spirit.

이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사람들은 행위는 11절과 16절을 참고할 수 있다. 11절에서는 그들이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했다. 곧, 그 성품과 행위가 분노와 탐욕과 야심으로 가득찬 자들이다. 또한 16절에서는 그들이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이고,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자'라고 표현했다.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열등감이나 소외감, 시기와 질투, 고집과 교만, 다툼 등이 분노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교회 공동체 내에서 가인과 같이 분노하며 원망하고 불만을 토하는 자들은 분열을 일으킨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고 분노한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결국 동생과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사람들을 피해 떠돌아 다니는 자가 되고 말았음과 같다.

육에 속한 자며

마음이 탐욕과 야심으로 가득찬 자들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절제할 줄 모르며 세상을 따라 육신의 정욕대로 행한다. 

(요한1서 2:16)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성령이 없는 자니라

육신을 따라 정욕대로 사는 자는 성령의 일들을 모르기 때문에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않고 성령을 따르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2:14)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교회 공동체 내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육에 속하여 음란을 전하고 성령이 없는 자가 늘어난다면, 교회 공동체는 깨어질 수 밖에 없다.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But you, dear friends, build yourselves up in your most holy faith and pray in the Holy Spirit.

사랑하는 자들아

이는 1절에 기록된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편지에서 언급되는 악한 자들과 대비되는 호칭이다.

여기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다양한 거짓 가르침에 맞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굳건하게 세우고 지킬 수 있는지에 관해 설명한다. 세 가지의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며, 여기서 '사랑하는 자들'로 언급된 사랑받는 자들은 이를 행해야 한다.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이것이 첫번 째 방법이다. 

거룩한 믿음을 지니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은 친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열어주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것들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친히 가르쳐주신다. 성령으로 기도할 때 이와 같은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성령이 없으므로(19절) 이와 같은 기도를 할 수가 없다.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Keep yourselves in God's love as you wait for the mercy of our Lord Jesus Christ to bring you to eternal life.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이것이 두번 째 방법이다.

성령으로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머물고 거하라는 것이다.

(요한1서 4:16)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머물고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삶이며, 이 삶이 어떠한 것인지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바와 같다.

(마가복음 12:28-31)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삶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며 사는 삶이다.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이것이 세번 째 방법이다.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렀음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고 실현되는 때는 최후의 심판의 때이다. 그때까지 믿음 안에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랑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구원받았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다양한 거짓 가르침에 맞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굳건하게 세우고 지키는 세 가지의 구체적인 방법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Be merciful to those who doubt;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긍휼히 여기며 사는 것은 교회 내에서 성도가 갖추고 살아야 할 덕목이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의심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않으시며, 예수님께서도 질문하는 자들에게 진리의 답을 주셨고 때로는 칭찬하기도 하셨다. 먼저 믿은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의심하는 자로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따라서 성도는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길과 진리이신 예수님과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만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한 '경건하지 않은 자들'로 인해 의심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먼저 믿고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선 자들이 해야할 일이다.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snatch others from the fire and save them; to others show mercy, mixed with fear-hating even the clothing stained by corrupted flesh.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성경은 불을 통한 심판을 강조한다. 그것은 악한 자들이 최후에 불 속으로 던져지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0:15)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경건하지 않은 자들'로 인해 의심하다가 믿음에서 실족하는 자들을 또한 긍휼히 여기고 심판의 불, 죽음의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는 것이 또한 성도의 할 일이다.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초대교회 당시의 영지주의는 이원론에 따라 영은 선한 것, 육은 악한 것으로 보았으며, 오직 영만 중요하다는 입장은 육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으로 이어져 극단적 쾌락주의로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단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성적 방종을 퍼뜨렸다. 육체를 극단적 쾌락주의의 도구로 생각하는 자들의 육체를 덮은 옷까지도 더러워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도는 그들의 주장과 그들의 행위를 죄악으로 인식하고 미워해야 하지만,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는 없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그릇된 길로 나아가는 자들의 최후에 대해 두려운 마음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긍휼히 여기며 사는 것은 교회 내에서 성도가 갖추고 살아야 할 덕목이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To him who is able to keep you from falling and to present you before his glorious presence without fault and with great joy-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하나님은 능히 성도를 보호하시고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성도들은 기뻐할 것이다. 이 표현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최종적인 모습을 요한계시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23-24)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to the only God our Savior be glory, majesty, power and authority,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before all ages, now and forevermore! Amen.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편지의 끝인사이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부를 찬송이다. 

아멘

매우 확실하고 의심할 바가 없다는 뜻이며,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올려짐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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