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삶의 모습

"사후 세계를 경험하고 난 후 달라진 사람"

아리마대 사람 2023. 1. 12. 19:00

돈 미겔 루이스,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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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진짜 완전한 죽음 너머의 세계는 아니고 죽음 쪽으로 넘어가는 문지방 어딘가쯤에서 육신으로 되돌아와 다시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우주를 향해 구름 위로 올라가다가 산소가 희박한 대기권 어딘가쯤에서 다시 지면으로 되돌아온 미완성의 우주비행처럼.
어릴 적부터 보아온 사후세계의 경험이라는 글들의 내용이 대개 이와 유사했기 때문에 이 경험은 신뢰할 만 하다고 양보할 수도 있고,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서 책으로 출판한 사람의 주장이니 신뢰를 기울여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이런 류의 글을 보며 크거나 작게 공감할 수 있고, 크거나 작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수련' 류의 글들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이런 류의 글들에는 본질과 궁극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당신은 이미 완벽하게 태어났다."
이 얼마나 설득력없고 뜬금없는 주장인가.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본인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망각의 기능에 의해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의 기억과 그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 점차 희미해져감을 새롭게 깨닫게 될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이 주는 깨달음을 나누겠다는 것은 얼마나 더 무모한 시도인가.
그런 깨달음이란 것은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한 사람 본인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책을 쓰고 알리려고 노력해도 다른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작고 일시적인 공감과 극히 작고 일시적인 깨달음뿐이다.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른 이에게 닿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삶의 본질과 궁극은 삶 속의 경험을 통해서는 발견하고 간직하며 살 수가 없다.

나는 삶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삶을 조망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 본질도, 궁극도,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조차 알 수가 없다.
혹시 누군가가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금새 빛이 바래져버리고 말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 자체가 너무나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본질과 궁극은 삶을 만드시고 부여하신 분께 묻는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삶 속에서 그 분을 찾아야 하고, 그 분을 향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죽음 너머의 세계로 넘어가는 문지방쯤에서 육신으로 되돌아와 다시 살아나는 정도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완전한 죽음 이후의 세계, 그 이후에 일어나게 될 일들을 안다면 도대체 얼마나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인가?
 
(히브리서 9:27)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경은 이미 이를 알려주고 있다.
자, 어디서 깨달음을 찾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깨달음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