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51장 ************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후, 나단 선지가 다윗에게 왔을 때 다윗이 지은 노래라고 한다. 사무엘하 12장의 때에 지은 노래일 것 같다.
(사무엘하 12:15-16)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Have mercy on me, O God, according to your unfailing love; according to your great compassion blot out my transgressions.
다윗은 자신이 죄악을 저질렀음을 고백하고 있다.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Wash away all my iniquity and cleanse me from my sin.
그리고, 자신의 죄악을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For I know my transgressions, and my sin is always before me.
자신이 죄를 저질렀음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죄악을 잊지 않을 것임을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Against you, you only, have I sinned and done what is evil in your sight, so that you are proved right when you speak and justified when you judge.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어떠한 벌을 내리시든지 달게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서 죄인인 자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Surely I was sinful at birth, sinful from the time my mother conceived me.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고백하고 있으며, 자신이 죄 중에서 잉태되었음까지 철저하게 고백하고 있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Surely you desire truth in the inner parts; you teach me wisdom in the inmost place.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Cleanse me with hyssop, and I will be clean; wash me, and I will be whiter than snow.
그리고, 자신의 죄를 께끗하게 씻으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Let me hear joy and gladness; let the bones you have crushed rejoice.
그래서,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기를 원하고 있다.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Hide your face from my sins and blot out all my iniquity.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pure heart, O God, and renew a steadfast spirit within me.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변화시켜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주시기를 구하고 있다.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Do not cast me from your presence or take your Holy Spirit from me.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자신에게 향하셨고, 따라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왔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모든 능력은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가능했음을 알고 있었다.
<<<나를 주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을 만났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여 부르신 것이다. 다만, 어떤 계기로 인한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윗은 하나님을 확신했고, 사랑했고, 동행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다윗이 사자와 곰으로부터도 양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였고, 이러한 체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다윗의 확신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사무엘상 17:37)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을 세우러 집으로 갔을 때에 7명의 형들은 모두 집에 있던 상황에서도 막내였던 다윗은 홀로 밖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다. 다윗이 사자와 곰으로부터도 양을 지켜내는 재주가 있었기에 그랬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재주가 있음이 알려지기 이전부터 이미 양을 치고 있었음이 명백하다. 다윗이 '어린' 이로서 아버지나 형들로부터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신데렐라 이야기를 참고할 때 형들과는 배다른 형제였을 수도 있으며, 어릴 적의 이러한 상황은 다윗의 기억 속에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었을 수가 있다.
(시편 69:8)
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아무튼 가정형편, 또는 가정 내 상황이 다윗에게는 시련이었고, 심히 상한 심령으로 들판에서 외롭고 고요하게 묵상하는 가운데에 (혹은, 목놓아 하나님께 외로움을 토로하는 가운데에) 하나님을 만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만일 그렇다면,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셨을 것이며, 다윗은 아버지 하나님의 손을 꼭 붙들고 살았을 것이다. 분명한 점 한가지는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믿음이 지극히 굳건했다는 점이다.
(사무엘상 16:1)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그러한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지켜보고 계셨으며,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세우셨다.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켜보셨으며, 그를 왕으로 세우기까지 기뻐하셨음을 알 수 있다.
(사무엘상 16:12)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라고 알려주셨다. 다윗을 택하시고, 사무엘을 집으로 보내시고, 다윗을 집으로 불러 기름을 붓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세심하게 알려주셨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고 챙기셨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왕이 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걸쳐 하나님께서 동행하셨음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큰 죄를 지었음을 깨달았고,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낮아진 다윗은 자신을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도록 간구한 것이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사무엘상 16:13)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는 말씀은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약 백이십 명에게 성령이 임하신 장면과 흡사하다.
(사도행전 2:2-3)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니,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는 말씀은 다윗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에 있어 담대해진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약 백이십 명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극적으로 변화하여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사도행전 2:14)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소리 높여 담대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은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윗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도 그러하였다. 기름부음을 받고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다윗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에 있어 담대해졌다.
(사무엘상 17:26)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심을 외쳤고, 또한 그로 인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음이 분명함을 담대히 외쳤다. 다윗은 골리앗의 모습을 보고, 골리앗의 말을 들을 때에 이렇게 외친 것이다. 이때에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도망치고 있었음을 볼 때,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한 다윗의 담대함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사무엘상 17:36)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한 다윗은 사울왕의 앞에서도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심을 선포했고,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음을 선포했다.
이와 같은 담대함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데서 비롯되었음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용기와 능력이 성령의 역사로부터 비롯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성령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성령을 거두지 마시도록 간구한 것이다.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Restore to me the joy of your salvation and grant me a willing spirit, to sustain me.
하나님께 용서를 받음으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간구한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기에 드릴 수 있는 기도이다.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Then I will teach transgressors your ways, and sinners will turn back to you.
다윗이 기꺼이 자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죄인들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Save me from bloodguilt, O God, the God who saves me, and my tongue will sing of your righteousness.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시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겠다고 다짐한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O Lord, open my lips, and my mouth will declare your praise.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찬양의 도구로서 혀, 입술, 입을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You do not delight in sacrifice, or I would bring it; you do not take pleasure in burnt offerings.
여기서 말하는 제사, 번제는 형식적인 절차로서의 제사를 가리킨다. 형식만 갖추면 된다는 생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아서 따르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로 이끌어가는 인본주의적 발상이다.
(마태복음 9:13)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7)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께서도 형식적인 절차로서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음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생각에 묶인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 곧 하나님 앞에 의미없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다윗은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라고 정확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미리 말하고 있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you will not despise.
제사 대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진정한 제사로 받아주시는 것은 바로 "상한 심령"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잊지 않으시고 돌아보신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죄가 죄임을 깨달을 때에만 가능한 마음이며, 자신이 죄악을 행한 죄인임을 깨달을 때에만 가능한 마음이다. 이 마음은 회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마태복음 3:1-2)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4:17)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그리고, 회개는 천국을 맞이할 준비과정이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말씀의 선포를 통해 사역을 시작하셨다.
평양대부흥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성령께서 새롭게 변화시키는 역사의 시작은 회개였음을 알 수 있다. 회개는 죄를 죄로 깨달아 고백하는 과정이며, 변화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고백과 변화의 역사로 구성되는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사람의 삶과 사회의 도덕과 가치규범이 변화되어 이 땅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로 변화하게 된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In your good pleasure make Zion prosper; build up the walls of Jerusalem.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벽을 쌓으시기를 노래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기를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새 예루살렘성을 노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Then there will be righteous sacrifices, whole burnt offerings to delight you; then bulls will be offered on your altar.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는 16절에서 말하는 "제사"와 17절에서 말하는 "상한 심령"이 모두 갖추어진 제사이다. 이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그리고, 18절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보면,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가 새 예루살렘성에서 드려질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밧세바와 간음한 사건으로 인해 다윗은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