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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시편

시편 23장

아리마대 사람 2017. 1. 18. 18:15

************ 시편 23장 ************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A psalm of David.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이 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는 것, 곧 여호와께서 나를 아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이 너무도 중요하고 의미있기 때문에, 오직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만족하며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뜻으로 발전할 수 있다.

-->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만으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설령 다른 것들이 결핍되더라도"

이 구절의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하박국 선지자가 노래하였다.

(하박국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러한 고백이 가능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 이루어짐을 알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루어지면 다른 것의 이루어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시니, 그가 나를 인도하실 것이며, 그의 인도를 따르가장 중요한 것, 곧 우리의 믿음의 최종목표가 이루어진다.

(베드로전서 1:9)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칭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비유일수도 있고, 정확한 호칭일 수도 있다.

만일, 단순한 비유라면, 이스라엘 땅에는 양과 목자가 흔했기 때문에, 시 속에서 양과 목자의 관계를 나와 여호와의 관계로 은유한 것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다른 비유를 사용할 수는 없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목자의 비유가 너무나 적절하기 때문에 사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만일, 정확한 호칭이라면, '나'로 표현된 화자, 또는 이스라엘 백성, 또는 임의의 독자에게 목자가 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봄으로써 화자가 가리킨 목자를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는 목자로서 지명되신 분, 또한 자신이 목자이심을 말씀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마태복음 2:6)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미가서 5:2을 인용한 말씀임)

(마태복음 26:31)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목자이시며, 이 목자는 곧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10:1-3)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한복음 10:10-11)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4-15)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 경우, 목자이신 여호와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위의 구절을 다시 살펴보면, 시편 23:1-2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7:16-17의 말씀과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7:16-17)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시편 23:1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7:17의 "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시편 23:1의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7:17의 "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생명수 샘으로 인도됨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니 이는 믿음의 결국은 이룬 것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시편 23:1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를 인도하시면, 목자가 양에게 가장 좋은 곳으로 양들을 인도하는 것과 같이 인도해 주신다. 양에게 가장 좋은 곳은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이다.

이 말씀은 시편 23:1절의 말씀에 이어서 요한계시록 7:16-17의 말씀과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7:16-17)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시편 23:2의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7:16의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시편 23:2의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7:16의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라는 말씀과 상통한다.시편 23:2의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으로부터 요한계시록 7:16의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을 유추할 수 있다. 물 가의 풀밭은 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며, 따라서 이 곳에서는 쉽게 그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상으로부터 시편 23:1-2과 요한계시록 7:16-17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으며, 매우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비유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요한계시록 22:1-2에서는 시편 23:1-3말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22:1-2)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나님께서 생명수의 강이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리켜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노래했다.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있으므로 '(2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노래했다.또한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한 것임을 가리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고 노래했다.시편 23:2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있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의의 길'에서 '길'은 본래 수레바퀴 자국을 의미한다. 이것이 길로 표현된 것은 그만큼 좁은 길이라는 의미이다. 의의 길이 좁다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가르쳐 주신 바이다.

(마태복음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목자가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적은 '자기 이름'을 위함이다. 의의 길, 곧 영혼의 구원의 길의 마지막에서 목자의 '자기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3:12)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14:1)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무엇보다도 요한계시록 21-22장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이들은 그 분의 이름을 가지고 있게 된다.

(요한계시록 22:1-4)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이를 통해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음과 보좌를 중심으로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는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참고할 때, 의의 길을 따라 갈 때,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길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새 예루살렘의 길이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위의 논의에 근거하면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는 목자의 인도를 따르는 경우의 최종 목적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목자를 따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존재한다. 이는 정확히는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를 가리킨다. 위의 논의를 이어갈 때,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인 새 예루살렘은 빛이 충만한 곳이다.

(요한계시록 21:23-25)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요한계시록 22:5)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햇살이 비치는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와 대비되는 음침한 곳, 또는 여정이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매우 악하고 양에게 해를 끼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주님께서는 양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분명하게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를 믿는 믿음만 잃지 않으면 두려움없이 담대히 지날 수가 있다.

주님께서는 지팡이와 막대기를 지니시고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신다.

(요한계시록 2:26-27)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요한계시록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주님께서 쓰시는 '지팡이와 막대기'는 요한계시록에서 '철장'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만국을 다스리는 데에 사용되는 것이다. 곧 만국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될 수 있으나, 주님께서 그들로부터 지켜주심이 명백하다.(요한계시록 19:19-21)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는 각각 지팡이는 긴 것, 막대기는 짧은 것을 가리키는데, 본래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짧은 것 다음에 긴 것의 순서로 등장한다. 즉, '막대기와 지팡이'가 원문의 정확한 순서이다. 

 

요한계시록을 참고할 때, 시편 23:4는 예수그리스도의 승리를 가리킨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일찌기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택하신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사무엘상 16:12-13)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라는 말씀은 곧 왕으로 택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앞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면, 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망의 움침한 골짜기를 지난 사람의 머리에는 기름이 부어지며, 이는 그가 왕이 되고, 영광과 존귀를 지닌 자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0:4)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요한계시록 21:24-27)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리고, 그들은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수가 있다. 또한, 이들에게는 생명수 샘물이 주어지는데, 이는 액체를 담는 그릇인 '잔'에 넘치도록 주어진다. 이렇게 주어질 수 있는 까닭는 '값없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1:6-7)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시편 23:5은 새 예루살렘성에서 주어지는 생명수의 풍성함을 노래한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Surely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주님을 가리킨다. 이는 임마누엘을 가리킨다.

내 평생은 글자 그대로 육신의 생명을 갖고 사는 동안의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환난의 시간일수도 있으며, 또한 새 예루살렘에서의 영생일수도 있다. 그 어느 시간에도 목자이신 주님은 함께 하신다. 이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으며, 이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여호와의 집,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이르러 영원히, 세세토록 살게 된다.

(요한계시록 22:5)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시편 23:6은 새 예루살렘성에서의 영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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