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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을

하나님의 이름: 구원의 능력

아리마대 사람 2019. 5. 12. 00:46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라고 알려주셨다.

 

(출애굽기 3:13-15)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려주셨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알려주지 않으셨던 이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알았고, 그래서 '전능의 하나님'이심은 알았지만 그분의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출애굽기 6:2-3)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창세기 12:7-9)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세기 13:3-4)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21:32-34)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이삭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창세기 26:23-25)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야곱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간 지명을 만들었다.

 

(창세기 28:18-19)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세기 32:30)
2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세기 33:20)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5:6-7)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창세기 35:14-15)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에 대해 하나님과 관련된 지명을 붙인 경우는 '벧엘', '브니엘', '엘엘로헤이스라엘', '엘벧엘' 등이다. 이로부터 야곱이 하나님을 '엘'로 칭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전능의 하나님을 '엘'로 알고 있었으며, 칭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야곱과 관련한 기록은 '하나님'이라고 나타나 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관련해서는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나타나 있으니, 아브라함과 이삭도 하나님을 '엘'로 칭하였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동시대를 살았음을 생각할 때 모두가 동일한 호칭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도 몰랐던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을까?

 

창세기 4장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고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가인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된 이야기와 이후에 태어난 가인의 후손이 기록되어 있다.

 

 

 

가인의 후손에 관한 기록의 특징은 "(누구)가 (누구)를 낳고..."의 방식으로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인의 5대손인 라멕의 때에 이르러서는 특징적으로 좀 더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가지는,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창세기 4:19)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담에게는 아내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고백한 하와뿐이었다. 하나님께서 다른 여자를 더 만들어 주셨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 태어난 가인의 후손들에 관해서는 아내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라멕의 때에 이르러서는 그가 아다와 씰라라는 두 아내를 맞이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아마도 처음으로 두 아내를 맞이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만일 그렇다면, 라멕은 최초로 일부다처제를 시작한 사람이 된다. 또는, 그가 두 아내를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또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창세기 4장의 기록으로는 확인할 바가 없다.

또 한가지는, 라멕이 아내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창세기 4장에는 그가 두 아내에게 들려준 말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4:23-24)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말'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라멕의 아들인 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점과 읊조리는 말이 노래의 일종으로서 인정되고 있는 세태를 참고하면, 이 '말'은 운율을 갖춘 노래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가 한 말의 내용은 자신이 상처를 입고 몸이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인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인을 위한 벌이 칠 배이지만, 자신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라고 한다.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어 만나는 자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이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는 것이었다.

 

(창세기 4:14-15)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이를 두고 라멕이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라고 말한 것은 '라멕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십 칠 배나 받으리라'는 뜻을 담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산수를 참고하면, 라멕이 11명을 죽였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많은 수의 사람을 쳐죽였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혹시 실수로라도 구르게 되면 삼년 밖에 살지 못하게 된다는 삼년고개를 구르게 된 후, 몸져 누웠던 김서방이 막내아들의 재치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래 살기 위해 구르기를 반복한다는 옛이야기를 참고한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죽이면 벌이 칠 배이니, 열 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죽이면 벌이 칠십 칠배가 된다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라멕의 이 말은 니므롯에 대한 묘사를 떠오르게 한다.

 

(창세기 10:9)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상황은 무엇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으로 말미암은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을 라멕이 한 말임을 생각할 때, 그리고 가인의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결코 옳지 않은 것이었음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라멕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라고 묘사된 니므롯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의 모습, 또는 에덴동산의 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변형하여 사용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가인의 족보는 위의 그림과 같이 라멕의 자녀들에 관한 기록까지만 나타나 있다.

 

창세기 4장의 끝자락에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대한 기록이 다시 나타난다. 아담은 아벨 대신 새로 아들을 얻게 되며, 이름을 셋이라고 지어 주었다.

 

(창세기 4:25-26)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인의 족보의 기록 뒤에 다시 언급된 아담의 족보는 가인의 족보에 대한 기록과 다르다. 아담이 자녀를 낳은 일과 관련해서는 기록이 매우 상세하다.

 

(창세기 4:1)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1절과 25절을 보면, 아담이 '아내인 하와와 동침하매 (아들)을 낳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침과 이를 통한 출산은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허락하신 사람의 출산 방법임이 명백하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창세기 1:28)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셋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어준 때, 곧, 셋이 성인이 되고 에노스가 자라가는 때,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 점은 가인의 족보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특징이다. 가인의 족보에서는 6대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셋의 족보에서는 에노스를 낳은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이 즉시 나타난다. 아벨은 가인과 비교되는 인물이며, 셋이 아벨 대신 주신 아들임을 생각할 때,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는 명확히 비교되고 구분될 수 있으며, 그 차이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창세기 5장에서는 그 차이가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창세기 5:1-32)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직접, 최초로 만드신 사람이자 남자인 아담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아담을 만드신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아담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아담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나타내는 기록이다.

그리고, 아담의 아들로서 셋이 기록되어 있다. 아담의 족보에서 가인은 언급되지 않으며, 이로부터 가인이 족보에서 제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가 가인의 족보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기록의 상세함이다. 몇살에 아들을 낳았는지, 그 아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아들을 낳은 후 몇년을 더 살며 자녀를 낳았는지, 그래서 몇살에 죽었는지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기록이 상세하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있어서 얼마나 큰 관심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저주의 집안과 축복의 집안으로서 비교되는 맥스 죽스와 죠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의 경우와 비슷하다. (무신론자 맥스 죽스가 불신자 여성과 결혼한 후, 그들로 말미암은 자손 560명을 추적한 결과, 310명이 거지로 죽었고 150명이 범죄자가 되었으며 그 중 7명이 살인자였고 100명이 술주정뱅이였으며 그 가계에 속한 여자들 중 절반 이상이 몸을 팔았다. 헌신된 크리스천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경건한 아내를 만나 1,394명의 자손을 두었는데, 295명이 대학을 졸업했고 그들 가운데 13명이 총장이 되었으며 65명이 교수가 되었고 3명이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3명은 주지사, 다른 사람들은 외국에 선교사로 파송받았고, 30명은 판사로, 100명은 변호사로, 56명은 외과의사로, 75명은 군대의 장교가 되었으며 100명은 유명한 선교사와 목사와 작가가 되었으며 또 다른 80명은 다양한 공직을 맡았으며 그 중 3명은 대도시의 시장, 1명은 재무성 감사관, 1명은 미국의 부통령이 되어 하나님께 복 받은 가문의 표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에 하나님이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는 것은 두가지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가지 사실은 이들의 수명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인 '므두셀라'의 이름은 '므두'와 '셀라'라는 두 단어가 합해진 것이다. '므두'는 '죽음'이라는 뜻이며, '셀라'는 무기, 창이라는 뜻과 함께 '가져오다'라는 뜻이 있다. 곧,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므두셀라의) 죽음이 가져오다'라는 뜻이 된다. 므두셀라의 죽음이 무엇을 가져왔는지는 족보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므두셀라는 969세로 죽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782년을 더 살았는데,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은 후 595년을 더 살고 777세에 죽었으니, 므두셀라는 아들이 죽은 지 5년 후에 죽은 것이며, 므두셀라가 969세로 죽은 해, 곧 노아가 600세 되는 해에 땅에 홍수가 있었다.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 그의 이름을 따라 그의 죽음이 가져온 것은 바로 '홍수', 곧 '심판'이었음을 족보로부터 알 수 있다.

그리고, 홍수가 있었을 때, 곧 모든 사람이 땅과 함께 멸망한 때,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노아를 제외한 그의 조상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에 나타난 이름들은 노아 때의 홍수로 인해 멸함을 받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람이었던 노아는 그의 아내, 아들들, 며느리들과 함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 가운데에 홍수 이후의 세상의 조상이 된 것이다.

즉,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의 자손들은 홍수 이전에 모두 죽었으며, 이 족보에 기록된 노아는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함을 받고 9대 조상인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홍수 이후의 세상의 조상이 되어 족보를 이어가게 된 것이다.

 

(창세기 9:1)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를 축복하신 명백한 증거이며, 이로 인해 이 족보는 창세 이후 유일하게 지속될 수 있었다.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에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는 또 하나의 사실은 족보에 기록된 이름의 의미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아담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창세기 5:2)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은 '지정하다'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셨다는 뜻이다.

 

(창세기 4:25)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에노스는 '죽을', '비참한'이라는 뜻이다.
게난은 '슬픔', '애도의 노래'라는 뜻이다.
마할랄렐은 '축복'이라는 뜻의 마할랄과 '하나님'을 가리키는 엘이 합해진 이름으로서 '축복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된다.
야렛은 '내려오다'라는 뜻이다.
에녹은 '시작'이라는 뜻과 함께 '가르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에녹이 아들인 므두셀라의 이름이 지닌 뜻을 볼 때,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곧 다가올 심판을 가르쳐 주셨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다서 1:14-15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에녹에게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을 가르쳐 주셨음을 알 수 있다.


(유다서 1:14-15)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고 한다.  

 

(창세기 5:24)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도록 옮기셨다고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다는 것을 에녹이 보여준다. 또한, 에녹의 삶은 그의 족보가 명백히 하나님의 관심 속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히브리서 11:5)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므두셀라는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죽음'이라는 뜻의 므두와 '가져오다'라는 뜻의 셀라가 합해진 이름으로서, '그의 죽음이 가져오다'라는 뜻이 된다.
라멕은 '절망한', '자포자기한'이라는 뜻이다.
노아는 '위로'와 '휴식', 또한 '해방되다', '만족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창세기 5:28-29)
28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이 족보에 나타난 이름을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죄를 지은 '사람아담'에게 '정해진' 것이 '죽음에노스'과 '슬픔게난' 뿐이지만,

'축복의 하나님마할랄렐'께서 '내려오셔서야렛' '가르쳐 주신에녹'것은

여자의 후손이신 그 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므두셀라' '절망한라멕' 사람에게 '위로와 해방노아'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이들의 족보는 곧 하나님의 구원 계획인 것이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 계획을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족보에 나타난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때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죄를 지은 '사람아담'에게 '정해진' 것이 '죽음에노스'이 되어버린 때,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슬픔게난' 속에 있던 사람에게 '축복의 하나님마할랄렐'께서 '내려오셔서야렛' '가르쳐 주신에녹'것은

여자의 후손이신 그 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므두셀라' '절망한라멕' 사람에게 '위로와 해방노아'을 주신다는 것이다.

 

-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의 자손들은 홍수로 인한 심판을 겪지 않았다.

- 노아의 가족은 땅의 모든 사람이 홍수를 통해 심판을 받을 때 유일하게 구원받았다.

- 자손 중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워졌다.

- 족보에 나타난 자손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나타낸다.

이로부터 이 족보는 '생명의 족보', '구원의 족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족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 족보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족보만이 이러한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어떻게 셋의 족보는 가인의 족보와 달리 이러한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 차이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명확하게,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데에 있다.

 

(창세기 4:26)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바냐 3:9)

9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섬기는 자를 구원하신다.

 

(요엘 2:32)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즉,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셋의 자손은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얻은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후, 베드로가 외친 바, 선지자 요엘의 말씀을 참고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의 역사를 더욱 넓게 볼 수 있다.

 

(사도행전 2:16-21)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요엘의 말씀을 참고하여 베드로가 외친 말씀에 따르면, 말세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창세기에 나타난 셋의 족보의 기록에 따르면 첫 사람 아담의 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사람들, 그들의 족보는 구원을 받았다. 세상을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름을 부르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는 새 예루살렘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완성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음으로써 그들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게 완성될 것이다.

 

(요한계시록22:3-4)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신다.

 

(히브리서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모든 것은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된다.

 

(고린도전서 13:12)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은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