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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3. 예배는 꼭 교회에서만 드려야 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9. 22:48

집에서 혼자서 예배를 드리면 안 되나요? 집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보면 예배로 인정되지 않나요?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집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 실제로 인터넷 상에는 사이버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주일에 가족끼리 콘도나 펜션 같은 곳에서 예배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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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 '레이투르기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지 않으면 예배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최초의 예배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봅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실의와 두려움에 빠져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시던 대로 식탁에 앉아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4:30)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함께 모여 항상 떡을 떼며 부활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 2:42)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46)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도행전 20:7)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고린도전서 10:16-17)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린도전서 11:27-29)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니까 최초의 예배는 모여서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것 외에 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단지 개개인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만일 예배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왜 초대교회 신자(세례 교육과정을 거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 지칭합니다.)들이 로마 제국의 그 혹독한 박해 속에서 순교를 무릅쓰고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을까요?

그러므로 골방이나 기도원이나 심지어 교회일지라도 '혼자서'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예배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개인적 경건'(공예배와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개인이 찬송과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의 행위일 뿐입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이라는 말 속에는 '공동체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함께 모여서 하는 것만이 예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이나 펜션 등에서 가족끼리 혹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것은 어떨까요? 소수이기는 하지만 분명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경우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고린도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세기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파벌이 존재했습니다. 이 파벌은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괴리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예배, 곧 주의 만찬(성만찬 또는 성찬과 같은 말입니다.)을 거행한다는 명분하에 가난한 사람들이 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떡을 배불리 먹고 포도주를 많이 마셔 취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바울은 격노하여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7-22)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그러면서 그들에게 권면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7-33)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이 말은 주의 만찬이 그 교회에 소속된 모든 사람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거행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의 만찬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하나로 묶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주의 만찬은 예배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사도 바울이 18절에서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라고 한 말과 33절에서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당시 주의 만찬은 매주일 예배 때마다 행해지는 정규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느 교회의 신자가 200명인데, 그 중에 서로 친한 10명이 주일 아침 8시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헌금까지 드린 후 '우리는 예배를 드렸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교회의 신자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예배를 드렸다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 우리는 그중에서 도대체 누가 드린 예배가 그 교회의 예배인지,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진짜로 이런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그래서 모든 교회는 '주일 아침 11시 본당에서' 하는 식으로  예배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이를 공포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 시간, 그 장소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고, 누가봐도 이것이 그 교회의 예배가 됩니다. 이런 의미로 예배는 '공적' 행위입니다. 예배는 결코 '사적'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어느 누구의 사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이라는 말 속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예배는 그 교회의 모근 구성원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혹은 몇몇 사람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면, 왜 우리는 골방에서 기도하고 구역예배 같은 소그룹 예배에 참석해야 할까요? 그럼 모임은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골방에서 기도할 때나, 몇 사람이 모여서 찬송하고 말씀을 볼 때나, 그 자리에 임재하시며, 그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감화와 은혜를 내리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20)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러한 경건의 행위는 우리의 신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적 경건의 행위가 없이는 공적인 예배에 아무리 많이 참석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참가자 각자의 신앙과 경건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그 예배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참가자들 또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적인 예배와 개인적 경건, 이 두 가지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제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에 모두 열심히 참여함으로써 훌륭한 예배자가 되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총을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