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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5. 가장 이상적인 예배 형식은 어떤 것인가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14. 00:40

가장 성경적인 예배 형식은 무엇인가요?

 

지금과 같은 예배의 순서는 언제부터 정착되었나요?

 

예배의 순서 중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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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교회에는 '열린 예배'니 '경배와 찬양'이니 하면서 지금까지 100여 년 동안 내려온 예배의 틀을 깨는 새로운 형식의 예배가 유행처럼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현장에서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점입니다. 예배의 형식을 혁신적으로 바꿔도 될까? 예배의 형식을 바꾼다면 어느 선까지 바꿔야 할까? 예배에 꼭 있어야 할 순서는 어떤 것들이고, 또 빠져도 되는 순서는 어떤 것들인가?

만일 예배의 순서가 신약성경에 명시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예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신약에 있는 예배에 관한 기록은 지극히 부분적이고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약성경의 기록 목적이 예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어떻게 세계를 향해 전파되었는가를 말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당시 성도들이 행한 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42)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46)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특히 사도행전 20:7 이하의 기록은 드로아의 교회가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모여서 '말씀을 듣고 식탁을 나눈'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본문들의 기록을 통해 최초의 교회 공동체는 모일 때마다 '떡을 떼는' 일을 반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너희가 먹을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약의 교회는 주일, 즉 주님 부활하신 날에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떡을 떼는 일을 한 것으로 요약됩니다. 물론 이 일을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다시 말해 구체적인 리터지(liturgy, 예식)가 어떠했는지 신약의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전 과정을 기록한 부분이 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가 짐승을 불살라서 바치는 구약의 제사를 다시 드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기록이 없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예배할 수 있다거나, 신약의 기록이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신약에 기록된 그대로만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조금만 역사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본다면 신약시대 성도들이 어떻게 예배했는지를 얼마든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사항을 알려면 신약과 동시대 혹은 그보다 약간 늦게 기록된 다른 문헌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원후 10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 즉 『열두 사도 교훈집』은 우리에게 떡을 뗄 때에 드리는 감사 기도문을 전해주고 있으며, 이보다 약 60년 늦게 기록된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증문』은 당시의 주일예배가 어떠한 순서로 행해졌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불리는 날에 한 장소에서 도시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집회가 있는데, 거기서는 사도들의 언행록이나 예언자들의 글이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낭독됩니다.

낭독자의 낭독이 끝나면, 그 집회의 인도자는 강론을 통하여 이러한 고귀한 일들을 본받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서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가 끝난 뒤에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떡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오고 인도자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힘있게 기도와 감사를 드리며 회중은 아멘으로써 화답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별된 떡과 포도주와 물이 각자에게 분배되고 부제들은 결석자들에게 그것을 가져다줍니다.

 

이 기록을 보면 당시 주일예배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순서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봉독, 설교, 기도, (떡과 포도주의) 봉헌(봉헌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데, 하나는 '바치는 행위'이고, 또 하나는 '바쳐지는 물건'입니다. 예배에는 언제나 봉헌이 수반되며 봉헌이 없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성찬) 기도, 성찬 참여. 이 여섯 가지의 순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첫째 부분은 '성경봉독---설교---기도'로 이루어진 '말씀 예식'이고, 둘째 부분은 '봉헌---성찬기도---참여'로 이루어진 '성찬 예식'입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20:7 이하에서 행해진 '말씀과 성찬'은 이 여섯 가지의 순서로 이루어졌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섯 가지의 예배 순서는 기원후 165년경에 기록된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증문』과 같은 시대에 기록된 다른 문헌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기원후 215년경에 기록된 『사도전승』(3세기 당시 교회의 생활과 질서에 관한 대단히 유용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어느 자료보다도 더 상세한 세례의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은 이러한 예배 형식의 구체적인 본문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에는 이 여섯 가지의 순서에 여러 가지 요소가 첨가됩니다. 예배당에 입장하면서 부르는 입당송이나 참회의 기도 및 사죄의 선언, 그 후에 오는 자비송("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말을 세번 반복하는 노래입니다. 두 번째에는 '주님' 대신 '그리스도님'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과 대영광송(누가복음 2:14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편화로다"라는 구절을 바탕으로 만든 찬송입니다.), 성경봉독 사이 사이에 부르는  시편송과 알렐루야송, 신앙고백 등은 모두 이 시대에 첨가된 예배 순서들입니다.

중교개혁 시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개혁교회의 창시자 마르틴 부처는 고백의 기도를 예배의 맨 처음에 하도록 했으며, 신구약 성경과 복음서를 봉독하던 관습을 없애고 성경 본문을 한 군데만 읽도록 했고, 아론의 강복기도로 예배를 마치도록 했습니다. 칼빈은 부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계승했으며 또한 시편에 운율을 붙여 예배에서 부르도록 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장로교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예배 지침은 1644년에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입니다. 이 규정을 보면, 예배는 '예배에의 부름'으로 시작하며, 그 다음에 고백의 기도를 하고, 설교 전에 목회자가 '긴 중보기도'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긴 중보기도가 우리나라에 와서 평신도 대표가 하는 '대표기도'로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배 시작 전에 오르간 전주를 하는 것과, 설교가 예배의 맨 끝에 위치하는 관습은 19세기 미국에서 생겨났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기독교의 예배는 2,000년을 내려오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신약시대부터 종교개혁시대까지는 '말씀과 성찬'이라는 구조를 유지했지만, 종교개혁 이후 일부 개신교 진영에서는 성찬이 배제된 '말씀 예전'만을 시행해왔습니다. 물론 한국 개신교는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에 충실한 예배는 주님과 함께 살았고, 주님의 뜻을 가장 잘 받들었던 사도들과 그 교회가 행하던 예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과 성찬으로 이루어진 예배이며, 그 원형은 앞에서 소개한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편지에 나타난 여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예배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구약 성경봉독과 설교, 기도, 봉헌, 감사기도 및 성찬 참여는 예배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로서 예배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순서들입니다. 물론 실제 예배를 구성할 때 예배를 좀 더 풍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약간의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 각각의 회중은 자신의 신앙고백 위에서 나름의 요소를 첨가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여섯 가지 중 어느 것을 제거하는 일이나 첨가된 것들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일은 예배의 본질을 흐리게 하며, 예배의 그리스도 중심성을 훼손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