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27. 지성전 예배나 인터넷 예배도 예배라고 할 수 있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2. 12. 15:48

▒ 대형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설교를 여러 지역에 떨어진 지성전에서 실시간 중계를 하는 방식으로 예배합니다. 이것도 온전한 예배라고 할 수 있나요?

▒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예배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
인터넷 예배와 지성전 예배는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인터넷 예배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지성전 예배는 인공위성으로 생중계하는 예배를 지성전에 모여서 드리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 음향장치나 방송장치를 활용하면 대단히 편리하겠지요. 현대사회에서는 이것들 없이 예배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위해 기술문명을 활용하는 것과 기술문명에 의해 예배 행위의 정체성이 바뀌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인터넷 예배와 지성전 예배에 대해서는 예배학적인 관점에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터넷 예배와 지성전 예배는 공동체성을 충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배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입니다. 이는 예배(Liturgy)를 뜻하는 단어의 어원인 '레이투르기아'(Leitourgia)라는 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말은 '사람들'(laos)이라는 단어와 '에르곤'(ergon)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공공의 부역' 등에서 온 말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배에서 서로 얼굴과 얼굴을, 눈과 눈을 마주하고 함께 호흡하고 함께 고백합니다.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한 주님의 몸에 편입된 사람들이며, '한 빵'에 참여함을 통해 '한 주님의 몸'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지체 됨'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 사이의 친밀감과 유대감은 필수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이노니아'이며, 이는 예배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지성전 예배는 이러한 예배의 정의를 충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나 위성중계에서는 오로지 정보의 일방적 전달만이 존재할 뿐 인도자와 회중의 쌍방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스크린 속에 있는 예배 인도자와 설교자는 지성전의 회중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볼 수도 없고, 그들의 얼굴 표정은 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회중 역시 그저 본당에 설치된 화면 속의 설교자를 보며 그의 목소리를 들을 뿐,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예배의 공동체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소입니다. 예배를 위해 모인 회중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이며,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하며, 함께 느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떨어진 장소에서, 그것도 '쌍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 전달'에 의지해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배의 본질을 저해하는 사항입니다.
혹자는 같은 예배 시간에, 같은 찬송과 기도로,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드리는데 공간은 초월할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은 떨어져 있지만 '영'은 함께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현재 입고 있는 '육신의 장막'을 초월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몸은 그렇지 못한데 마음이 함께 있다고 해서 함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예배'를 드리고는 있지만, 본당의 회중과 자성전의 회중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 또한 지적되어야 합니다.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사람과 전국의 지성전에서 동시에 예배하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이며 함께 교제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지성전 예배에서 성도간의 온전한 코이노니아는 기대하기 어렵고, 단순히 '내가' 예배당에 가서 설교 듣고, 은혜 받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럴 경우 이 예배는 '공동의 예배'라기보다는 단순히 '사적인 예배'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서 옆사람이 누구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은혜 받고 감동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학에서는 이것을 예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적인 예배 혹은 개인적 예배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개인적 경건'의 영역에 속하는 사항입니다.
둘째로 예배와 '유사 예배'는 다릅니다. 혹자는 "지성전 예배에서 감동도 받고 은혜도 받는데 무엇이 문제인가?"하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성전 예배에도 찬송이 있고, 감사와 봉헌이 있으며, 말씀을 깨닫는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님도 분명 역사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감동 받고 은혜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동은 음악회에서나 영화에서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신앙인의 간증이나 심지어 훌륭한 연사의 웅변에서도 눈물을 쏟을 정도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는 이런 곳에서 받는 감동이 예배에서 받는 감동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감동과 은혜가 있다고 해서 다 예배는 아닌 것입니다.
물론 지성전 예배는 이것들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주님의 백성들이 있으며, 예배의 형식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온전한 예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필자는 직접 지성전 예배에 참여해보았습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지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필자도 스크린 속 목사님의 파워 넘치는 설교에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이 '느낌'이 가능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중에 필자의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몇 해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월드컵 경기입니다. 당시 온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공원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마다 (그리고 많은 예배당에도)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며 열광했습니다. 그때 우리 국민은 모두 '감동의 도가니' 안에 있었습니다.
경기장도 아닌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공원에서 대형 스크린을 보면서 온 국민이 그토록 흥분되고 감동을 느낀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동일한 콘텐츠'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은 '우리나라 대표팀이 하는 경기'의 중계방송을 '사람들과 함께' 시청했기 때문에 그토록 열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부산역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같은 경기 내용을 함께 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느끼고, 함께 소리 지르던 것이 '월드컵 감동'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필자가 보기에 지성전 예배도 이와 매우 흡사합니다. 해당 교회의 신자들은 지성전에 함께 모여서 같은 내용으로 예배하면서 함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월드컵에서 '사건', 즉 운동경기는 '그곳', 즉 경기장에서 행해졌으며, '이곳', 즉 시청 앞 광장 또는 부산역 광장에는 단지 그 실황이 화면으로 '중계'되었을 뿐입니다. 지성전 예배도 마찬기지입니다. '사건', 즉 예배는 '그곳', 즉 서울의 본당에서 발생하며, '이곳', 즉 전국에 흩어진 지성전에는 그것이 화면으로 '중계'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전 예배은 예배의 중계방송이지 결코 예배 그 자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서울 시청 앞 광장이나 부산역 광장에서 중계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이 경기에 참가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경기에 대한 진정한 참가는 선수 신분으로든, 감독 신분으로든, 그것도 아니면 관중 신분으로든 바로 그 경기장 안에 있어야 가능하지 경기장 밖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전 예배에서 실제로 집례자가 집례를 하고 있는 본당의 회중은 예배에 참여하지만, 지성전의 회중은 예배를 '관전'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직접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과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동일하게 느낀 경험과 감동은 같은 것일까요? 물론 그것은 같은 종류의 경험과 감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경기를 동일한 마음(우리나라 선수들이 이겼으면 하는)을 가지고 함께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느낌의 강도나 경험의 깊이는 사뭇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과 화면을 통해서 보는 것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원리는 예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서울 본당의 회중과 부산 지성전의 회중은 비록 같은 내용의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가지고 예배에 참여했어도 그들이 느끼는 감동의 폭이나 경험의 깊이에서는 큰 차이가 날 것입니다. 본당의 회중이 느끼는 것은 집례자와 기도 인도자와 성가대와 설교자가 있는 예배당에서 온전하게 예배드리는 느낌이고, 지성전의 회중이 느끼는 것은 단지 그것을 '생방송'으로 함께 보는 데서 오는 '간접 경험'과 그 느낌일 뿐입니다. 이런 범주에서 볼 때에 지성전 예배는 개인적 경건이나 신앙집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예배는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