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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54.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예배는 어떤 관계인가요?

아리마대 사람 2023. 1. 6. 15:26

▒ 오늘날의 교회는 왜 구약에 있는 제사를 행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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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 성전 예배의 분위기는 이사야 6:1-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 6:1-8)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 본문은 당시의 예배가 어떤한 분위기와 내용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의 성전 예배는 다섯 가지의 모티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첫째,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는 내용의 찬송 또는 경배입니다.(3절) 둘째,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는 고백입니다.(5절) 셋째, "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로 기록된 용서의 단계입니다.(6-7절) 넷째, 선포 혹은 말씀의 순서입니다. 이는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시되었습니다.(8절) 다섯째, 헌신의 순서입니다. 이는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응답으로 표시되었습니다.(8절) 한때 여기에 나온 '찬송과 경배-고백과 회개-용서-말씀-헌신'으로 이루어진 예배의 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하여 '이사야 모티프'라는 이름으로 널리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본문이 실제 예배를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성전 예배의 초월성과 윤리적 차원을 잘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구약시대의 실제적인 성전 예배는 희생제사가 그 핵심입니다. 희생제사는 다음의 네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첫째, 준비 단계로서 예배자가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도살할 짐승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물론 바칠 짐승은 온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제사장이 예물 위에 안수함으로써 제물을 축복하고 성별하는 단계입니다. 이때에 예배자는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접촉을 느끼게 됩니다. 셋째, 짐승을 도살하는 단계입니다. 도살된 짐승의 일부 혹은 전부가 제단 위에서 불에 태워집니다. 넷째, 봉헌물을 먹는 단계입니다. 이때에 예배자는 자신이 회복되고 소생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예배에서 이처럼 짐승을 잡는 예배가 행해졌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의 예배에서는 '피 흘림이 없는' 예배가 행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히'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9:12)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28)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10:10)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브리서 10:12)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영원한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교회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 바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예배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예배의 '내용'이 구약의 예배로부터 신약의 예배로 전승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생제사' 개념입니다. 구약의 예배에서는 짐승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우리가 속죄함을 받듯이, 기독교의 예배에서는 나사렛 예수께서 친히 어린양이 되사 희생하심으로써 우리가 그 피를 힘입어 구원함을 얻는다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한 예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구약의 예배가 신약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큽니다. 신약의 예배에서 말씀을 읽고 그에 대해 설교를 하는 것은 구약시대 회당 예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배드릴 때 회당에서 하듯이 구약성경을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여기에 예언된 메시아는 바로 나사렛의 예수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성만찬 예식 역시 구약의 식사 의식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신 마지막 만찬은 다름 아닌 유월절 만찬 자리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가지시면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줄 때에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또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제 더 이상 이 식사가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출애굽 사건에 대한 기념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신 당신 자신에 대한 기념의 식사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신 것입니다.
정리하면,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예배로부터 예배의 형식만을 물려받았으며, 그 형식에다 예수에 관한 사실로 예배의 내용을 가득 채웠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 역시 예수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