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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53.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리마대 사람 2023. 1. 6. 10:24

▒ 교회는 왜 예배를 행해야 하나요?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교회와 예배의 관계를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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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거행할 때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배 안에서 드러나는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음의 네 가지입니다.
첫째, 예배는 '세례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드러냅니다.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부활절날 새벽에 거행되었습니다. 그때 세례 받은 사람들이 맨처음 참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예배였습니다. 즉 세례를 통해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림을 받아서 악한 영들을 몰아내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마침내는 '위의 것을 추구하고 거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게 된 사람만이 비로소 예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배가 한 주간의 첫날에 거행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할하신 날입니다. 예배의 참여자는 이날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자신들이 세례를 통하여 세상과 그것의 헛됨, 그리고 그 안에서 활보하는 사탄의 권세로부터 빠져나온 것을 확인하고 그리스도의 승리와 생명, 부활과 영광에 참여합니다.
둘째, 예배는 '결혼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드러냅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배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신부인 교회와의 만남입니다. 예배를 통해 이 양자의 만남은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하나 됨의 기쁨과 희망의 시간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해 존재하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바치게 됩니다. 그로므로 예배를 거행할 때에 교회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는 진실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잔치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는 서로 주고받는 선물이 오갑니다. 그것은 성례전과 봉헌 안에서 가장 잘 표현됩니다. 진실로 예배 안에서 주님이 교회에게 주시는 선물과 교회가 그리스도께 드리는 선물이 서로 혼합되고 결합되며, 각자는 서로 상대방에게 속해 있기 위해 또한 상대방으로 인해 기뻐하기 위해 자신을 초월합니다. 기독교 예배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원히 동일한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예배의 본질적 속성 때문입니다.
셋째, 예배는 '보편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드러냅니다. 교회는 예배를 거행할 때 자신이 보편적 공동체임을 드러냅니다. '보편적 '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28)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예배는 모든 인종적, 사회적, 성적인 갈등과 적의를 넘어서게 합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께서 부르신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한 접대의 장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0:34)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예배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장벽이 철폐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죄를 용서함 받아 회복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서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넷째. 예배는 '사도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드러냅니다. 교회는 예배 안에서 그리고 예배로 말미암아 자신을 사도적 공동체로 자각하고 나타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네 가지 사항으로 인해 가장 잘 설명됩니다.
첫째, 예배는 사람들을 세상 속으로 보냅니다. 예배는 교회로 하여금 한 주간의 첫날에 모인 사람들을 내내 교회에 붙잡아 두지 않고 세상 속으로 돌려보냅니다. 교회는 세상 모든 피조물 중에서 불러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피조물의 첫 열매'입니다.

(야고보서 1:18)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예배로 모일 때에 교회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흩어져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며 한 주간 내내 세상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요청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배 이후의 예배', 즉 삶과 선교의 차원을 지닙니다.
둘째, 그렇지만 예배는 선교가 아닙니다. 예배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으로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는 그 본성상 선교의 직접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회중이 이해하는 가운데 행해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배에 대해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나 예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예배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이 예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셋째, 예배는 신자들의 행위입니다. 예수께서 처음 예배를 제정하실 때 많은 무리가 있는 데에서 하지 않으시고 단지 열두 명만 있는 자리에서 하셨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 있는 사람들만을 그 대상으로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배를 복음 전도의 직접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예배와 설교를 동일시하거나 초대교회의 예배가 예비자 과정을 거쳐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예전'이라고 불린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선교의 사명을 다하도록 촉구하고 내어보내는 것이지 결코 선교 행위 그 자체가 아닙니다.
넷째, 예배는 교회 생활의 중심과 원천입니다. 예배는 실로 교회의 행동이 지향하는 정상이고, 교회의 모든 활력이 나오는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교회 공동체의 활동의 규준입니다. 예배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교회나 교구나 공동체는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만일 예배가 중지된다면 그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자신의 누룩으로 온 세상이라는 밀가루 반죽을 섞고, 세상을 거룩하게 하며, 세상에 자신의 소금의 맛을 주고, 자신을 빛으로 세상에 비추는 것은 바로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예배를 단지 설교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오해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과 대면하는 사건이므로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가슴 설레는 기대감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순종의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인생의 존재와 목적과 방향이 심판 받고, 결정되며, 변화되고, 다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