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안식일 (2) - 신약에서 알 수 있는 것

아리마대 사람 2020. 1. 29. 17:34

이 땅에 오셔서 계시는 동안,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다. 안식일이 하나님의 큰 관심사인 만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해 말씀하셨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어쩌면 당연히 말씀해 주셔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말씀 덕분에 안식일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                              *                              *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에 배가 고팠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은 사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2:1-8)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2:23-28)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누가복음 6:1-5)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들어 제자들이 하지 못할 일을 했다며 예수님께 따지게 된다. '하지 못할 일'이란 표현이 조금 애매한데, 실은 '해서는 안될 일' 쪽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행한 사례로서 시장했던 다윗이 성전에서 진설병을 먹었던 일을 언급하신다.
율법을 기준으로 볼 때,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하지 말라는 명령에 적합하게 일을 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 중에 안식일 전날 거둔 만나는 이틀 동안 상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기까지 하셨다.

이처럼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율법은 그 형식이 밖으로 드러나야 하며 지켜져야 한다는 강제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지킨다는 것은 그 강제성과 불편함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위한 율법처럼 생각되기 쉽다. 오랜동안 이 율법을 지켜온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제사'라고 표현된 바와 같이 지켜져야 하는, 겉으로 드러난 형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이 형식을 갖추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며, 사람이 안식일의 형식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사람들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또한 왜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를 밝히신다.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안식일의 의의와 규정은 예수님께서 임의로 정하시고 바꾸실 수가 있으며, 안식일에 관해 우리가 모르는 것까지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살펴본 말씀을 떠올리게 만드는 말씀이다.

 

(레위기 19:30)
30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26:2)
2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씀은 놀랍게도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라는 것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어졌다는 것이다.

 

                              *                              *                              *

 

안식일에 회당에서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내용이다.

 

(마태복음 12:9-13)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가복음 3:1-5)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누가복음 6:6-10)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안식일에 오른손이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도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 죽이는 것보다 옳다고 말씀하신다.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은 해도 되는 일, 나아가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의 의미로 말씀하신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악을 행하는 일과 죽이는 일이며, 선을 행하는 일과 생명을 구하는 일은 해도 되는 일로 이해할 수 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 '일'을 행하시면 이를 빌미로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시비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드러내놓고 위의 사건을 통해 사건 직전에 기록된 말씀의 의미를 보여준신다.

 

(마태복음 12:7)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신 사건은 밀밭에서 말씀하신 '제사가 아니고 자비를 원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안식일이라는 율법보다 이 말씀이 상위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안식일이라도 선을 행하는 것은 오히려 옳은 일이라는 개념이 선포되었다. 무조건적으로, 기계적으로 안식일에는 일하면 안된다는 절대성이 깨어지는 것이다. 안식일의 율법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새롭고, 더 나아가서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개념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                              *                              *

 

특별히, 의사였던 누가는 예수님께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있던 여자를 안식일에 회당에서 고치신 사건을 기록하였다. 복음서의 다른 저자들과 달리 누가가 이 사건을 기록한 것은,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의술로 이러한 병을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병의 원인이 신체의 고장이 아니라 귀신 들려 앓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증세는 (몸이)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것이라고 기록한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누가복음 13:10-17)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꼬부라져 있던 여자의 병을 고치셨을 때, 회당장은 한 주간 중 안식일을 제외한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때 예수님을 찾아와서 병고침을 받으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회당장의 생각도 안식일의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에게 물을 먹이는 행위를 언급하시며 다시 한번 안식일이라도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에는 이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다시 한번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주신 것이다. 누가가 의사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수종병'이라는 병명이 기재된 것으로 생각된다. 

 

(누가복음 14:1-6)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시비거리를 찾기 위해 숨어서 엿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이라도 과연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드러내어 물어보신다. 그리고, 안식일이라도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냐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누가의 기록들은 예수님께서 의학적으로는 치료의 가능성이 없는 질병들을 고치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보강하는 말씀이다. 한편으로는, 누가가, 비록 직접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고 전해 들은 바를 기록하는 입장이었지만, 안식일의 의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크게 깨달은 바가 있기에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들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별히, 누가복음 13:10-17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있던 여자를 안식일에 회당에서 고치신 사건의 기록에 이어 곧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 한 알'과 '누룩'에 비교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13:18-21)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흔히, '겨자씨 한 알'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듯이, 복음의 시작은 보잘 것 없으나 그 능력은 크게 나타날 것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또한, '누룩'은 복음이 조용히 그 향기를 전 세계에 퍼뜨릴 것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이 말씀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 들려 앓던 여인을 고치신 사건의 기록에 곧 바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금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창대하게 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나무'와 '전부 부푼 가루 서 말'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은 타당하게 생각된다. 그렇다면, '겨자씨 한 알'과 '누룩'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기록된 내용의 전개를 살펴보면, 곧 병을 고치신 기록 후에 곧바로 이 비유가 이어짐을 살펴보면, '겨자씨 한 알'과 '누룩'은 이 땅에서 지키도록 주어진 안식일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이 이해하면, 이 비유는 이 땅에서 지키도록 주어진 안식일이 자라서, 또는 부풀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 비유에는 겨자씨 한 알과 누룩의 의미와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는 큰 의미가 담겨있다. 즉, 아주 작고 평범하여 보잘 것 없는 것 속에 큰 의미와 역할, 큰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주어진 작고 평범하여 보잘 것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안식일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큰 의미와 역할, 큰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안식일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                              *                              *

 

한편,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안식일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베데스다 못에서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다.


(요한복음 5:1-16)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6절에서 유대인들은 철저히 안식일의 율법에 따라, 자리를 들고 가는 행위를 '일'로 생각하여, 안식일인데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병 나은 사람을 질책한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자리를 들지 않고 가는 것은 허용되는가, 본다 근본적으로, 일하지 말라는 율법은 어느 범위까지를 일로 규정하며, 어느 범위의 동작까지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유대인들은 이를 사람의 판단에 따라 규정해 놓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다는 것, 병이 나은 사람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증거하고 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율법 규정으로 인해 박해를 받게되었다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                              *

 

요한은 예수님 당시의 안식일에 관한 시비들에 관해 보다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요한복음 7:22-24)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본문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에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는 풍습이 존재했다. 본문 말씀에 따르면 이는 모세가 할례를 행했던 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본래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지키도록 명하신 것이었고,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받도록 명하신 것이었다.

 

(창세기 17:12)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할례를 행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볼 수가 없다. 아마도 다른 기록이나 구전을 토대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되며, 당시에 태어난지 팔 일되는 날이 안식일이면 안식일이라도 할례를 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이 허용된 까닭은 모세가 행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안식일에 할례도 행하는데,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은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예수님께서 물어보신다. 물론, 질문의 형식을 지닌 가르침이며,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과 구조적, 내용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외모는 제사와 통하는 개념이며, 이것은 눈으로 보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과 형식을 가리킨다.

공의로움은 자비와 통하는 개념이며,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마음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강조하여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6:1-6)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한, 흥미롭게도 이 말씀은 율법으로 정의된 할례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과 매우 흡사하다.

 

(로마서 2:28-29)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바울이 할례로 인해 논쟁을 해야 했듯이, 안식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로지 율법의 형식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당시의 시대에 매우 새롭고, 따라서 논쟁거리로 부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                              *

 

요한은 또한 예수님께서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하심으로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다.

 

(요한복음 9:1-14)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이 사건에서는 안식일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없다. 다만, 요한이 무심한 듯 적은 한 문장, 곧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은 여러번이 있었는데, 이렇게 적은 경우는 없다.

이 문장은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는데, 이 날이 어떤 날인지 달력을 보니 마침 안식일이었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살짝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는데, 이 일을 굳이 안식일에 맞추어 행하셨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안식일이 되기 전까지는 눈을 뜨지 못했으나 안식일이 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안식일 되기 전의 상태, 곧 눈을 뜨지 못한 상태, 눈이 먼 상태에 관한 요한의 깨달음을 참고할 수 있다. 요한은 눈이 먼 상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한복음 12:37-38)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사야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2:40)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안식일 되기 전의 상태, 곧 눈을 뜨지 못한 상태는 하나님께서 눈을 멀게 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이사야는 이 상태가 그저 눈이 감긴 상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깊이 잠들게 하신 상태라고 말씀했다.

 

(이사야 29:10)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안식일 되기 전에는 눈을 뜨지 못한 상태였으나, 안식일을 맞이하면 어떻게 될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신 이유가 바로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사도행전 26:18)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하심으로 어둠, 곧 사탄의 권세에서 빛,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날, 그날이 안식일인 것이다.요한이 덤덤하게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라고 기록한 구절을 위해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그리고, 눈을 뜬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무리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눈을 뜨는 날이 안식일이다.

 

 

                              *                              *                              *

 

신약에는 예수님의 가르침 외에, 독특하게 히브리서 4장에 안식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는 히브리서 3장에서 이미 언급이 시작된 안식에 관한 말씀과 이어진 것이며, 또한 후반부에 언급이 시작된 대제사장에 관한 말씀은 히브리서 5장과 이어지지만, 여기서는 4장만을 대상으로 살펴보겠다.


(히브리서 4:1-11)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안식의 약속은 유효하지만 모든 사람이 안식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그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안식에 이르는 데에 유익이 없다.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맏는 사람들은 안식에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시편에 나타나 있는 말씀이다.

 

(시편 95:11)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체 칠일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이었다.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다.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복음을 먼저 받은 이들 (이는 유대인의 선조들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있지만, 순종, 곧 믿음이 없으므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시편 95편을 참고할 때, 이 사건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의 광야생활을 거치고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을 가리킨다.

 

(시편 95:10-11)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이 사건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곧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아니함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이다. 

 

(민수기 32:11-13)
11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 방황하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마침내는 다 끊어졌느니라

 

곧, 약속의 땅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안식의 상징이었던 것이며,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들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시편 95편에서 다윗은 '오늘'이라는 때를 기준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라고 노래하였다.

 

(시편 95:6-8)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여호수아의 때에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건으로써 안식에 들어감이 완료된 것이 아니다.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다윗이 '오늘'이라고 말한 때는 임의의 때이다. 따라서 안식에 들어갈 길은 아직 열려 있는 것이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안식에 들어감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미 안식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앞으로 안식에 들어갈 사람도 있다.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따라 안식한다.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 곧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안식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오직 순종하기에 힘써야 한다.

 

                              *                              *                              *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 안식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다.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서신서의 말씀을 통해 간략히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안식일에 관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알 수가 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 자신이시며, 안식일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레위기를 통해 '내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안식일이라도 선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이다. 이는 곧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는 말씀과 닿아있으며,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말씀과도 닿아있다.

 

안식일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눈을 뜨는 날이 안식일이었다.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순종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며, 이는 출애굽 이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전해진지 1500년 후에 오셔서 새로운 기르침을 주셨다. '무조건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의 율법 가운데에 의미가, 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며, 안식일은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서 언식일이라도 선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이 말은 곧 안식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에 지켜야 하는 '일하지 않는다'는 안식은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안식과 관련된 말씀을 주셨다.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살이 지친 사람들이 자신에게 옴으로써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더 쉬운 멍에와 더 가벼운 짐으로 바꾸어 줄테니까 너희가 쉴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바꾸어 준다는 의미보다는 새로운 멍에와 짐을 주겠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사단에게 지배를 당함으로써, 사단이 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 가운뎅서 고통을 겪음으로써 당하게 되는 짐을 예수님께서 주시는 짐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여기서 가장 크게 눈에 뜨이는 부분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너무나 자신감있는 말씀이며, 글자 그대로 읽으면,

예수님 자신이 마치 안식 그 자체인 것처럼 들리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가능한 까닭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2:8)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2:28)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누가복음 6:5)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