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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10. 대표기도는 누가 해야 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21. 21:59

주일예배에서 대표기도는 꼭 장로님만 해야 하나요? 어떤 교회는 집사님이 하시는 교회도 있던데요.

 

주일예배에는 대표기도를 하는 순서가 꼭 있는데 대표기도의 유래와 근거에 대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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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는 참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기도의 성격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이 기도가 한국교회에서 특정 직임, 즉 장로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대표기도의 성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평신도가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신약성경과 동시대에 기록된 『디다케』에는 누가 기도하는가 하는 점에 관해 이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언자들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감사드리도록 허락하십시오.

이 말은 성만찬 예식에서 감사기도를 말하는 권한이 '예언자'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언자는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요? 같은 문헌의 다른 곳에서 '예언자'는 '사도'와 혼용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관해서는 복음의 지침에 따라 이렇게들 하시오. 여러분에게 오는 모든 사도는 마치 주님처럼 영접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만 머물러야 합니다. 이틀을 머물러도 됩니다. 만일 사흘을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이 글을 종합해보면, 1세기에 사도는 예언자와 혼용해서 사용되던 호칭이었으며, 예배에서  기도를 말하는 사람은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디다케』보다 약 60년 뒤에 기록된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증문』은 주일예배 순서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최초의 문헌입니다. 이 문헌을 보면, 당시 예배에서는 두 번의 기도가 행해졌는데, 한번은 설교 직후에 그리고 또 한번은 떡과 포도주와 물을 앞으로 가지고 나와서 바친 후에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기도는 예배를 집례하는 사람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이 문헌은 기도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자가 마찬가지 방식으로 힘차게 기도와 감사를 드리며 회중은 아멘으로써 화답합니다.

여기에서 '인도자'는 다름 아닌 '감독'을 지칭합니다. 그러니까 감독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감사의 기도를 말하면 모든 회중이 '아멘'으로 동의를 표시하는 형식으로 기도가 행해졌다는 뜻입니다.
5세기에서 6세기에는 설교 전에 하는 기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이 기도는 '모음기도', '그날의 기도', '본기도' 등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예배를 집전하는 목사나 사제가 회중의 모든 기도를 모아서 이 기도를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예배의 시작 부분에 위치하며 그날의 예배를 위해 한두 문장으로 짧게 바쳐졌기 때문에 오늘날로 말하면 개회기도의 성격을 띱니다. 이 기도는 당연히 목사에 의해 행해집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처는 '감화기도'라는 것을 예배에 도입했습니다. 이 기도는 성경봉독 직전에 하는 것으로서 성령께서 모든 예배자의 마음을 감동 감화하셔서 성경봉복과 설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해주십사하고 간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르틴 부처는 이 기도를 목사가 행한다고 규정했고, 부처의 영향을 받은 칼빈 역시 이 기도를 목사가 하도록 명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예배에서 기도를 인도하는 일은 목회적 직무를 위해 안수를 받은 자에게 위임된 일이었습니다. 사실 공중예배에서 기도를 인도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중보사역을 감당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예배를 집전하는 목사가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가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한 사례는 예배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에서 주일낮예배의 '대표기도'를 목사가 아닌 장로가 하게 된 것은 언제, 어떻게 해서 생긴 관습일까요? 대표기도는 19세기 미국에서 행해진 '목회기도'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는 이 목회기도가 설교 전에 하는 공중기도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는 기록된 예배서 없이 눈을 감고 즉석에서 하는데다 고백, 찬양, 감사, 봉헌, 중보, 간구까지 모든 것이 포함되어 기도가 매우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사들은 한국말이 익숙치 않아서 즉석에서 그렇게 긴 기도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설교는 원고를 보고 읽으면 되지만, 기도는 눈을 감고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수행하던 한국인 조사나 전도사 또는 장로에게 기도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관행으로 정착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의 선교사인 사무엘 모펫이 1895년 편찬한 『위원입교인규도』의 예배 지침에는 "교우 즁에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기도를 할 것이요."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평신도에게 기도를 위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공예배 기도에 관한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결정이 로마 가톨릭에서 내려졌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설교가 끝난 뒤에 '신자들의 기도' 혹은 '공동기도'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전체가 기도를 드리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것을 '보편지향기도'라는 이름으로 되살린 것입니다. 더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기도에 평신도가 참여할 수 있도록 결정했습니다. 이 기도는 설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의 의미가 있으며, 이때에 기도하는 내용은 온 세상에 흩어진 교회와 위정자들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특히 어려움 가운데 처한 성도들 등 보편적이며 예배 공동체와 관련된 것으로 합니다. 오늘날 미국 장로교회나 미연합감리교회 등도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미연합감리교회는 '관심과 기도'라는 이름으로 된 기도를 설교 후에 하는데, 이때에는 간단한 중보의 기도나 간구, 감사를 표하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예배 인도자나 회중 가운데서 맡은 이가 합니다.
정리하자면, 개회기도는 예배의 시작 부분에, 감화기도는 성경봉독 직전에 행해지며 그 정해진 목적을 위해 예배의 집례자가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신자들의 기도나 공동기도는 설교 이후에 오며, 들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세계와 교회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중보과 간구의 기도를 바칩니다.
이러한 원리에 비추어볼 때, 한국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표기도는 그 성격이 매우 모호합니다. 설교보다 앞에서 행해지지만 개회기도, 감사기도, 중보기도 등 모든 요소가 혼합되어 기도의 성격이 모호해진 것입니다. 이것저것 구하다 보니 자연히 기도가 길어져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기도를 통해서 다른 교우들을 책망하거나(예: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우 중에는 ~하는 사람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광고(예: "다음 달에 있을 총동원 주일예배에 모든 성도가 한 사람씩 전도하여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소서." - 이러한 기도는 기도의 형식을 빌렸을 뿐 사실은 광고에 해당합니다.)를 함으로써 기도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까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대표기도도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 신학적 성격에 맞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다 앞에 오는 기도는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가 그날의 예배를 위해 간단히 하고, 설교가 끝난 뒤에는 평신도가 설교를 통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필요한 간구와 중보의 기도를 바치는 형식이 가장 타당합니다. 물론 이 때에도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혼자 길게 말하는 것보다는 기도 인도자와 회중이 함께 말하는 형식이 더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