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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11. 대표기도는 기도문 없이 즉석에서 해야 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24. 15:35

대표기도를 할 때는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즉석에서 하는 것이 좋은가요? 미리 작성한 기도문을 읽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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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맡은 사람이 '즉석'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아니면 미리 작성한 기도문을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사항은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논의 중 하나입니다. 큰 틀에서 볼 때 기도는 즉흥적으로 행해지다가 점차 기록된 기도문으로 발전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미리 작성된 기도문 없이 즉흥적으로 기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도행전 2:4의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는 말씀이나 고린도 교회에서 회중이 모였을 때 방언과 예언을 했다는 기록은 이러한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신약시대 기도에 관한 전부는 아닙니다. 신약의 교회도 기록된 기도문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원시 기독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유대교라는 토양 위에서 태어났고, 당시 유대교는 수세기를 통해서 형성된 여러 개의 기도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이러한 유산을 물려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신약이 기록될 당시의 유대교에는 성전과 회당, 그리고 가정에서 하는 기도문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비록 엄격하게 명문화된 형태는 아니더라도 구조와 형식, 내용이 상당히 구체화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내용을 수정하거나 첨가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공동체의 기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내용을 기도와 기르침 등의 형식으로 전승했는데, 이 기도들은 특정의 구조적 뼈대와 내용의 범위 내에서 기도를 맡은 자들이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도자는 복음의 전승에 충실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범위 안에서 내용을 바꾸거나 첨가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기원후 10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는 당시의 예배 모임인 성만찬에서 기도문의 자세한 내용을 제시하며 감사기도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 기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기도문을 제시한 것은 기도를 맡은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기도할 자질을 갖추지 못했거나 자신의 언어로 기도하기를 원치 않는 기도자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에도 여전히 기도자의 재량권은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자신의 언어로 기도할 능력이 있는 기도자는 자신의 언어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기도자는 주어진 구조와 형태를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재량권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제시된 기도문은 기도의 모델이지, 글자 그대로 해야 하는 기도문은 아닌 것입니다.
기원후 215년경에 기록된 『사도전승』은 기도의 규범과 재량권에 관하여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가 기름을 바치면 (감독은) 빵과 포도주를 봉헌할 때처럼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똑같은 말로 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이 문헌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당시 교회에서 감사기도를 하는 사람은 감독(주교)이었다. 둘째, 통용되는 감사기도의 문구가 있었다. 셋째, 기도를 하는 감독은 이 기도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비슷한 내용으로 하되 자신의 말로 할 수 있었다.
이런한 기도의 방법은 동방교회에서는 4세기 내지 5세기에, 서방교회에서는 6세기 말경에 고정된 기도문으로 정착됩니다. 이는 기도문이 문장으로 정리되고 확정되어 아무도 임의로 기도할 수 없고, 주어진 대로만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만, 주로 이단적인 가르침과 싸우면서 공동체의 신앙을 지키는 동시에 예배를 신학적으로 확실히 담보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기도문은 이렇게 기록되어 고정된 형태로 1,000년 이상을 내려왔습니다. 그동안 많은 개정이 있었지만, 어쨌든 공예배의 기도는 기도자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언어가 아닌 공동체가 확정하여 기록한 언어로 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서서 이러한 관행에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6세기 청교도들이 『공동기도서』에 기록된 기도문을 읽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기도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존 로빈슨은 16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필그림의 목사였는데, 그는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만일 우리 기도가 우리의 입술로 나오기 전에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잉태된 것이 아니라면 그 기도는 육친의 애정 없이 태어나는 사생아와 같이 부정한 탄생이다.

청교도들이 인쇄된 기도문을 읽는 것에 반대한 이유는 그 기도문들이 너무 짧고, 개별 공동체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한 인도자와 회중이 서로 주고 받는 형식으로 된 연도가 왔다갔다 하는 테니스 공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즉석에서 하는 기도를 옹호하게 된 것입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는 미리 작성된 기도문과 즉석 기도, 두 가지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웨슬리는 1784년 9월 10일 미국 감리교도들에게 편지와 함께 '예배서'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서 미국 목사들에게 당부하기를, 주일에는 정규 예배 의식서를 사용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연도를 하며, 다른 날에는 즉석 기도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또 주일 성만찬 예식에서도 예배서에 제시된 성만찬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를 마치고 나서 "목사가 마땅하다고 생각하면 즉석 기도를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도 초기에 기록된 기도문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발행된 『신독통론』은 아침과 저녁의 기도를 위한 기도문을 제공했으며, 같은 시기에 발행된 『세례문답』도 아침과 저녁에 하는 기도문을 제공했습니다. 2002년에 개정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새예배서』와 2004년에 개정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예배와 예식서』, 그리고 2008년 개정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예배·예식서』는 모두 기도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선 교회들의 예배에서 이 기도문들을 활용한다면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됩니다.
즉석 기도와 기록된 기도문에는 나름으로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즉석 기도는 그때그때 성령이 주시는 영감으로 뜨겁게 기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중언부언하거나 감정에 몰입되어 지나친 발언을 하거나 실언을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미리 작성한 기도문은 해야 할 말을 정리해서 조리 있고 간결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기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기도문을 읽으면서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건조한 메아리가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각종 기도회나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는 즉석 기도가 더 적당하고, 공적인 예배에서 대표로 기도할 때는 미리 작성한 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