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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12.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내도 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28. 13:44

▒ 목사님이 없을 경우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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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교회의 예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기원후 10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고, 주께서 당신 복음에 명하신 대로 이렇게 기도하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만이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하듯이 우리에게도 우리 빚을 용서하시며,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세 번 이렇게 기도하시오.

여기에서 말하는 '위선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18 축복기도"라는 기도문을 가지고  하루에 세 번 기도했는데, 이와 구별되게 그리스도인들은 하루에 세 번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주일낮예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기도회 또는 개인적으로 행하는 기도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일낮예배에 주기도문이 도입된 것은 4세기 중반입니다. 4세기 교부 예루살렘의 시릴이 세례자들에게 행한 설교를 보면 성만찬 예식에서 성만찬 기도가 끝난 직후, 즉 성찬의 빵을 받아먹기 직전에 주기도문을 행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이후로 주기도문은 성만찬의 빵을 받아먹기 직전인 성만찬 기도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기도문의 내용에 있는 죄를 용서해달라는 내용과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내용이 천국의 빵인 성찬의 빵과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의 위치가 성만찬 예식으로부터 빠져나와 예배의 다른 곳에 위치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예배에서입니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는 자신이 만든 예배 의식문인 "주의 만찬의 활용"에서 주기도문을 말씀에 대한 응답의 하나로 간주하여 성만찬 예식 앞에 위치시켰고,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은 설교가 끝난 뒤에 감사기도와 주기도문으로 진행하도록 하였으며, 1662년 개정된 영국 국교회의 『공동기도서』는 주기도문을 예배의 맨 처음에 위치시켰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1784년 북미 감리교도들에게 보낸 예배 의식서를 보면 아침기도회와 저녁기도회는 성경 구절 봉독, 참회의 기도 및 자비를 구하는 기도 이후에 주기도문을 하도록 하였고, 주의 만찬에서는 맨 첫 순서에 주기도문을 위치시켰는데, 이는 영국 국교회의 『공동기도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1905년 출간된 미국 감리교회의 예식서도 주기도문을 설교보다 앞선 예배의 전반부에 위치시킴으로써  같은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시작하거나 끝맺는 순서로 통용한 곳은 성결교회가 처음으로 보입니다. 1936년 성결교회의 헌법에는 축도나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맺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축도할 안수 받은 목사가 없을 경우,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교회나 가정에서 목사 없이 예배나 기도회 등을 할 때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내고 신앙고백으로 예배를 시작하는 관습은 여기에서 파생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초기 한국교회의 그 어떤 예배 의식문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언젠가 미국의 저명한 예배학자가 한국에서는 신앙고백으로 예배를 시작하고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내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알고 아주 흥미롭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론을 맺자면, 구역예배나 소그룹의 기도회 등에서 목사가 없을 경우 축도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마치는 것은 가능하고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