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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16. 예배에서 성경봉독은 왜 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28. 16:54

▒ 예배 시간에 어떤 교회는 성경봉독을 두세 곳 합니다. 성경봉독은 원래 한 곳만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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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서 성경봉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성경봉독이 단순히 설교를 하기 위한 '증거 본문'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설교가 주된 행위이고, 성경봉독은 설교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행위가 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봉독이 주된 행위이고, 설교는 이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행위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서 성경을 봉독하는 일, 즉 말씀의 선포는 단순히 교육적인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축하는 행위가 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경봉독을 할 때 단순히 성경을 읽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구성된 일종의 의식을 동반했습니다. 이 의식은 특히 복음서 봉독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그 이유는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담고 있어서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봉독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증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문헌은 당시 주일예배와 성경 본문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불리는 날에 한 장소에서 도시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집회가 있는데, 거기서는 사도들의 언행록이나 예언자들의 글이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낭독됩니다. 낭독자의 낭독이 끝나면, 그 집회의 인도자는 강론을 통하여 이러한 고귀한 일들을 본받으라고 권고합니다.

물론 여기에 기록된 '사도들의 글'과 '예언자들의 글'이라는 표현은 매우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 문헌이 기록된 연대가 기원후 165년경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시는 신약성경이 아직 정경화되기 이전이므로 사도들이 글이라는 것이 신약성경, 즉 복음서와 서신서를 지칭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언자들의 글은 오경과 예언서 등 구약성경을 뜻하는 것입니다.
4세기 문헌인 『사도규약』은 이보다 더 구체적이어서, 성경봉독은 율법서와 예언서와 신약과 복음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문헌을 보면, 적어도 세 곳의 성경봉독이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며, 동시리아 교회는 오늘날까지 네 곳의 성경봉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형태는 역시 세 곳의 성경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4세기 당시 예루살렘과 시리아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로마 등에서는 예외없이 세 곳의 성경봉독을 했는데, 이는 구약에서 한 곳, 신약의 서신서에서 한 곳, 그리고 복음서에서 한 곳을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 곳의 성경을 읽는 관습은 8세기에 들어서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구약봉독이 예배에서 사라졌고, 중세기 내내 구약은 예배에서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16세기의 로마 가톨릭과 루터교, 그리고 성공회는 중세의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예배에서 구약을 읽지 않았습니다. 개혁교회는 그나마 남아 있던 두 개의 성경봉독을 하나로 줄였습니다. 예배에서 하나의 긴 본문만 읽고 설교에서 그 본문을 주석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전통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교회들은 고대 교회의 전통을 회복하여 주일낮예배에서 다시 세 개의 본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표준성서정과가 매주 세 개의 성경 본문을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배에서 이렇게 성경을 세 곳이나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예배운동은 왜 다시 성경봉독을 세 곳으로 회복했을까요? 단순히 그것이 초대교회의 관습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 곳의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봉독 그 자체에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구약을 봉독하는 이유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야말로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신서는 나사렛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그분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사도들이 그분을 메시아라고 증언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읽고, 복음서는 바로 메시아 자신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세 개의 본문을 읽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는 방편이며,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한 선포이고, 예배의 그리스도 중심성을 확보해주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설교는 이렇게 읽은 말씀에 대한 주석과 권면의 기능을 위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에서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하는' 차원을 넘어서는데, 그것은 '육신이 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즉 하나님의 구속사를 지금 여기에서 재현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성경봉독이 단지 설교를 위한 증거 본문으로서 기능하며, 성경 본문도 목회자에 의해 임의로 선택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예배가 구속사의 요약이라는 사실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전도나 봉사, 헌신, 기도, 헌금 등 설교자가 의도하는 특정 주제를 말하기 위한 근거로 성경봉독이 이용되기 때문에 성경 본문이 설교의 부속물로 전락하는 주객전도의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세 개의 본문을 읽는 관습이 하루빨리 회복되어야 하며, 성경봉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