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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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초대교회공동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아리마대 사람 2024. 11. 24. 23:38

(사도행전 2:40-47)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처음 시작된 교회공동체에서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한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는 일이 일어났다.

많은 교회공동체가 초대교회를 본으로 삼고 초대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초대교회의 순수한 믿음을 따르겠다는 다짐 때문일 뿐만 아니라 "한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는" 교회의 성장을 바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성장만을 바라네...'라는 삐딱한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①초대교회가 처음으로 시작된 때 이후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②초대교회를 지향한다는 많은 교회들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

 

초대교회를 본으로 삼고 초대교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대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때의 교회공동체의 모습이 가장 순수한 의미, 가장 순전한 형태의 초대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신약성경이 없었다. 이 당시의 신약성경은 구전의 형태였고, 신약성경이 글로 쓰여진 것은 이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함께 지내며 직접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 곧 살아있는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들을 통해서였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들 사도들이 가르쳐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을 것이다. 바울 또한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여 사도들로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을 것이다. 글로 써서 기록하고 이를 다시 읽고 학습하여 배운다는 것이 몹시 어렵던 시대의 성도들은 사도들이 가르쳐 주는 바를 집중해서 듣고, 머리에 기억하고, 이를 다시 되새김으로써 배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사도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배웠을 것이다.

 

-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는 함께 모여 떡을 떼는 일이 중요한 과정이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기간 동안 끊임없이 이동하시고 식사를 하시며, 이 때를 통해 가르치셨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풍습의 영향을 받아 식사하는 일이 무척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당시에도 부유함과 가난함이 존재했고, 이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다. 그래서 야고보는 각별히 이에 관한 교훈을 전하기도 했다.

(야고보서 2:2-3)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초대교회 때에 떡을 떼는 일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일과 동의어였다.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었다는 말은 한마음으로, 한 형제자매로서 함께 모여 떡을 떼고 예배를 드렸다는 말인 것이다. 교회공동체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한마음으로, 한 형제자매로서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지만,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처럼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일은 변질되어 부자들은 예배모임에 먼저 와서 배부르게 먹고 취했으며, 가난한 자들은 일을 하다가 늦게 와서 시장한 채로 예배모임에 참여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1장에는 이에 대해 바울이 꾸짖는 내용이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1:21-22)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린도전서 11:33-34)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초대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않았고, 모두가 주 안에서  한마음으로, 한 형제자매로서 모였음을 나타낸다.

 

-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초대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분명히 성도들이 모여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4-5)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따라 제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으며, 성경이 이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1:12-14)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리고 오순절에 기도하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사도행전 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따라서 사도들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본 초대교회의 처음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했던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초대교회의 처음 성도들 또한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 초대교회의 처음 성도들은 교회공동체 내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않았고, 서로를 주 안에서 교제하는 한 형제자매로서 생각했지만, 이것은 기계적이고 관념적인 평등의 사고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형편과 처지를 살펴보고 불편과 필요를 채워주는 긍휼의 마음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들은 말로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실제로 사랑을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즉 살아서 행하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맨 처음의 초대교회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실제로 행하는 공동체였다.

(야고보서 2:14-17)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또한 이 일은 그들의 마음에 넘치는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기쁨과 감사에서 비롯되었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가복음 10:23-25)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함께 모여 떡을 떼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과 가르침을 듣고 배울 수 있는 모임은 초대교회 공동체에게 있어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일은 그들에게 있어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같이하는 공동체 위에 성령이 임하셨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1:13-14)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맨 처음의 교회공동체는 한마음으로, 한 형제자매로서 함께 모여 떡을 떼고 예배를 드렸다. 떡을 떼는 일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님을 기념하는 일이었다.

(고린도전서11:23-29)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적 없는 바울이 이를 전했다는 사실로부터 사도들이 이를 가르쳤음을 알 수 있고, 초대교회 공동체 또한 사도들로부터 떡을 떼는 일의 의미를 배웠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떡을 떼며 이 땅에 육신으로서 현현하신 예수님을 기념했고, 포도주를 마시며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기념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 놀랍고 감사한 사실 앞에서 감사로 기뻐하며 예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의 마음으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었다. 

 

- 하나님을 찬미하며 : 초대교회 공동체는 창세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또한 사도들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익히 배워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가복음 1:1)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1:11)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3:11)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마가복음 5:7)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마가복음 9:7)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마가복음 15:39)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따라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계획하시고 이루신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초대교회를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소홀히 하는 점이 이 부분이다.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 거듭난 성도들은 죄의식, 운리의식 또한 거듭남으로써 죄악된 행위나 비윤리적인 행위는 일절 행하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습이 다르다'라는 당시의 증언들이 기록으로 남아있기도 한 것으로 보아 이 사실은 명백하다.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은 높은 수준의 윤리적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눈총을 받을 짓은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당연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위법, 탈법, 불법 행위는 아예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위법, 탈법, 불법 행위에 관한 뉴스에 이름이 등장하는 그리스도인들, 목회자들, 교회공동체들이 얼마나 많은가?

초대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사회의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넘어서서  이 사회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기에 이르기까지 적극적 태도로서 교회공동체의 윤리성과 도덕성과 준법성을 드러내고 보여주어야만 한다.

 

교회공동체가 처음 생겨났을 때의 성도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들은 오로지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 사회에서 칭송을 받는 공동체로서 살았던 것이다.
'초대교회'를 본으로 삼는 많은 교회공동체와 성도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무엇을 구하기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 바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초대교회'를 이루어가고자 하는 교회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