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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사람 2024. 11. 29. 16:59

| 김정은에 등돌린 北 청년들, "처형 당해도 한국 드라마 못 끊어"
 
한 20대 탈북민이 최근 북한 젊은이들이 당국의 엄격한 통제 등에 대한 불만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해 10월 탈북해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강규리씨(24·가명)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강씨는 인터뷰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처형하는 김정은에게 충성심은 없다"며 "당국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우리 세대 특징이다. 북한 사회 변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강씨는 지난 26~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과 강연 행사에 참석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특권층이 몰려 사는 평양에서 태어나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다 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탈북했다. 대학에서 탁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강씨는 북한 주민의 열악한 생활을 전했다. 강씨에 따르면 경제난 때문에 북한 당국의 배급이 끊긴 상태다. 주민들은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종합시장에서 생활필수품을 구입한다. 강씨는 "북한은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라며 "대학에서도 교수에게 뇌물을 주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14세 때부터 '겨울연가', '상속자들', '이태원 클라쓰' 등 다양한 한국 드라마를 즐겨봤다고 한다. 탈북 전날 밤까지 계속 보던 드라마는 '김비서가 왜 그럴까'였다고.
강씨는 남한 문화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과도한 규제도 꼬집었다. 그는 "길을 걸을 때마다 경찰이 불러 세워 휴대전화로 '오빠' 같은 남한식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는지 조사했다"며 "한국 드라마를 본 청년들에 대한 공개 재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국 영화 등을 몰래 시청한 북한 젊은이들이 공개 처형됐다는 소식에도 강씨는 고된 삶을 견디게 해주는 한국 드라마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을 비롯한 북한의 젊은 세대는 집단과 조직보다 개인의 삶과 행복을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강씨는 지난해 10월 부모님, 동료 1명과 함께 함경남도에서 목선을 타고 탈북한 뒤 처음 마주한 한국 사람에 대한 인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탈출하면서) 두려움보다 기쁨이 더 컸다"며 "배 타고 떠난 지 44시간 만에 동해안 속초 앞바다에서 만난 한국 어민이 '탈북했냐'고 묻더니 '잘 왔다'고 해줘서 감동했다. 캄캄한 세상에서 빛이 가득한 세상으로 온 것 같아 눈부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북한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하지만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고 도우려 한다는 것과 남한에 가면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현대사회는 살기에는 편리해졌지만, 사회현상이 복잡해지면서 위험요소가 증가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따라 누구나 사고나 재난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보험이라는 제도가 생겨나 활용되고 있다.
보험은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손실에 대비하거나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수의 경제 주체가 미리 공동기금을 구성하여 두고 재난을 당했을 때 이를 지급함으로써 개개 피해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경제제도이다.
보험의 주된 기능은 여러 사고에 대비하게 함으로써 보험가입자를 경제적 파멸로부터 보호하고 안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위험발생에 대한 불안을 제거해 줌으로써 경제적·정신적 윤활작용을 하여 각 경제 주체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이와 함께 보험은 거대한 자금의 적립을 가능하게 하므로 투자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손실이나 경제적 필요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큰 것 같다. 보험에 가입한다고 해서 사고의 발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보험에 가입한 후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도리어 손해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생활 속에서 우발적인 사고의 발생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매우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작은 확률의 가능성을 가진 위험으로부터 보호 받고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매우 조금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해서 이토록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이토록 준비를 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간'은 채 백 년이 못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간'인 백 년 가량의 시간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면...
만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간'인 백 년 가량의 시간 이후에도 살아가는 기간이 더 있다면...
만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간'인 백 년 가량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이 긴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면...
이야말로 그 시간들에 대비하여 보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보험이 매달 일정액의 큰 금액을 불입해야 할 만큼 부담스럽지 않다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지 않을까?
 
나이를 먹고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 때는 저렇게 팔팔했는데...'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나이를 먹었고,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새삼 깨닫곤 한다.
금번에 폭설이 쏟아진 가운데에 눈이 쌓인 길과 눈이 녹아 물구덩이를 이룬 길들을 조심스럽게 걷고나니 다리가 묵직해짐을 느꼈다. 눈이 오면 신이 나서 뛰어다녔던 어릴 적이 떠올라서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나이를 먹었구나...'
점차 나이를 먹어감과 육신이 예전과 달라짐을 느끼면서 언젠가는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날 날이 올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베드로후서 1:14)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육신은 장막, 곧 텐트이다. 집이 아닌 것이다. 잠시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으나 닳고 낡아지는 까닭에 영구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닌 것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말의 의미 중의 하나는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간'은 채 백 년이 못되고 언젠가는 이 장막을 벗어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겪게 될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신이 호흡을 멈추고 장례절차에 따라 처리되면 그걸로 사람으로서의 존재는 끝인 걸까?"
현재 호흡을 유지하고 생명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이 질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육신의 장례와 함께 사람으로서의 존재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대비로서 보험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보험에 가입해야 할지, 어떻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20대 탈북민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북한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고 도우려 한다는 것과 남한에 가면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
그래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20대 탈북민의 인터뷰 기사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육신의 장막 속에 살면서 이를 벗어날 날이 올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면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의 국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
그래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