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참으로 많이 듣게 되었고, 요즈음엔 특별히 더 자주 듣게 된 한쌍의 단어가 있다. 바로 '보수'와 '진보'이다.
한 쌍의 단어이기는 하지만...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지독히도 뒤섞이지 않는 관계인 것처럼 여겨진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이 한 쌍의 단어가 서로 갈라져서 끊임없이 밀쳐내다가 마침내는 각각의 입장에 고착화된 극단적인 이분법적 가치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는 이 시대,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가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가르고, 그리고 나라를 가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나라 안이 내부적으로 냉전시대를 겪고 있는 듯 하다.
'보수'와 '진보'... 이 두 개념은 과연 그렇게 갈라서야만 하는 것일까?
'보수'와 '진보'...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이 두 개념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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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保守)는 보전할 '보(保)'와 지킬 '수(守)'가 조합된 단어이다. 말 그대로 '보전하고 지킨다'는 의미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은 다음과 같다.
1. 보전하여 지킴.
2.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
진보(進步)는 나아갈 '진(進)'과 걸음 '보(步)'가 조합된 단어이다. 말 그대로 '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은 다음과 같다.
1.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2.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이와 같은 국어사전적 의미에 근거하여 두 단어의 일상적 의미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보수는 제 자리에 머물며 기존의 것, 전통적인 것을 지키고 유지한다는 의미이고, 진보는 변화와 발전을 위해 기존의 것을 떠나 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기존의 것을 지키느냐'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느냐'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단순하게 생각하면 '머물러 있느냐'와 '떠나느냐', '유지하느냐'와 '바꾸느냐'의 차이로 이해할 수가 있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데에 기준을 제공하는 '기존의 것'이 무엇을 생각해 보면, '기존의 질서' 또는 '기존의 가치'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보수는 '기존의 질서'를 보전하고 '기존의 가치'를 지킨다는 입장이고, 진보는 '기존의 질서'를 바꾸고, '기존의 가치'로부터 떠나는 입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을 나누고 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과연 기존의 것(기존의 질서, 기존의 가치)이 가치있는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라고 답을 하면 보수가 되는 것이고, '아니오'라고 답을 하면 진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수와 진보는 큰 차이가 있는 듯 싶기도 한데, 달리 생각하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행을 떠난 상황을 생각해보면...
현재 머물고 있는 여행지에서 현재 머물고 있는 숙소가 맘에 들어서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겠다고 한다면 보수의 입장이 되는 것이고, 새로운 여행지로 이동해서 새로운 숙소에 머물고자 한다면 진보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보수의 경우에는 이미 검증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누린다는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게 되고, 진보의 경우에는 다양한 경험을 누린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불확실한 상황을 맞이하여 불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위험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한 곳에 머무는 것과 이곳 저곳을 다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듯 싶기도 하지만, 한 곳에 머물든, 이곳 저곳을 다니든, 어느쪽이든 여행은 즐겁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휴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이든,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이든 여행은 즐거운 것이라는 말이다.
보수와 진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의 기준점이 되는 '기존의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보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상대적으로 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이의 정당성은 '기존의 것'이 내포하고 있는 정당성을 그대로 물려 받게 된다. 기존의 질서가 정당하다면 보수는 정당한 것이 되며, 기존의 질서가 정당하지 않다면 보수도 정당하지 않게 된다.
진보는 '기존의 것은 정당하지 않다'라는 관점에서 '기존의 것'을 떠나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상대적으로 동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이는 가장 먼저 '과연 기존의 것을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다음으로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방향성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방향과 더불어 '마침내 올바른 것에 도착했는가'라는 도착점이 매우 중요하다. 진보는 새로운 것이 필요한지의 필요성, 과연 올바른 방향인가의 방향성, 과연 올바른 새로운 것에 도달했는가의 평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때에만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기존의 것'이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면, 그래서 견디기가 어렵다면, 보수는 정당성을 갖지 못하며, 진보가 정당성을 갖게 된다. 만약 '기존의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 그래서 반드시 머물러야 한다면, 보수는 정당성을 갖게 되며, 진보는 전당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만일 진보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방향을 향해 이동한 후, 보다 가치있는 새로운 것에 도달하여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상태는 새로운 '기존의 상태'가 된다. 이후에 진보가 이를 지키려 한다면, 이제 진보는 보수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새로운 진보가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한번 보수는 영원한 보수, 한번 진보는 영원한 진보라고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막대자석의 N극, S극과 참으로 유사하다. 만일 막대자석을 반으로 갈라놓는다면... 나누어진 각각의 막대자석은 또 다시 N극과 S극을 갖게 된다. 나누어진 막대자석을 또다시 반으로 갈라놓는다면... 또다시 나누어진 각각의 막대자석들은 또 N극과 S극을 갖게 된다.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 절대적이지 않은 것, 그것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다.
기독교에서의 보수와 진보를 생각해 보자.
기독교에는 절대적 질서와 절대적 가치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기존의 질서와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 기독교 신앙,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이를 지키는 것이다.
(요한1서 5:3)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기독교 신앙은 '기존의 것'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반드시 이에 머물러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에서는 본질적으로 보수가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 보수적 정당성은 "스스로 있는" 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절대적 질서와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심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출애굽기 3:14)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는 하나님 앞에 놓인 인간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적 존재이신 것과 달리 인간은 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 불순종하는 죄를 저지른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죄성으로 말미암아 죄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이 부여하신 절대적 질서와 절대적 가치를 지키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인간은 악을 품고 있으면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존재가 되었다.
(로마서 7:21)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래서 인간은 불법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절대적 질서와 절대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존재이다. 인간은 부정과 불법으로부터 거룩함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로마서 6:19)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인간은 자신이 속해있는 불법, 즉 기존의 것으로부터 거룩함, 즉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불법의 존재였던 까닭에 인간은 진보라는 속성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거룩함의 추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에 속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행하기 위한 것이다. 즉 거룩함을 추구하는 진보는 하나님의 뜻을 보수하기 위한 것이다. 이 진보는 보수를 이루기 위한 진보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말씀과 명령에 대해서는 보수이되, 이 보수에 도달하기 위한 인간의 삶의 모습에 대해서는 진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P. S. 이와 같이 보수와 진보는 상호 호완되며, 절대적으로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바라보면, 이것은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이라고 볼 수 없다. 흔히 '보수 우파', '진보 좌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우파와 좌파 간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우파와 좌파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진행되어온 상황과 그 가운데에 진행된 사건들을 본다면 이것은 보다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일궈온,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을 지키느냐, 아니냐의 싸움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대한민국을 지켜주옵소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로서 깨끗하게, 새롭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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