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빈번히 접하게 되었다.
이 말을 도식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은 산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를 표시한 그림이다. 진리를 산 정상에 비유하여, 산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어느 길을 통해서든 결국은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는 주장을 담은 그림이다.
여기서 진리란 신을 비유한 말이며, 이는 종교다원주의의 관점에서 이야기되는 말이다. 이 말은 종교를 신에 이르는 길로 정의할 때, 어느 길로 가든 정상에 도달할 수 있듯이 어느 종교를 믿더라도 신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신'을 절대적 존재라고 할 때, 절대적 존재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길이든 결국은 동일한 곳에 도달하게 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할 수도 있는데... 과연 어떤 종교를 통해서든 무조건적으로 절대적 존재에게 도달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가 없다. '절대적 존재'라는 말이 마치 유일성을 확보한 듯 이해될 수 있지만, 이것은 착시현상일 뿐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 서로 다른 정상에 당도할 뿐이다.
서로 다른 정상은 서로 다른 산에 존재할 뿐이다.
왜 구태여 서로 다른 산, 서로 다른 정상, 서로 다른 길을 한 곳에 구겨넣고서는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도 동일한 정상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억지이자 궤변이며, 눈속임이자 물타기일 뿐이다.
과연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일 수가 있을까?
'진리'란 참된 이치, 참된 도리를 의미한다.
'참되다'라는 말은 진실하고 올바르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변함없이 일정하다는 속성이 들어있다. 즉 '참되다'라는 속성은 보편성과 절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보편성이라는 개념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라는 말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러나 보편성은 그러한 측면의 속성이 아니다. 보편성이란 언제,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진리는 진리"라는 의미이다.
또한 보편성과 더불어 절대성의 개념이 존재한다. 절대성은 "진리만이 진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절대성과 보편성의 속성을 지닌 '진리'와 관련해서는 "진리인 진리만이 진리"라는 말이 성립하게 된다.
이제 진리를 신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신인 신만이 신"이라는 말이 된다.
이 신도 신이고, 그 신도 신이고, 저 신도 신인 것이 아니다. 신은 유일할 뿐이다.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는 서로 다른 정상에 도달할 뿐이다.
서로 다른 정상, 서로 다른 길을 한 곳에 구겨넣을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종교를 통해서는 서로 다른 신에게 도달할 뿐이다.
서로 다른 신, 서로 다른 종교를 한 곳에 구겨넣을 수는 없다.
아무리 '종교 간 화합'이니 '종교 간 포용'이니 하는 유행어를 적용하더라도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는 서로 다른 정상에 도달할 뿐이며, 이것은 서로 다른 산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참되고, 따라서 유일한 신이라는 절대성과 온 우주의 신이라는 보편성을 가지신 하나님이 깔끔하게 결론을 말씀해 주셨다.
(출애굽기 23:13)
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이사야 44:6)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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