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대부분의 업무가 인터넷 및 자동화된 시스템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한 때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사람의 손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국가 간의 외교나 기업 간의 거래 등과 같이 중요한 일은 사람 간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회사의 업무는 물론이고, 찹쌀떡이나 메밀묵, 은이빨, 생선, 보험 가입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이 사람 간의 만남과 사람의 손을 통해서만 진행되고 처리되었었다. 따라서 손재주나 글씨를 쓰는 재주, 글쓰는 솜씨가 소중하게 여겨졌고, 사람 간의 만남에서도 설득의 기술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자연스럽게 이에 관한 관심도 높았으며, 이에 관한 책들도 참 많았었다. 학교에서는 경필대회나 글짓기대회, 웅변대회 등도 곧잘 열리곤 했다.
그렇다보니 어릴 적에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책들 중에는 설득의 기술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책의 내용 중에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아주 작은 것부터 키워나가는 방법'과 '아주 큰 것부터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아주 작은 것부터 키워나가는 방법'의 대표적인 예는 방문판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벨을 누른 후, 문이 열리고 집주인에게 '좋은 상품을 팔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바로 문이 닫히기 십상이다. 이럴 때 문틈에 발을 밀어 넣는다. 문틈에 발이 끼어 아픈 시늉을 하고, 주인이 미안해하는 그 순간, '하루종일 걸어다녔더니 몹시 힘이 들다'며 물 한 잔만 얻어마실 수 있냐고 부탁한다. 힘들다는 사람의 발까지 아프게 했다는 미안함에 주인이 물 한 잔을 준다면, 물을 마시는 동안 잠시만 설명 드리고 가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문 밖에서 시작하여 현관, 마루까지 들어가고, 물이 참 맛있다는 말에서 시작하여 상품소개에 이르기까지 진행해 나가는 방법이다.
'아주 큰 것부터 줄여나가는 방법'의 대표적인 예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고백을 하는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한다. '나랑 결혼해 줘.' 그러면 상대방은 당황하며 무슨 황당한 말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 썰렁해진 분위기에 압도당하지 말고 호탕하게 '하하하... 농담이야. 나랑 사귀자.' 그러면 상대방은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말도 안된다고 말한다. 절대 실망하지 말고 '그럼, 나랑 열 번만 만나줘.' 그러면 상대방은 싫다고 말한다. 여유를 잃지 말고 '그럼, 나랑 다섯번만 만나줘.' 그래도 상대방이 싫다고 말한다면... '좋아, 봐줄께. 그럼 딱 한 번만 만나줘.' 이렇게 황당무계하게 들릴 정도로 큰 것을 처음에 제안하여 당황하게 만든 후, 점차적으로 처음보다 작은 것을 제안함으로써 차츰 안정시키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해 나가는 방법이 있다.
물론, 예전에나 통했을 방법이다.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사는 시대에 공동현관 출입이 어려워서라도 더이상 방문판매는 흔하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다짜고짜 고백을 했다가는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책에 써있는 방법일 뿐이니 실제로 효과가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어린 마음에 대단히 그럴듯 하게 여겨졌었다. 그 책의 저자는 적어도 어린아이 하나는 설득했던 셈이다. 아무튼 이런 식의 '설득의 기술'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고, 사람들은 설득하고 설득당하기 보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검색을 통해 찾은 정보를 비교 분석, 판단하며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설득의 기술이 설 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득의 기술이 아주 희귀한 것, 그래서 값진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정보화시대라고는 하지만 정보가 사람의 입을 대신하여 설득을 해야할 필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록 직접적으로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설득의 기술은 필요할 것이다.
'설득'이란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국어사전적 의미에는 설득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설득이 갖는 정당성의 근거가 담겨 있다.
목적은 '나의 이야기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위가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되거나 내가 원하는 것에 매우 가까워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여러 가지로'라는 말에는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이 포함된다. 일상에서 '설득'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들을 생각해 볼 때, 아마도 물리적인 방법을 제외한 심리적, 정서적, 논리적인 수단들이 포함될 것이다.
설득이라는 행위가 갖는 정당성의 일차적인 근거는 '나의 이야기'라는 데에 나타나 있다. '나의 이야기'라는 것은 내가 가진 생각, 의견, 주장 등을 가리키므로 설득이 갖는 정당성의 근거는 '나'라는 주체가 된다. '나'가 정당하다면 설득은 정당한 것이 되고, '나'가 정당하지 않다면 설득은 정당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설득을 할 때에는 반드시 "과연 '나'는 옳은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나'는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득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경우가 많고, 이러한 목적의 영향으로 인해 자극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설득이라는 행위가 갖는 정당성의 이차적인 근거는 바로 이 방법의 정당성에서 비롯되는데,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설득이 정당성을 갖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설득이라는 행위 자체가 대부분 '나'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되며, 내가 '나'의 정당성을 판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방법이라는 이차적인 근거가 설득 자체의 정당성을 전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정당성의 근거는 간단히 '나'에 달려있다고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
성경을 펼쳐서 읽으면 초반부터 설득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마도 성경이 1189장으로 길게 쓰여지게 된 동기를 제공한 이야기...
인간이 자신들에게 복으로 주어진, 복이 충만한 낙원을 떠나 고난과 고통 속에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 이야기...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셔서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고 하신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가게 된 이야기...
먼저 이 이야기의 배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명령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너희들이 다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2:16-17)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와 같은 명령을 배경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뱀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이자 뱀이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인 인간이 등장한다. 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입장이지만 하나님께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을 대상으로 삼아 간적접으로 하나님께 위해를 가하고자 한다. 그 위해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인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는 않으실 것이므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자 획책한다. 여기서 뱀의 눈에 뜨인 것이 바로 이야기의 배경인 하나님의 명령이다. 자신이 품은 볼온한 목적을 위해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너희들이 다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절대성을 훼손시키고 이 명령을 인간이 지키지 않도록 만들고자 시도한다. 즉, 뱀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만들고자 획책하는 것이다. 여기서 뱀은 설득의 기술을 발휘한다.
뱀은 하와에게 말을 건다.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들었던 아담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아담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하와에게 말을 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하실 때는 아직 하와가 창조되기 전이었다. 여기서부터 뱀의 교활함이 드러난다.
우리가 뱀과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하와에게 말한다면, '너희들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는 정도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교활한 뱀의 말은 달랐다. 창조된 후, 그때까지 교활함이라고는 도무지 겪은 적이 없었을 하와에게 뱀은 설득의 기술을 발휘한다. 그것은 아마도 '아주 큰 것부터 줄여나가는 방법' 쯤 될 것 같다. 뱀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냐고 묻는다.
(창세기 3:1)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처음부터 황당무계하게 들릴 정도로 큰 것을 질문한다. 여자는 당황하여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창세기 3:2)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이 과정에서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다보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의 절대성을 훼손시키게 된다.
(창세기 3:3)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간접적으로 명령을 전해들은 입장의 하와는 그 찰나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왜곡하여 "죽을까 하노라"로 오염시킨다. 하와의 대답에 의해 하나님의 명령의 절대성이 훼손되자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작하여 변질시키고, 하와를 회유한다.
(창세기 3:4-5)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의 절대성을 훼손시킨 하와는 뱀의 말에 이내 선동된다.
(창세기 3:6)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리고 이내 아담도 하와에 동조하였고, 결국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된다.
(창세기 3:23)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최근, 인간의 삶에 배어있는 고통과 고난의 기원에 관한 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담과 하와의 어리석음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그들의 순진함에 대한 연민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뱀의 교활함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실은 진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2024년 12월 3일 이래로 두 달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작금의 상황 때문이다. 하루빨리 이 상황이 정리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하고 정략적으로 이용되면서 불필요한 국력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까닭은 이 상황이 사실, 곧 진실에 기반하지 않고 선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선동의 바탕에는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선동시킬 때와 동일하게 해석, 왜곡, 오염, 조작, 변질, 회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곧 진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거짓의 태생과 속성에 기인한다. 거짓은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요한복음 8:44)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리고 사탄의 목적은 "멸망"이다.
(요한복음 10:10)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것,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 거짓말의 원인, 거짓말의 결과는 모두 그 목적이 "멸망"인 것이다.
한 개인의 일이 거짓말과 연관될 때, 그 개인에 대한 신뢰와 존엄성이 멸망한다.
한 국가의 일이 거짓말과 연관될 때, 그 국가의 질서와 존립이 멸망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선악과 사건을 연상시키는 시간들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성경말씀이 진리임을 깨닫는 시간들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