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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야고보서

야고보서 3장

아리마대 사람 2017. 1. 25. 21:26

************ 야고보서 3장 ************

 

야고보 사도는 1장에서 혀의 작용으로서의 말에 관한 가르침을 언급한 바 있다.

(야고보 1:26)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그리고 바로 앞 2장에서는 행함을 말한바 있다.

이제 3장에서는 행함 중에서도 '혀와 말'에 관한 행함을 강조한다. 이는 당시에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 사이에서, 또한 교회 내에서 말로 인한 다툼과 분쟁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Not many of you should presume to be teachers, my brothers, because you know that we who teach will be judged more strictly.

내 형제들아

이 말은 단락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새로운 단락의 시작을 나타낸다.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유대인 사회를 생각해 본다면 '선생'이라는 단어로부터 '랍비'를 떠올릴 수 있다. 랍비는 율법 교사나 서기관 등 종교 지도자를 비롯해 학식이 많은 스승이나 존경받는 사람을 일컫는 경칭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다.
(마태복음 23:6-7)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호칭을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신다. 아예 그와 같은 호칭으로 불리지를 말라고 말씀하신다. 랍비라는 호칭을 생각할 때, 또한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들 모두가 그저 같은 형제일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3:8)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초대교회를 생각해 본다면 선생의 역할을 하는 직분을 떠올릴 수 있다. '가르치는 장로'이다.

(디모데전서 5:17)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또한 이로부터 장로와 거의 유사한 '감독'이라는 직분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직분을 맡은 자들이 가르치는 일을 했음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하겠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실은 성령의 은사였다.

(로마서12:6-8)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그리고 바울은 교사를  사도와 선지자 다음으로 손에 꼽으며,  교회 내에서 매우 중요한 일로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말했다.

(고린도전서 12:28-29)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이상의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랍비, 곧 가르치는 자, 선생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된다. 호칭이 행위에 수반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할 수 있다.

②가르치는 일은 성령의 은사이다.

즉, 가르치는 일은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인 것이다.

왜 그럴까?

기본적으로 '선생'이라는 호칭에는 타인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존경의 의미가 포함된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선생이 되고자하는 것은 욕심이고 교만이다.

또한 대부분의 가르침의 내용에는 단순한 지식만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과 이에 근거한 판단을 전달하는 것이 포함된다. 즉, 선생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판단의 기준을 전달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크게는 세계관을 전달한다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선생으로서 올바른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만일 올바른 것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선생이 된다는 것의 책임은 참으로 큰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랍비라고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 책임감을 제켜두고 랍비라는 호칭을 위해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꾸짖으신다.
(마태복음 23:13-15)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만일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실족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감당할 수 조차 없게 된다.
(마태복음 18:6-7)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We all stumble in many ways. If anyone is never at fault in what he says, he is a perfect man, able to keep his whole body in check.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누구나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까닭은 사람이 실수가 많은 존재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실수의 대부분은 말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데, 선생으로서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이 바로 말이다. 선생은 각별히 말에 유의해서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말은 성대를 통해 공기의 파동을 발생시킴으로써 약속된 소리를 내는 행위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표현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상호작용의 방법들 중에서도 말을 통한 상호작용은 아마도 가장 간편한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말은 가장 쉽게, 가장 자주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실제로 가장 쉽게, 가장 자주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기도 하다. 신문을 통해 접하는 수많은 설화(舌禍)의 소식들, 그러한 말실수를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설화의 소식들이 이를 매우 잘 보여준더. 이러한 말실수의 결과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부터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거나,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데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마태복음 15:10-11)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 곧 입과 혀를 지키는 사람을 가리켜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실수의 가능성이 가장 큰 말에 있어서 실수가 없다면, 생각이 깊고 사리분별이 정확하며, 바른 행동으로써 자신의 온 몸에도 굴레를 씌워 말뿐 아니라 행위에 있어서도 실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환난 가운데에서도 능히 자기의 영혼을 지킬 수가 있을 것이다.
(잠언 21:23)
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When we put bits into the mouths of horses to make them obey us, we can turn the whole animal.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5절에서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사람은 온 몸도 굴레 씌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입에서 나오는 말을 단속한다는 것은 중요하며, 이는 사람의 행위와 사람의 전 인격까지도 좌우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가 있다.

이로부터 연상된 것이 말의 입에 물린 재갈이다.

재갈은 말을 다루기 위해 말의 입에 물린 금속 막대로서 양쪽 끝에 고리를 달아 고삐를 연결하고, 이를 잡아당김으로써 말의 진행방향을 조정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의 발명을 통해 인간은 자신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센 말이라는 짐승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의 전 인격을 좌우하는 것이 마치 말의 입에 물린 재갈이 말의 진행방향을 좌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갈은 인간이 말을 순종하게 만드는 목적을 지닌 것으로서 가치중립적인 특성이 있다.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Or take ships as an example. Although they are so large and are driven by strong winds, they are steered by a very small rudder wherever the pilot wants to go.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말(言)의 영향력을  말(馬)의 진행방향을 제어하는 재갈에 비유한데 이어서 배의 진행방향을 제어하는 작은 키에 비유한다.

배의 키는 그 크기가 배 전체에 비해 매우 작지만, 이를 통해 배의 진행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

이는 말이 사람의 삶의 방향에 영향을 주며 삶의 방향까지도 결정하기까지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가 있다.

이 비유는 아마도 야고보가 갈릴리 지방에서 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작은 키는 광풍에 밀려가는 배를 운행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것으로서 유용한 것으로서 나타난다.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Likewise the tongue is a small part of the body, but it makes great boasts. Consider what a great forest is set on fire by a small spark.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말의 입에 물린 작은 재갈이 말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주듯이, 배의 작은 키가 배의 진행방향에 큰 영향을 주듯이 혀는 사람의 신체 중에서 작은 기관에 불과하지만 그 영향력은 그 어느 신체기관보다 크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다시 한 번 혀의 영향력을 비유로서 표현한다.

여기서는 혀를 작은 불에 비유하고, 그 영향력을 많은 나무를 태우는데에 비유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는 사건으로서는 산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산불이 발생하면 수많은 나무들뿐만 아니라 목지와 자연 경관과 동물들이 소실된다. 게다가 한번 화재가 발생하면 삽시간에 번져 나가며, 따라서 진압하기도 매우 어렵다. 화재가 진압되더라도 주변은 이미 황폐화된 상태가 되고 만다.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는 구절은 이와 같은 피해까지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혀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표현이자, 혀, 곧 말로 말미암는 결과의 무서움에 대한 극적이고도 효과적인 표현이다.
삶을 송두리채 소멸시키기도 하는 혀, 곧 말의 파괴력을 담고 있는 비유로 이해할 수가 있다.

여기서 작은 불은 많은 나무를 태우는 결과를 만드는 것으로서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재갈(3절), 작은 키(4절), 작은 불(5절) 모두 크기가 작은 것들이지만, 말들(3절), 배(4절), 많은 나무(5절) 등의 큰 것에 영향을 끼친다.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The tongue also is a fire, a world of evil among the parts of the body. It corrupts the whole person, sets the whole course of his life on fire, and is itself set on fire by hell.   

혀는 곧 불이요 

혀의 파괴력을 '많은 나무를 태우는 작은 불'에 비유한 것이 교훈을 전달하는 데에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한 번 직접적으로 "혀는 불"이라고 말씀한다.

불의의 세계라
또한 혀는 그 자체로서의 파괴력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수많은 악행과 사건을 종횡으로 발생시켜 사람을 그 영향력의 범위에 가둔 채로 더럽히고 파멸시키는 불의의 시스템, 곧 "불의의 세계"를 형성한다.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삶의 수레바퀴"는  '인간 존재의 과정' 또는 '우리 삶의 과정'이라는 의미로서 길흉화복이 교차하고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변화무쌍한 인생 노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당시에 널리 쓰이던 관용적인 표현이다.

혀는 그 영향력으로써 온 몸, 곧 사람의 전 인격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고난을 겪게 만들거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 영향력은 삶의 수레바퀴를 태우는 지옥불과 같으며, 이 지옥불은 삶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내내 타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수레바퀴가 더 이상 굴러갈 수 없도록 태워서 소멸시키기도 한다.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All kinds of animals, birds, reptiles and creatures of the sea are being tamed and have been tamed by man,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사람은 태초에 하나님께로부터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

(창세기 1:28)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또한 사람은 각종 들짐승과 각종 새의 이름을 지어준 존재이기도 했다.
(창세기 2:19)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실제로 사람은 기술과 지혜를 이용하여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기르며 길들여 왔다.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but no man can tame the tongue. It is a restless evil, full of deadly poison.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사람은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으며, 더 나아가서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지만, 자신의 신체 중 작은 기관에 불과한 혀를 길들일 수는 없었다.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쉬지 아니하는"이란 말은 본래 '불안정한, 일정하지 않은, 침착하지 못한'이라는 의미이다.

길들지 않는 혀는 말을 함부로 뱉음으로써 쉬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악이며, 이러한 혀의 행태는 마구잡이로 발사된 포탄과도 같이 어디에 떨어져 어떤 피해를 일으킬지 예상할 수가 없다.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죽이는"이란 말은 본래 '죽음을 초래하는, 치명적인'이라는 의미이다.

"삶의 수레바퀴를 불태우는 것(6절)"이라는 표현과 연결된다.

그래서 다윗은 악인은 뱀과 같으며, 그들의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표현했다.

(시편 140:3)

1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2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셀라)

입 안에 위치한 신체기관일 뿐인 혀가 이렇게 악한 결과를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가르쳐 주셨다.
(마태복음 15:18-20)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혀는 소리를 내는 기관에 불과하지만, 그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뜻과 생각을 담고 있는 말이며, 말이 담고 있는 뜻과 생각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과 같은 악한 것들울 내 보낸다. 따라서, 혀는 말을 이용하여 이와 같은 것들을 쉴 새 없이 실어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With the tongue we praise our Lord and Father, and with it we curse men, who have been made in God's likeness.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예배에 참석한 모습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지음을 받은 존재이다.

(이사야 43: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를 위해 혀를 지니고 있고, 혀를 움직여 찬송하며 이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예배에서의 모습과 더불어 세상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상 생활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비교해 보자.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혀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갖은 욕설과 저주의 말을 내뱉는다.

야고복 사도는 놀라운 가르침을 전해준다.

우리가 살면서 내뱉는 저주의 말의 대상인 상대방은 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존재이다.
(창세기 1:27)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즉,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향해 욕설과 저주의 말을 뱉는 것은 살인과 연계되는 죄라고 가르쳐 주셨다.

(마태복음 5:21-22)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Out of the same mouth come praise and cursing. My brothers, this should not be.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사람은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다.

이 하나의 입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찬송이 나오는 한편, 사람을 향한 저주가 나온다. 게다가 저주의 대상인 상대방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내 형제들아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교훈을 배우기를,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행하지 않기를, 교회 내에서 이와 같이 일들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어쩌면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 저주의 말을 뱉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주의 대상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며, 하나님의 창조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모순된 행동이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이 모순된 혀로 드리는 찬송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찬송이 될 수 있을까?
남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려 경건을 위장한다.

(마태복음 23:25-28)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하나님을 향한 척 하면서, 또한 겉으로는 아름다운 척 하면서 찬송의 '소리'를 낼 수 있지만, 사람을 향할 때에는 그 안에 가득한 탐욕과 방탕, 외식과 불법이 저주의 말로써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회칠을 하더라도 그 속에 가득한 더러운 것들의 본성과 악취는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다.

(마태복음 12:34-35)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결코 합당하지 않은 것이며,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인 것이다.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Can both fresh water and salt water flow from the same spring?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과연 한 개의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솟아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억지를 부려 설령 한 개의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솟아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단 물을 단 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떤 사람이 악행과 선행을 행한다고 할 때, 과연 그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한 개의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솟아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My brothers, can a fig tree bear olives, or a grapevine bear figs? Neither can a salt spring produce fresh water.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무화과나무에서는 무화과가 맺힐 뿐, 결코 감람 열매가 맺힐 수는 없다.

포도나무에서는 포도가 맺힐 뿐, 결코 무화과가 맺힐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짠 물로 채워져 짠 물만을 내는 샘에서는 결코 단 물이 나올 수가 없다.
이처럼  탐욕과 방탕, 외식과 불법으로 채워진 속마음으로부터는 결코 혀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찬송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혀와 입은 깨끗해짐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길들여짐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사야를 통해서 이를 배울 수 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의 임재를 경험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이 죄의 통로이며 얼마나 더러운지를 깨닫고, 죄인인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음을 고백했다.

(이사야 6:5)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 때 스랍 중 하나가 제단에서 핀 숯을 가져와서 그의 입술에 대어 깨끗하게 하였다.

(이사야 6:6-7)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 후에 비로소 이사야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야 6:8)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입술과 혀와 입이 깨끗하게 거듭날 때, 죽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Who is wise and understanding among you? Let him show it by his good life, by deeds done in the humility that comes from wisdom.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지혜와 총명"은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유사한 의미의 "지혜와 명철"은 성경 전체에 걸쳐 전도서 7:25에서 한번 언급될 뿐이지만, "지혜와 총명"은 출애굽기 31:3부터 시작하여 야고보서 3:13의 이 말씀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총 13번 언급된다.

성경에 언급된 내용들을 살펴 보면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스스로)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야고보서가 앞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어 이야기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선생(1절)"을 말하고, 이의 실제적인 의미인  '(스스로)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자'는 '선생(이 되고자 하는 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선행"은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행위, 곧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행위를 가리킨다.

(야고보서 2:24)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지혜의 온유함으로"는 '지혜의 온유함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지혜의 온유함은 지혜로 말미암은 온유함, 지혜로부터 비롯된 온유함, 온유함을 지닌 지혜가 자신을 드러내는 그 온유함을 가리킨다. 즉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행동으로 온유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선행"이 '선한 행함'으로서 "행함"과 중복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는 구절은 '지혜로부터 비롯된 온유한 행위를 통해 그 지혜를 보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야고보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려면 그 무엇의 특징이 드러나는 행함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행함으로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야고보서 2:18)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이 말씀은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는 말씀의 연장선 상에서 "온유한 선행이 없는 지혜는 죽은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고보서 2:26)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But if you harbor bitter envy and selfish ambition in your hearts, do not boast about it or deny the truth.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마음 속의 지혜와 총명이 선행을 통해 겉으로 보여지듯이, 만일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이로 말미암은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는 것을 알면 자신의 의로움를 자랑해서는 안된다.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을 알면서도 자랑하는 자들이 바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켜도 되지만,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3:1-3)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Such 'wisdom' does not come down from heaven but is earthly, unspiritual, of the devil.   

이러한 지혜는

"이러한 지혜"는 "자랑"이나 "거짓말"의 형태로 나타나는 지혜를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혜가 아니라 "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진리를 거스르는 속성이 있다.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은 '참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파생된 것이며, 이에 관해서는 17절에서 정식으로 말할 것이다.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닌 이러한 지혜의 출처를 설명한다.

"위로부터"가 아니라 "땅 위"로부터, "정욕"으로부터, "귀신"으로부터 온 것이다.

먼저 안을 깨끗이 하면 겉도 깨끗해진다.
(마태복음 23:26)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이와 같이 먼저 마음 속에 지혜와 총명이 가득하면 선행을 통해 나타나지만, 주의할 점은, 겉으로 보기에 선행으로 여겨진다고 해서 그 마음 속이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져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회칠한 무덤'과 같이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함에도 겉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깨끗하게 꾸미는 경우, 곧 외식하는 경우이며, 실은 그 속에는 지혜와 총명 대신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지혜가 아니고, 세상의 꾀이며 육신의 정욕을 따른 것이다. 또한, 사람을 속이는 것이므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요한복음 8:44)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For where you have envy and selfish ambition, there you find disorder and every evil practice.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독한 시기와 다툼의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것은 바로 '시기' 때문이었다. 이는 대제사장들의 마음 속에 가득한 시기가 행위로서 드러난 것이었다.
(마가복음 15:1, 10)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다툼'은 마음 속의 미움, 교만, 분노, 패역, 거만, 욕심으로부터 비롯되어 나타나는 행위이다.
(잠언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잠언 13:10)
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5:18)
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16:28)
28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잠언 22:10)
10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잠언 28:25)
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시기의 결과로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넘겨졌고, 미움, 교만, 분노, 패역, 거만, 욕심의 결과로서 다툼이 나타난다.
시기와 다툼의 결과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의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But the wisdom that comes from heaven is first of all pure; then peace-loving, considerate, submissive, full of mercy and good fruit, impartial and sincere.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며,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지혜도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이 분명하다.

(야고보서 1:17)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 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며, 하나님의 부르심과 영광과 능력을 알게 된다.
(에베소서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이 지혜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결이며, 다음으로는 화평이다. 또한, 이 지혜는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
여기서 지혜를 통해 맺게 되는 선한 열매는 성령의 열매라고 이해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지혜의 선한 열매를 성령의 열매로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은 지혜의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8)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Peacemakers who sow in peace raise a harvest of righteousness.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3절로부터,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진 사람은 지혜로부터 비롯된 온유한 행위를 통해 그 지혜와 총명을 나타낼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온유한 행위의 모습은 17절에 나타나 있다.
이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채워진 사람은 성결한 삶을 살며, 자신의 삶 가운데, 또한 세상 가운데 화평을 심는 사람, 곧 '화평케 하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9)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심으로 화평을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다.
(골로새서 1:19-20)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기 때문에, 그들도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화평을 심은 자들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 그런데, 이사야에 따르면 화평 자체가 공의의 열매이며,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이사야 32:16-17)
16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화평을 심어 거두게 되는 의의 열매는 완전한 화평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누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22:3-5)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 결과는 6절의 결과와 비교하여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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