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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야고보서

야고보서 2장

아리마대 사람 2017. 1. 25. 20:51

************ 야고보서 2장 ************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My brothers, as believers in our glorious Lord Jesus Christ, don't show favoritism.  

내 형제들아

이 말은 단락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새로운 단락의 시작을 나타낸다.

로마의 각 처로 흩어져 사업에 종사하던 유대인들은 탐욕에 빠지기 쉬웠고, 따라서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에 빠지기 쉬웠다.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예수님께서는 물질주의, 배금주의는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랑의 대상은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빠지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9:23-2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여기서 부자는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빠져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 지켜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뒤로 한 채 탐욕과 물질에 눈이 어두워 배금주의에 빠진 자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돈과 재물에 두며, 돈과 재물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과 재물이 되면, 사람을 대할 때도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소유, 곧 그 사람에게 속한 돈과 재물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 판별, 판정하게 되며, 1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낮은 형제'와 '부한 자'를 구분하고 차별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27)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의 눈에 드러난 것들이다. 물질적인 것,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 따른 것들이다.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Suppose a man comes into your meeting wearing a gold ring and fine clothes, and a poor man in shabby clothes also comes in.  

만일 너희 회당에

'회당(쉬나고게)'은 유대인 공동체의 생활의 중심이었다. 야고보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서신이기 때문에 회당이 언급되고 있다. 바울도 맨 처음 회당에서 예수님을 전했다.

(사도행전 9:19-20)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유대인과 회당 중심>의 선교는 차츰 <이방인 중심>의 선교로 변해 가는데, 야고보서는 아직 <유대인과 회당 중심>의 시기에 작성되어 배포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주후 40-45년경에 쓰여진 책으로 추정하며,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책으로 추정하고 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있을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큰 박해로 인해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써서 보낸 서신으로 생각된다.

(사도행전 8:1)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야고보 사도는 여기서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에 관해 매우 이해하기 쉽고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부유한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물질적인 것,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If you show special attention to the man wearing fine clothes and say, Here's a good seat for you, but say to the poor man, You stand there or Sit on the floor by my feet,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빠져 모든 사람을 물건처럼 평가하고 차별하는 사람은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할 것이므로 아름다운 옷을 입은 부유한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어줄 것이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서 있든지 자신의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고 말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have you not discriminated among yourselves and become judges with evil thoughts?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은 세상의 물질을 기준으로 삼는 악한 생각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차별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존재이다.

(창세기 1:27)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래서 1절에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차별하여 대하는 행위에는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행위가 이미 들어있다.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Listen, my dear brothers: Has not God chosen those who are poor in the eyes of the world to be rich in faith and to inherit the kingdom he promised those who love him?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라는 말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정리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 이는 1:9의 말씀과 같다. 

(야고보서 1:9)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하나님께서 야고보에게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실 것이라고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이는 경험에 따른 야고보의 깨달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여기서 "자기(하나님) 사랑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다. 6절도 "가난한 자"를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가난한 자"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칭하고 있으며, 이들은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된다.

약속하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다. 가난한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천국을 상속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다.

(마태복음 5:3)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10)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3 말씀을 참고하면,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9:23-2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모든 가난한 자가 믿음에 부요한 것은 아니지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이다.
(누가복음 16:22-23)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과연 가난한 자만이 믿음에 부요하고, 부자는 믿음에 부요할 수가 없는가?

부자도 믿음에 부요할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믿음에 부요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데에 있어서 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기준에 부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자는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돈에 집중하여 돈을 모으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돈만 바라보며,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에 빠져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가 쉽다. 또한, 부자는 남들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된 이후에도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소유하려 애쓰기 쉽고, 또한 돈을 쓰며 사는 과정에서 돈을 이용하여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세상에 속하여 세상에만 집중하기가 쉽고, 하나님보다 돈과 세상을 더 사랑하기가 쉽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부자가 되더라도, 만일 스스로 겸비하여 돈을 향한 욕심에 빠지지 않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고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리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9:23-2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믿음이 없는 배우자를 선택하면서 반드시 믿음의 가정을 세우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이루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부자가 되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9:25-26)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가복음 10:26-27)

26 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 18:26-27)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수 있으실까?

성령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게 하셔서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이기는 믿음 가운데로 인도하실 수도 있고, 욕심을 내어 손아귀에 꼭 쥐고 있던 돈을 다 없애버리심으로 말미암아 회개하고 세상을 따르던 죄의 길로부터 돌이키도록 만드실 수도 있을 것이다.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But you have insulted the poor. Is it not the rich who are exploiting you? Are they not the ones who are dragging you into court?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가난한 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2-3절에서 예를 들어 설명했듯이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좋은 자리에 앉히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은 서 있게 하거나 발등상 아래에 앉히는 행위를 가리킨다. 눈에 보이는 재물을 기준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를 판단하여 차별하는 것은 곧 업신여기는 행위이다.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업신여기는 행위의 시작이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하셔서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시지만,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들이 기꺼이 좋은 자리를 내어주는 부자는 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려운 사람들이다. 또한 당시에도 부자들이 덕을 베풀며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부자들은 탐욕으로 인해 더 많은 물질을 갖고자 애쓰기 때문에 작은 물질적 손해에도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간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자는 손해를 참지 못하고, 소송을 감당할 물질을 소유하고 있으며, 소송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 배금주의로 인해 부자를 존중하는 어리석음이 행해진다.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Are they not the ones who are slandering the noble name of him to whom you belong?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1절가 5절에서 언급했듯이 물질주의와 배금주의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가 된다.

(마태복음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부자들은 하나님 대신 돈을 더 사랑하고, 재물을 더 많이 가졌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교만하며,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숭배하기 때문에, 곧 그들의 신은 재물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비방하는 행위도 쉽게 저지르곤 한다.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If you really keep the royal law found in Scripture,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you are doing right.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내용과 사람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에 대한 내용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레위기 19:18)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예수님께서도 계명을 요약하여 말씀해 주셨다.

(마가복음 12:29-31)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람 간에 지키고 살도록 주신 계명을 지키고 살면 잘하는 것이 분명하다.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But if you show favoritism, you sin and are convicted by the law as lawbreakers.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눈에 보이는 물질을 기준으로 외모를 판단하여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여 대하는 것은 명백히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다. 즉, 8절에 기록된 "최고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며,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므로 죄를 짓는 것이 되는 것이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For whoever keeps the whole law and yet stumbles at just one point is guilty of breaking all of it.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율법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지켜 행한다는 의미이다.

(여호수아 23:6)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만일, 단 하나라도 어긴다면 그 즉시 "율법을 범한 자"가 되고 만다.

따라서, 율법 중의 단 하나의 항목만을 범하는 것이나, 율법의 모든 항목을 범하는 것이나 모두 "율법을 범한 자"인 것이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 하나로 인해 "율법을 범한 자"가 되고 만다.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For he who said, 'Do not commit adultery,' also said, 'Do not murder.' If you do not commit adultery but do commit murder, you have become a lawbreaker.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율법 중에는 '간음하지 말라'는 항목과 '살인하지 말라'는 항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만일 '간음하지 말라'는 항목을 지키더라도 '살인하지 말라'는 항목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즉시 "율법을 범한 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율법을 범한 자"라는 개념은 모든 율법을 모두 지키지 않는 자와 다름없다.

그리고 이제 주제는 율법을 지키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변경되고 있다.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Speak and act as those who are going to be judged by the law that gives freedom,  

이처럼 율법은 본래 엄격하며, 율법을 범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도 그 중의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야고보 사도는 '자유의 율법'을 말하고 있다. 이는 1:25에서도 언급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이지만, 그 목적은 자유를 주기 위함이며, 엄격한 율법 조문의 적용을 통해서 '범법자', 곧 '율법을 범한 자'로 정죄하기 위한 율법이 아니다.
'자유의 율법'이 이처럼 '범법자'로 정죄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온 율법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연약함 존재임을 잘 알고 계시는 분,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는 분께서 주신 율법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4:15)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래서 그 분께서는 사람들 간에도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살기를 원하신다.
(마태복음 12:7)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자유의 율법'은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며,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이다. 이 '자유의 율법'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참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누가복음 16:16)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중의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어버리는 율법과 달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주는 율법이다.
(요한복음 3:16-18)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자유의 율법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오직 은혜와 긍휼의 율법이다. 그래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받은 긍휼과 은혜를 베풀며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because judgment without mercy will be shown to anyone who has not been merciful. Mercy triumphs over judgment!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받고자 하는 대로, 곧 남에게 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마태복음 7:12)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남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고자 한다면 긍휼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남에게 긍휼히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남에게 긍휼히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남에게 긍휼히 행하지 않는 사람이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어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남에게 긍휼히 행한 사람이라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긍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본래 심판은 행위대로 판결이 내려질 뿐, 긍휼과는 무관한 절차이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모든 심판은 '긍휼 없는 심판'인 것이다.
그러나, 긍휼의 심판에서는 '긍휼 없는 심판'과 다른 판결이 내려진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는 긍휼이 판결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긍휼은 비판을 막아주고, 긍휼은 정죄를 막아주고, 긍휼은 용서를 얻게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누가복음 6:36-37)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What good is it, my brothers, if a man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him?  

내 형제들아

이 말은 단락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새로운 단락의 시작을 나타낸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럴러면, 무엇을 들어야 할까? 믿음의 근본인 이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로마서 10:17)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려지는 과정을 마치 씨앗이 심기는 것과 같이 '마음에 심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들려진 말씀, 곧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통해 믿음이 싹트고 자라는 과정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라고 말한다.

(야고보서 1:21)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혼을 능히 구원하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처음으로 전파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마태복음 4:17)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가까이 온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분이 누구신지, 왜 이땅에 오셨는지를 알게 하며, 그리스도를 믿게 한다.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구원을 받게 된다.

(요한복음 3:17-18)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음을 통한 구원은 언제 확인될까? 그것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때에 확인된다.

(요한계시록 20:11-12)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올바른 행함은 무엇일까?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믿음의 행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영혼을 능히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믿음의 행함은 믿음 자체로서 보여지고 나타난다.
믿음의 행함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다.

(마태복음 16:15-16)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아는 것을 포함한다.

(누가복음 19:10)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을 들음으로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영생을 얻게 한다.

(요한복음 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고, 들려진 말씀, 심어진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은 실재적으로, 또한 실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에베소서 2:10)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선한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따라 이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다.
'행함'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행위를 가리킨다. 이 '행함'은 곧 믿음 자체이며, 이 믿음의 행위, 곧 믿음은 자기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Suppose a brother or sister is without clothes and daily food.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야고보 사도는 행함으로서 나타나는 믿음에 대해 비유로서 설명한다.

입을 옷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는 형제나 자매가 찾아왔다고 생각해 보자.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If one of you says to him, 'Go, I wish you well; keep warm and well fed,' but does nothing about his physical needs, what good is it?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입을 옷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어서 찾아온 사람에게 '평안히 지내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시고, 맛있는 것을 많이 드세요'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도움이 될까? 실제로 필요한 것을 줄 때에만 도움이 되며 유익이 있다.

15-16절의 말씀은 요한1서에 기록된 "사랑의 진실한 행함"을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요한1서 3:17-18)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믿음도, 사랑도 행함이 있어야 한다. 이로부터 기독교는 행함의 종교라고 말 할 수 있다.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은 행함으로서 나타난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나 자매에게는 그 몸에 쓸 것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도움의 행함이다. 만일 행함이 없는 도움이라면 그 자체가 죽은 것, 곧 아무 쓸모없는 도움인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생각한다면, 믿음도 믿음의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만일,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면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죽은 것, 곧 아무 쓸모없는 믿음이 된다.
그렇다면, 믿음의 행함은 어떤 것일까?
이것은 도움의 사례를 의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나 자매에게 '평안히 지내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시고, 맛있는 것을 많이 드세요'라고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 몸에 쓸 것, 곧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어야만 실제로 도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입을 것과 먹을 것은 실제로 필요한 것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다. 도움이 이와 같이 실재로서 나타난 것이 도움의 행함인 것이다.
행함은 그 결과로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믿음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믿음을 행한 결과로서,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아 같이 믿음의 행함이 눈에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하면서 집에 직접 찾아오지 않으시고 말씀만 하셔도 하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던 백부장에게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것이다.
(마태복음 8:5-10)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또한,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린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이다.
(마가복음 2:1-5)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의 어떤 말에도 순종했을 때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셨고, 그 믿음의 크기를 칭찬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성경은 예수님께서 '믿음을 보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심지어 '믿음이 크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영의 눈으로 그들의 믿음을 아셨을 것이라고 간단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한낱 육의 눈마저도 그리 밝지 않은 우리의 입장에서도 예수님을 말씀에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수님 당시로부터 이천년이 지난 시점에, 이스라엘로부터 80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의 눈에도 그들의 믿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들의 믿음을 볼 수 있는 것은 성경을 통해 나타난 그들의 행위를 통해서이다. 이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증거이며, 행함은 믿음을 따른다는 증거이다.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주무시는 동안 광풍이 일어나 죽게 되었다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을 때,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신 후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4:35-40)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믿음이 없으면 믿음의 일을 행할 수 없고 무서워 하게 된다.
또한, 한 사람이 예수님께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고쳐주시기를 꿇어 엎드려 부탁하면서 제자들은 능히 내쫓지 못하더라고 말씀드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9:17-19)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믿음이 없는 세대는 믿음의 일을 행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부할하신 후 마리아에게 보이셨음을 듣고도 믿지 않은 제자들에게, 또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했음으로 믿지 않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6:10-14)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믿음이 없으면 믿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광풍 속에서 겁을 낸 제자들, 귀신을 내쫓지 못한 제자들,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But someone will say, 'You have faith; I have deeds.' Show me your faith without deeds, and I will show you my faith by what I do.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아마도 야고보 사도 자신일 것이다.
예민한 얘기를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제삼자로서 취급하는 경우는 바울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고린도후서 12:2-4)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아마도 자신의 의가 드러나서 자신이 영광을 취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마치 모세가 하나님과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을 떠올리게 한다.
(출애굽기 34:33)
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여기서 '어떤 사람'은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믿음이 있다면 보이게 마련인 것이다.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믿음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을 보일 수 없다면, 그 믿음을 행할 수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그리고 '행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행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삶이 그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You believe that there is one God. Good! Even the demons believe that-and shudder.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다.
(요한복음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은 다윗이 시편에서 노래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높이며, 기도하고, 경외하고, 의뢰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보일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믿음의 행위가 없다면, 하나님께 대한 그 사람의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귀신들을 생각해 보자. 귀신들도 하나님 앞에서 떤다. 귀신들이 이렇게 행하는 것은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귀신들이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마가복음 1:23-26)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마가복음 3:11)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마가복음 5:2-7)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마가복음 9:25-27)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귀신들이 떨었다는 것은 야고보 사도가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쫓는 장면을 직접 보았거나 제자들로부터 들었던 것과 관련하여 기록한 내용일 것이다.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You foolish man, do you want evidence that faith without deeds is useless?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 사도는 '허탄한 사람', 곧 지금까지 말한 바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보다 쉽게, 보다 직접적으로 다시 말하고자 한다.

야고보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글이므로, 야고보 사도는 유대인들이 이해하기에 보다 쉽고 직접적인 내용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낸,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난 조상들의 이야기를 설명한다.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Was not our ancestor Abraham considered righteous for what he did when he offered his son Isaac on the altar?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말씀대로 행한다.
(창세기 22:1-4)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이 말씀대로 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17-19)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처럼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백세에 아들을 볼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웃었던 사람이었다.
(창세기 17:17-18)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백세에 아들을 보게 된다.
(창세기 21:1-5)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이처럼 사람의 상식과 경험과 인체의 법칙을 초월한 경험이 그의 믿음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백세에 본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행함으로 나타났다.
(창세기 22:12)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실제로 그제서야 알게 되셨다는 말씀이 아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아시고 그를 시험하신 것이었다.

(창세기 22:1-4)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행함을 통해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를 시험하신 것이다.
(로마서 4:3)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지만, 그 행함은 곧 그의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롭다 하신 것이다.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You see that his faith and his actions were working together, and his 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 자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그 몸에 쓸 것을 통해 나타날 때에 도움이 될 수 있듯이, 믿음은 행함을 통해 나타날 때에 일을 하는 것이다.
-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관념적인) 믿음은 (실천적인) 행함을 통해 실재하게 되고
-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실천적인) 행함은 (관념적인) 믿음의 실재가 된다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And the scripture was fulfilled that says, Abraham believed God, and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and he was called God's friend.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창세기 15:6)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야고보 사도가 인용한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의 믿음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였고, 그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으며, 행함으로 나타난 그의 믿음,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모든 계획을 함께 나누고 비밀이 없는 벗과 같이 대하셨다.
(창세기 18:17-19)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You see that a person is justified by what he does and not by faith alone.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 말씀은 18절과 20절의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행함으로 보여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18절과 20절의 말씀은 이를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야고보서 20:18)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야고보서 20:20)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In the same way, was not even Rahab the prostitute considered righteous for what she did when she gave lodging to the spies and sent them off in a different direction?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 사도는 조상 아브라함의 사례와 함께 기생 라합의 사례를 통해 행함으로 보여지는 믿음을 설명한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인도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알고 있었다.
(여호수아 2:9-10)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이 소식은 라합만이 전해 들은 것이 아니었고, 모든 여리고 성의 주민이 전해 들은 바였다. 그러나, 라합만이 하나님을 믿었다.
(여호수아 2:11)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믿은 라합은 여호수아의 정탐꾼들을 도와주는 행함을 행한다.
(여호수아 2:12-15)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이처럼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준 라합은 여리고성의 주민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
(히브리서 11:31)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그의 친족을 살릴 수 있었으며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주하게 되었다.
(여호수아 6:25)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그리고, 다윗 왕의 고조할머니가 되었으며, 마침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기록된다.

(마태복음 1:1)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 1:5-6)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람은 행함으로 보여지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행함과 믿음의 관계는 마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육신과 영혼의 관계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행함은 사람의 영혼과 같고, 믿음은 사람의 육신과 같아서, 영혼이 떠난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또한, 믿음을 나타내는 행함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일 뿐만 아니라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
(요한계시록 20:11-15)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속에 있는 믿음을 아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살아있는 믿음으로써 행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선포이고, 복음에 대한 선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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