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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야고보서

야고보서 5장

아리마대 사람 2017. 1. 25. 21:43

************ 야고보서 5장 ************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Now listen, you rich people, weep and wail because of the misery that is coming upon you.     

들으라 부한 자들아

야고보서에는 부자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1장 10-11절에서는 권면과 교훈의 말씀이었다.

(야고보서 1:10-11)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여기서는 준엄한 경고의 말씀이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은 "부한 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이 말씀은 '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자 '부한 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다.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고생"에 해당하는 '탈라이포리아이스'는 '재난', '비참한 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한 자, 곧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9:23-2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부자가 죽은 이후에 당할 일에 관해서는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나타나 있기도 하다.

여기서 천국이 언급된 것에 주목하면 예수님께서 다시오실 때, 곧 말세를 생각할 수 있다. 부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무렵에는 울고 통곡해야 할 만큼 고생하게 된다는 말씀일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참고하면, 상인들로 대표되는 부자들은 바벨론과 연합하여 부를 쌓은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18:15)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울고 통곡하라

"울고"는 '애통해하다'라는 뜻의 '클라이오'라는 동사의 명령형이고, "통곡하라"에 해당하는 '올롤뤼존테스'는 괴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로서 '울부짖다'라는 뜻의 '올롤뤼조'라는 동사의 분사형이다. 명령형 동사와 분사형은 '큰 소리로 통곡하면서 슬피 울라'는 의미가 된다.

부자들은 살아있는 동안 눈 앞에 놓인 세상의 것들을 누리고 살지만, 만일 알고 깨닫게 된다면 울고 통곡해야 할 만큼 그들에게 임할 고생이 매우 심할 것이다.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Your wealth has rotted, and moths have eaten your clothes.     

너희 재물은 썩었고

부한 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재물"은 당시에 부의 척도였던 곡식을 가리킨다.

"썩었고"에 해당하는 '세세펜'은 완료 시제이며, 이미 완료된 상태를 나타낸다.

불의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나누지 않고 자신의 곡식을 쌓아놓기만 해서 이미 곡식들이 썩어버린 것이다.

썩어버린 곡식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는 것이 된다. 썩어버릴 때까지 쌓아두기만 하고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2-3절의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16-21절을 참고할 수 있다.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부한 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옷"은 당시에 재산 중 큰 가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좀목었으며"에 해당하는 '세토브로타 게고넨'은 완료 시제이며, 이미 완료된 상태를 나타낸다.

불의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나누지 않고 자신의 옷을 쌓아놓기만 해서 이미 옷들을 좀이 먹어버린 것이다.

좀먹은 옷은 입기가 어렵게 된다. 옷이 좀먹을 때까지 쌓아두기만 하고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Your gold and silver are corroded. Their corrosion will testify against you and eat your flesh like fire. You have hoarded wealth in the last days.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부한 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부자는 금과 은을 많이 소유한다.

"녹이 슬었으니"에 해당하는 '카티오타이'는 완료 시제이며, 이미 완료된 상태를 나타낸다.

금과 은에 욕심을 내어 쌓아두기만 한 결과, 금과 은에 녹이 슬어버린 것이다.

녹이 슬어버린 금과 은은 그것이 금인지 은인지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며, 부자의 재산이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금과 은에 발생된 녹은 부자에 대한 '증거'의 역할을 한다. 이 증거는 부자가 겪는 고생 중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으며, 단순히 금과 은에 발생된 녹일 뿐만 아니라 부자를 증거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부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녹이기도 해야 할 것이다.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녹이 불 같이 살을 먹는 것을 부자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 같이"라는 구절로부터 이 녹이  짧은 시간에 큰 영향을 나타내며 이를 막기가 매우 어려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살이 썩는 것이다. 금과은으로 대표되는 재물로 인한 철저한 파멸을 의미한다.

이 일은 부자들에게  울고 통곡해야할 만큼의 고생이 된다.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부한 자들이 울고 통곡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구절의 시제는 부정과거이다. 미래에 있을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 즉 야고보가 이미 목격한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초대교회 당시를 말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가 말세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말세이다.

그것은 언제 예수님께서 다시오실지, 최후의 심판이 있을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후의 모든 시간은 말세가 된다.

(마가복음 13:32-33)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재물을 쌓는다는 행위는 재물에 붙들려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재물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재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끊임없이 재물을 쌓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재물은 세상이 그 어느 것보다 중독성이 크다.

칼빈은 '말세에 재물을 쌓는 것은 자신에게 임할 형벌을 쌓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Look! The wages you failed to pay the workmen who mowed your fields are crying out against you. The cries of the harvesters have reached the ears of the Lord Almighty.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부한 자들은 말세에 재물을 쌓은 것 때문에 울고 통곡해야 한다. 그 이유를 말한다.

"너희"는 부한 자들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보라, 너희 밭을 추수했으나 너희로부터 품삯을 강탈당한 품꾼들의 삯이 소리지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문장의 시제는 수동태 완료 분사로서 부자가 추수 때에 가난한 품꾼을 고용하여 일을 시킨 후 그들에게 지불해야 할 삯을 지불하지 않고 착취한 상태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마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일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는 품꾼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인을 말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도 율법을 통해 품꾼의 삯을 당일에 지급하도록 명하셨다.

(레위기 19:13)
13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신명기 24:14-15)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부자들이 품꾼에게 삯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악한 행동과 불의을 통해 재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죄가 되는 행위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악한 행위를 지켜보신다. 

말세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며, 사람을 경시하고,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번영주의가 널리 퍼진질 것임을 말하고 있다.

"삯이 소리 지르며"는 의인법이다.

성경에서는 극히 심한 경우를 나타내기 위해 의인법이 사용되곤 한다. 사물이 사람처럼 행동할 정도라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것이다. 대표적으로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창세기 4:10-11)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우는 소리"에 해당하는 '보아이'의 원형 '보에'는 '곤궁에 처하여 높은 소리로 부르짖는' 행위를 의미하는 '보아오'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추수한 품꾼들의 한 맺힌 절규를 나타낸다.

추수에 있어서  실제로 일을 한 사람은 품꾼들임에도 불구하고 부한 자는 혼자서 추수의 소출을 챙겨갔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명하셨다. 이렇게 착취를 통해 부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악한 행위이다.

2장에서 야고보는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게 위로의 말만 하고 쓸 것을 주지 않는 것도 의미없는 행위라고 말했는데, 착취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야고보서 2:15-17)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품꾼으로 하여금 품삯 때문에 하나님께 호소하게 만드는 행위가 죄임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신명기 24:14-15)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이와 같이 가난한 품꾼의 삯을 착취함으로써 재물을 쌓아 부하게 되는 자는 그 죄의 결과로서 결국 울고 통곡하게 된다.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You have lived on earth in luxury and self-indulgence. You have fattened yourselves in the day of slaughter.     

너희가 땅에서

"너희"는 부한 자들을 가리키며, 부한 자들이 말세에 재물을 쌓은 것 때문에 울고 통곡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땅에서"에 해당하는 '에피 테스 게스'는 '그 땅 위에서'라는 뜻이다. 여기서 땅은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을 상징하는 하늘, 곧 '우라노스'와 대조되는 단어로서 죄인들이 한시적으로 거주하는 이 세상을 가리킨다. 이는 부자들의 삶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만 가능함을 나타낸다.

보물을 쌓아둘 것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다.

(마태복음 6:19-20)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누가복음 12:33)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사치하고 방종하여

부한 자들은 품꾼의 삯을 착취하여 품꾼들이 울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치하고 방종하며 살고 있다.

"사치하고"에 해당하는 '애트뤼페사테'의 원형인 '트뤼파오'는 '사치스럽게 살다', '속되고 안일하게 방종한 삶에 빠지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 전체에 걸쳐 이곳에만 나타나는 단어이다.

"방종하여"에 해당하는 '에스파탈레사테'의 원형인 '스타팔라오'는 '육체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 전체에 걸쳐 이곳과 디모데전서 5:6에만 나타나는 단어이며, "방종"과 "향락"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디모데전서 5:6)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이런 자들에게 고생이 닥치게 된다.

이 말씀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다.

살았을 때, 곧 땅에서 좋은 것을 받고 살았던 부자는 이 땅을 떠나서는 음부에서 고난을 받는다.

(누가복음 16:25)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살륙의 날에

"살륙의 날"은 단수의 특정한 날을 가리킨다. 종말론적으로는 심판의 날로 생각할 수 있다.

땅에서 품꾼의 삯을 착취하여 사치하고 방종하며 살던 부한 자들이 맞이하는 살륙의 날은 요한계시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살륙의 날은 바벨론성이 무너지는 날이며, 사치와 방종, 곧 음행하던 자들이 함께 무너지는 날이다.

(요한계시록 18:2-3)

2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예레미야에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죽임의 골짜기'라고 부르는 '날'이 올 것을 기록했다. 

(예레미야 7:32)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예레미야 19:6)

6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한 예레미야에는 '죽일 날'이 언급되어 있다.

(예레미야 12:3)

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

땅에서 품꾼의 삯을 착취하여 사치하고 방종하며 살던 부한 자들이 울고 통곡해야 할 고생을 겪게 되는 살륙의 날은 예레미야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요한계시록의 때에 도래할 것이다.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살륙의 날에는 살찐 대상이 가장 먼저 죽게 된다.

마음이 살찐 자들은 재물로 배가 부른 자들이다. 재물로 배가 부른 자들의 마음가짐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다.

(잠언 30:9)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재물로 마음이 살찐 자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즉, 하나님을 중히 여기고 재물을 경히 여기거나, 재물을 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히 여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마태복음 19:23-2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재물을 중히 여기는 것이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번영주의이다. 부한 자들에게는 재물이 하나님이므로 그들은 악행과 착취를 통해 쌓은 재물을 가지고 사치하며 방종한 생활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에도 재물을 쌓기를 쉬지 않았던 것이다.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You have condemned and murdered innocent men, who were not opposing you.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부한 자들은 말세에 재물을 쌓은 것 때문에 울고 통곡해야 한다. 그 이유를 말한다.

"너희"는 부한 자들을 가리킨다.

"의인"은 "너희"와 상대되는 개념이 된다.

극히 단순하게는 밭에서 추수하고 삯을 받지 못한 품꾼(4절)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부한 자들'과 대비되는 개념의 의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누가복음 16:22-23)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부한 자들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다. 여기서 '정죄하고'로 번역된 '카테디카사테'의 원형인 '카타디카조'는 '정죄하다', '유죄 선언을 하다'라는 뜻의 법정 용어이다. 이는 부한 자들이 가난한 품꾼들을 착취했을 뿐만 아니라 법을 악용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괴롭혔음을 나타낸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대항하지"로 번역된 '안티탓세타이'는 '~에 반대하여'라는 의미의 전치사 '안티'와 '놓다, 두다'라는 의미의 '탓소'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반대편에 서다, 대적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동사 '안티탓소'의 중간태 현재 시제이다. 현재 시제는 부한 자들이 정죄하고 죽여도 품꾼들, 곧 의인들은 저항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했음을 나타낸다.

부한 자들의 악한 행위는 이 구절에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이 구절을 읽어보면, 야고보는 부한 자들의 악한 행위를 폭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품꾼들, 곧 의인들이 저항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심판하실 것임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살륙의 날(5절), 곧 심판의 날에 모든 행위를 기록한 책을 통해 심판하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2)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원수를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12:19)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히브리서 10:30)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Be patient, then, brothers, until the Lord's coming. See how the farmer waits for the land to yield its valuable crop and how patient he is for the autumn and spring rains.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야고보는 3절에서 "말세"를 말하였고, 5절에서 "살륙의 날"을 말하였다. 즉 심판의 때를 언급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주의 강림", 곧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한 권면을 시작한다. 야고보의 권면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강림하시기"로 번역된 '파루시아스'의 기본형인 '파루시아'는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길이 참는 것"은 곧 인내이며, 이는 마무리 과정에서 맨 처음 다루었던 주제를 다시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고보서 1:2-4)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성도는 믿음의 시련 가운데에서 길이 참아야 하며, 부한 자들의 착취와 정죄와 죽임에 대해서도 길이 참아야 한다. 길이 참음으로서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구원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도가 되라는 권면인 것이다.

이는 야고보의 미음 속에 "예수님께서 강림(재림)하실 날"에 관한 생각이 고정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는 "길이 참아", 곧 인내의 본보기로서 "농부"를 말하고 있다.

"이른 비"는 가을에 씨를 뿌리고 씨가 싹트기 시작하는 10-11월 무렵에 내리는 비를 가리키며, "늦은 비"는 이듬해 4-5월 무렵에 내리는 비로서 추수 직전에 내리는 비를 가리킨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 곧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비가 필요했다. 또한 태풍, 홍수, 우박 등의 기상이변도 없어야 했다. 이처럼 기상과 관련된 부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떄문이다.

(신명기 11:14)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농부는 파종 후에 수확을 하기까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인내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You too, be patient and stand firm, because the Lord's coming is near.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성도들도 농부처럼 길이 참아야 한다. 믿음의 시련이나 부한 자들의 착취와 정죄와 죽임 등으로 인해서 이 과정이  어렵고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굳건하게 해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굳게 하라"로 번역된 '스테릭사테'의 원형인 '스테리조'는 '강화하다, 확고하게 하다, 견고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굳건한 마음"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①굳건하게 깨어있는 마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있도록 해야 한다.

(마태복음 25:13)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②굳건하게 평강 위에 서 있는 마음: 조롱하는 자들이 있더라도(베드로후서 3:3-4) 흔들리지 않아야하고, 더디다고 생각하여(베드로후서 3:9)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베드로후서 3:14)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하나님만 아신다. 따라서 늘 바로 앞에 가까이 와 있는 것이며, 따라서 늘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3:32-33)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까우니라"로 번역되는 '엥기켄'은 직설법 완료 시제로서 이미 가까이 왔음을 나타낸다.

그 때가 지금까지 오지않은 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회개를 기다리시며 길이 참으시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Don't grumble against each other, brothers, or you will be judged. The Judge is standing at the door!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인내는 믿음의 시련 가운데에서 만들어진다.

(야고보서 1:3)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러나 믿음의 시련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시련의 원인을 남탓으로 돌리며 원망하기 쉽다.

출애굽 과정에서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멸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고린도전서 10:10)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또한 출애굽 과정에서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모세를 원망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다.

(출애굽기 16:8)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서로 원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며, 공동체의 분열과 멸망을 일으키게 된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은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함이라고 명확하게 밝힌다.

(고린도전서 10:11)

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믿음의 시련 속에서 원망하지 않고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에 구원받기에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되어 "심판을 면하게" 된다.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심판의 때와 관련하여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8절)"라는 막연한 표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다급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결코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Brothers, as an example of patience in the face of suffering, take the prophets who spoke in the name of the Lord.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인내의 본보기로서 "농부"를 말한(7절) 후에 여기서는 "선지자들"을 인내의 본보기로 삼고, 인내를 배울 것을 말하고 있다. 선지자들의 인내는 그들이 겪었던 믿음의 시련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선지자들이 믿음의 시련을 겪었던 이유는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선지자들이 그러했다.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As you know, we consider blessed those who have persevered. You have heard of Job's perseverance and have seen what the Lord finally brought about. The Lord is full of compassion and mercy.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인내는 믿음의 시련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인내하는 자"는 믿음의 시련을 겪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은 복을 받는다. 

(마태복음 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0:12)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특별히 마태복음 5장 12절은 "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10절)"는 말씀을 설명해주고 있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인내의 본보기로서 "농부(7절)"를 말하고, "선지자들(10잘)"을 말한 후에 여기서는 "욥"을 인내의 본보기로 삼고, 인내를 배울 것을 말하고 있다.

욥은  갑자기 닥친 고난 앞에서 인내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욥기 1:21-22)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고난 가운데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옵기 2:9)"고 말했을 때에도 욥은 인내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욥기 2:10)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에는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다.

(욥기 3:1)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성경을 보더라도 욥보다 더 극심한 고난을 당한 사람도 없고, 이를 인내로서 견디어내고 (복에 대한 단순한 개념의 바탕 위에) 더 큰 복을 받은 자도 없다. 그래서 "욥"을 인내의 본보기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보았거니와"로 번역된 '에이데테'는 '너희가 보았다'라는 의미이며, 두 눈으로 본 것처럼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표현이다.

욥의 결말은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①욥은 두 눈으로 본 것처럼 분명하게 하나님을 뵈었다.

(욥기 42:5)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②욥은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한 욥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 

(욥기 42:9)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③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의 소유를 주셨다.

(욥기 42:10)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④욥은 백사십 년을 살았고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다. 그의 인생이 평안했던 것이다.

(욥기 42:16-17)

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자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욥은 이해하기 쉬운 복을 받는 본보기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구원의 복을 받는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에게 위와 같은 결말은 주신 까닭은 하나님이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선포하셨다.

(출애굽기 34:6)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지속적으로 노래했다.
(시편 103:8)
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편 111:4)
4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시편 116:5)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시편 145:8)
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에베소서 2:4-5)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한 하나님은 불쌍한 이웃을 긍휼히 여겼던 욥(욥기 29:12-17, 욥기 31:16-22, 32)을 긍휼히 여기심으로써 긍휼에 대한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다.

(마태복음 5:7)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처럼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신다.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Above all, my brothers, do not swear-not by heaven or by earth or by anything else. Let your 'Yes' be yes, and your 'No,' no, or you will be condemned.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무엇보다도"는 맹세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맹세"는 혀를 길들이는 것(3:8)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신뢰의 측면에서 오래참음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맹세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약속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약속이 확고해야 할 필요는 무엇일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시키기 위해서이다.

언제 맹세가 필요할까?

 ①약속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았을 때 ②약속을 반드시 지킬 자신이 있을 때 ③어떻게든, 억지로라도 믿게 만들 필요가 있을 때 (거짓말을 할 때 오히려 맹세를 하는 악한 행위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맹세는 두 사람 간에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다.

(창세기 31:50)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사사기 11:10)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사무엘상 20:13)
13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사무엘상 20:23)
23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마태복음 5:33-37)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맹세가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고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머리'와 같이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을 가리켜 맹세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처음부터 거짓을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레위기 19:11-12)
11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신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정죄 받음을 면하라

이는 9절의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와 같은 의미이다.

믿음의 시련 속에서 인내하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말과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보좌 앞의 책에 모두 기록된다.

(요한계시록 20:12)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맹세의 행위, 특히 거짓 맹세의 행위는 정죄의 대상이 되며,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위인 것이다.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Is any one of you in trouble? He should pray. Is anyone happy? Let him sing songs of praise.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은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부족함 없이 온전하게 된다. 고난 가운데의 믿음은 행함을 통해 나타나야 하며, 이 행함이 바로 "기도"라고 말하고 있다.

시편은 이 구절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고난 당할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건지신다는 사실을 노래한다.

(시편 34:4)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편 34:17)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시편 50:15)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91:15)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107: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성도가 삶 속에서 즐거운 일이 있다면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마땅하다.

시편은 이 구절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즐거워함으로 찬송한다는 사실을 노래한다.

(시편 9:2)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편 27:6)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28:7)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40:16)

16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편 71:23)

23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무엇보다도 성도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알고 있으며, 이 사실이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기 때문에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박국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삶에서 일어나는 이들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고난이거나 즐거움이다.

고난 당할 때는 기도해야 하고, 즐거울 때는 찬송해야 한다.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의 잘 알려진 말씀과 연결된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Is any one of you sick? He should call the elders of the church to pray over him and anoint him with oil in the name of the Lord.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13절에서 기도할 것을 말한 후에 14절에서는 특별히 "병든 자를 위한 기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병든"은 '강하지 않다'라는 의미이고, 질병으로 인해 일할 수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나약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13절에서는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기서는 장로들을 청할 것을 말한다. 

"장로"에 해당하는 '프레스뷔테로스'는 '나이 많은'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레스뷔스'의 비교급으로서 본래 연장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교회의 직분으로서는 교회를 치리하는 대표자들을 의미하며 '감독'과 같은 용어이다.

병든 자는 여러 명의 "장로들"을 청해야 한다. 만일 한 명의 장로가 방문하여 병이 낫게 된다면 그 장로는 자만심과 교만에 빠질 우려가 크다. 여러 명의 장로들을 통해 병이 낫게 된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신약성경에서 기름은 주로 성령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치료행위로서의 기름을 말한다. 기름에 해당하는 '엘라이오'는 '올리브 기름'을 가리킨다.

고대 세계에서 병자의 치료를 위해 기름을 바르는 것은 일반적인 행위였다.

(이사야 1:6)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도 치료를 위해 기름을 바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누가복음 10:33-34)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6:12-13)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이는 복음 전파의 일부로서 행해진 것이었다.

야고보는 제자들의 복음 전파에서의 치료행위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예수님께 권능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가복음 6:7)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즉 기름을 발라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And the prayer offered in faith will make the sick person well; the Lord will raise him up. If he has sinned, he will be forgiven.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구원하리니"로 번역된 '소세이'의 원형 '소조'는  신약성경에서  종말론적 의미를 구원을 나타낼 때 빈번하게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육체적으로 나약해진 '병든 자'에 대한 것이므로 질병의 치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으키시리라"로 번역된 '에게레이'도 죽은 자의 부활과 관련하여 사용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질병이 치유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병을 고치는 일은 하나님의 권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믿기에 가능하다.

장로들은 병든 자를 구원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①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일으키실 것을 믿는 기도이다.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는 것이 믿음의 기도의 내용이다.

②조금의 의심도 없는 기도이다.

의심하면 하나님께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야고보서 1:6-7)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범하였을지라도"로 번역된 '페포이에코스'는 '행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포이에오'의 완료분사로서 과거의 범죄가 현재에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죄의 결과로서 육체의 질병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혹시"라는 말은 육체의 질병이 반드시 죄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만일 죄 때문에 육체의 질병이 발생했다면, 믿음의 기도를 통해 사하심을 얻고, 사하심을 얻음을 통해 질병이 치유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때,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9:2)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고, 중풍병자는 일어나서 집으로 갔다.

(마태복음 9:6)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중풍병자의 경우에는 죄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이었고,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하셨을 때 그가 일으키심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Therefore confess your sins to each other and pray for each other so that you may be healed. The prayer of a righteous man is powerful and effective.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일반적으로 병이 생겼을 경우에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받아야 한다.

만일 죄 때문에 병이 생긴 경우라면 사하심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는 죄 때문에 병이 생긴 경우에는 성도 상호 간에 죄를 자백하고, 죄사함을 받아 병이 낫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질병의 치유를 위한 중보기도인 것이다.

여기서 '기도하라'에 해당하는 '유케스데'의 현재명령법으로서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장로들의 믿음의 기도와 함께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한다.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것은 기도 자체가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의인의 간구를 통해 능력이 나타나는 이유는 의인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이다.

(잠언15:29)
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시편 34:17)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와 간구, 부르짖음,  소원과 서원, 목소리와 말소리, 고통 소리와 근심, 원망과 불평 등을 들으시며, 들으신 후에는 일하신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Elijah was a man just like us. He prayed earnestly that it would not rain, and it did not rain on the land for three and a half years.     

엘리야는

역사하는 힘이 큰 간구를 하나님께 드린 의인으로서 엘리야가 언급된다.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였다. 변화산에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구약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마가복음 9:4)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또한 엘리야는 에녹과 같이 죽음을 겪지 않은 인물이었다.

(열왕기하 2:11)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하나님이 보내기로 약속하신 선지자로서도 거명된다.

(말라기 4:5)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대표로서도 거명된다.

(마태복음 11:14)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로 여기기도 했다.

(마가복음 6:15)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러나 엘리야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여기서 "성정이 같은"이란 말은 '같은 감정과 같은 행동 양식을 가진'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했을 때 사람들이 자신과 바나바를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 신이라고 말하자 자신들도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 곧 '성정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신적 존재가 아님을 밝혔다. 

(사도행전 14:15)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여기서도 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엘리야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말이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을 때, 그가 기도한 대로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15절)"였고 "의인의 간구(16절)"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큰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역사하는 힘이 크게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Again he prayed, and the heavens gave rain, and the earth produced its crops.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가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을 때, 그가 기도한 대로 비가 내렸고 다시 수확할 수 있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15절)"였고 "의인의 간구(16절)"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큰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역사하는 힘이 크게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My brothers, if one of you should wander from the truth and someone should bring him back,     

내 형제들아

야고보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마지막 권면을 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신은 인사나 축복으로 끝을 맺지만, 야고보는 교회 공동체에 대한 권면으로 끝은 맺고 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를 향한 야고보의 사랑과 함께 목회자적인 관심을 나타낸다.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미혹되어"로 번역된 '플라네데'는 '옆길로 빗나가게 하다', '정도에서 벗어나게 인도하다', '나쁜 길로 끌어들이다'라는 뜻의 플라나오의 수동태로서 '바른 길, 곧 진리로부터 벗어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진리를 떠난"은 미혹됨의 결과를 가리킨다. 야고보가 줄곧 '믿음과 행함'을 강조했음을 생각할 때, 이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진리를 떠난 자의 결국은 진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즉, 미혹됨 → 진리를 떠남 → 진리로 돌아오지 못함이 되는 것이다.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면, 진리를 떠난 자는 구원의 길을 떠나버린다는 말이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 한 지체를 이룬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교회 공동체는 진리를 떠난 자를 내버려두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돌아서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길을 잃은 한 마리를 찾을 때 그 기쁨이 더 크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12-13)
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마태복음 18:14)
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야고보는 진리를 떠난 자를 '반드시' 돌아서게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remember this: Whoever turns a sinner from the error of his way will save him from death and cover over a multitude of sins.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죄인"은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19절)이다.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은 다시 진리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진리의 길, 진리이자 길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만일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지 않고 그냥 두면 결국 죽고 만다. 미혹된 길을 가는 죄인은 허다한 죄를 짓고 살게 되며, 곧 죄의 길길을 따르게 되며, 그 길의 결국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야고보서 1:15)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여기서 "사망"으로 번역된 '다나투'의 원형 '다나토스'는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로서의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함으로써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라는 구절은 한 영혼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내는 것이다.

" 영혼을"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혼을 인간의 삶의 목적이자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향해야 하는 , 믿음의 목표는 영혼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1:9)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의 '덮을 것임이라'에 해당하는 동사 '칼륍세이'는 '덮어 가리우다'라는 의미를 지닌 '칼륍토'의 3인칭 단수 능동태이다. 이것은 허다한 죄를 사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가리워져 보이지 않게 된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죄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받는 복이다.

(시편 32:1-2)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로마서 4:7-8)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미혹되어 선악과를 따서 먹었듯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진리를 떠나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한다면, 죄인의 영혼은 사망에서 구원받으며 허다한 죄가 덮음을 받게된다. 이 일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며 돌아온 탕자와 같이 미혹된 길에서 돌아선 자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8:12)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미혹된 길에서 돌아선 자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므로 그들은 죄 사함을 얻고 거룩한 무리 가운데 기업을 얻게 되기까지 한다.

(사도행전 26:18)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이 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택하여 이방인들에게 보내셨던 것이기도 하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주변의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생각해보자. 그 후로 세상에서 백년 남짓의 인생을 누리게 된 것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시편 90:10)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런데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함"으로써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원을 살게한다면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이 기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되는 것이다.

(다니엘 12:3)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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