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길들여진다는 것

아리마대 사람 2016. 10. 1. 17:12


예전에, 학생 때, 주변에서 친구들 간에 진심으로 충고해 주던 이야기가 있다.

"여학생을 소개받았는데, 맘에 안 들거든 절대로 세번이상 만나지 마라... 자꾸 보면 정든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런 얘기가 될 것이다.

"맘에 드는 여학생이 있으면 무슨 수를 쓰던지 반드시 세 번 이상 만나라... 자꾸 보면 정든다..."

그래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없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든다는 것은 곧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는 것이고, 안정적인 상태라는 것은 편안한 상태가 된다는 것, 곧 길들여진 상태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 유명한 어린 왕자를 읽어보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일러주는 말이 있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넌 내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난 네게 있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거지..."

정든다는 것.

익숙해진다는 것.

길이 든다는 것.

항상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에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일러준 말은 아니었을까.

정들고,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는 것은 곧 '하나의 몸짓이 내게로 와서 나에게 꽃이 되는 것'과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던 대상이 소중한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소중한 것이 되고 나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 대상을 선정하는 데에는 매우 큰 주의가 필요하다.


때때로 내가 길들여지고 있음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회사 창립기념일과 같이 일년에 한 두 차례 달력 상의 휴일과 무관한 휴일이 생겨서 길에서 지폐를 주운 심정으로 아침에 눈을 뜨는 날이 있다.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으로, 아내는 개인적인 사회활동을 위해 외출을 하고 나면... 혼자만의 시간, 소위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내가 그 시간을 누리고 있고 또 한나절은 누릴 수 있다는 즐거움은 채 세수를 마치기도 전에 끝나 버린다. 혼자라서 편하다, 내 자신을 위해 무얼할까라는 생각은 얼굴에 문지른 비누거품과 같이 이내 씻겨버리고, 혼자서 무얼해야하는지가 고민거리가 되어 버린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 속에서 길들여지며, 길들여진 채 살고 있다.

'길들여진다'고 하면 역시 어린 왕자의 그 유명한 구절이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진짜 웅장한 길들여짐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과정에서 볼 수가 있다.


(느헤미야 9:19-21)

19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20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21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살아가면서 노예생활에 길들여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세우는 역사를 이루시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십년의 광야생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길들이셨다. 비옥한 이집트의 고센땅에서 양떼를 키우며 살다가 메마른 광야에서 '쌩'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은 끊이지를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만나로 일용할 양식을 삼게 하시고, 메추리로 별미를 삼게 하셨으며, 광야의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마시게 하셨고,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도록 하셨으며, 광야를 걸어도 발이 부르트지 않게 보호하셨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갈 길을 인도하셨다. 이 과정을 통해 애굽의 문화, 애굽의 신을 섬기던 생활에 길들여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만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길들이신 일은 어쩌면 역사상의 가장 큰 길들임의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길들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 더할 나위없는 축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벗어난 후, 광야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 아이들은 생활 자체, 성장과정 자체가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태어난 후, 만나를 먹는 것이 일상이고, 옷과 신발은 해어지지 않고 발은 부르트지 않는 것인 줄 알고 살았으며, 낮에는 구름 기둥을 보고, 밤에는 불 기둥을 보고 따르는 삶이 일상이었을테니까. 그래서, 그렇게 자라난 젊은이들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젊은이들과 달리, 이집트에서 성인으로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이미 다른 것에 길들여진 존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과 기적을 누리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으며 반드시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데, 광야를 걸어가는데는 참으로 굳은 마음이 필요하다. 광야가 험할수록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원망과 불평이 생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달리, 이미 이집트에서의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이 더 어렵고 더 힘들고 더 쉽게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40년의 광야길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어른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길들여지는 것은 가정을 이룬 남자가 남편과 아빠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때로는 그 행복을 누리고 있음을 깨달은 중년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슬며시 즐거운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때로는 광야같은 생활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면서 인도하심을 생각할 때, 슬며시 감사한 웃음이 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