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잘 나가고 싶지 않다

아리마대 사람 2016. 9. 7. 00:35

성경에 보면 성전 출입과 관련하여 대조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느헤미야와 웃시야 왕이다.


(느헤미야 6:10-12)
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하는 데에 계속적으로 방해를 하던 도비야와 산발랏은 스마야라는 자를 이용하여 교묘한 말로 느헤미야로 하여금 성전에 들어가게 만들려 했으나, 느헤미야는 들어가지 않았다, 속지 않았으므로,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죽지 않았으며, 이것이 잔꾀임을 깨닫고 의연히 대처하여 마침내 계획했던 역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처럼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아쉽고 그립다. 이런 사람이 리더라면, 조직이든, 국가든, 믿고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아담과 하와가 느헤미야 같았더라면...싶기도 하다.


(역대하 26:16)
15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유다의 웃시야 왕는 16살에 왕이 되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동했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전쟁과 국방과 농사가 형통하도록 도와주셨다. 이 도우심은 '기이한 도우심'으로 표현될 만큼 웃시야의 시대는 '의외로' 번성하였다. 조공을 받는 위치에까지 이르자 웃시야는 교만하여져서 성전에 들어가 자신이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고 하였다. 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급히 가서 왕을 만류하자, 웃시야는 화를 내었고, 그 자리에서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웃시야는 성전에서 쫓겨났고,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살았으며, 죽은 후에는 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고 그저 묘실 근처의 땅에 매장되었다.
하나님의 묵시를 잘 아는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을 찾았던 왕이었던 만큼, 정치, 경제, 문화, 국방에서 형통한 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도움심'의 덕분이었음을 웃시야 왕은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잘 나가는' 왕이 되자 '기이한 도우심'을 잊고, 오직 제사장에게만 허용된 성전의 일까지 가벼이 여기고 제맘대로 하려다가 나병환자가 되고 만 것이다. 자신처럼 훌륭한 왕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 안에서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때문이었을까. 대대로 지켜온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웃시야는 '벌'을 받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잘 나간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을 만큼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지금의 세상에서는 '잘 나간다'는 것은 곧 '돈을 많이 갖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는 의미가 되었다. 물론, 명예를 얻은 경우에도 이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기를 얻어 유명해진 연예인에게나 사용하며, 그 결국도 인기는 곧 돈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으니, '잘 나간다'는 곧 '돈을 잘 번다'는 말과 같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제 잘 나가는 것은 미덕이 되었고, 잘 나가고 싶어하는 노골적인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욕구의 발로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젠 기도도 노골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있다.


(마태복음 19:24)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사람을 직접 창조하셨으므로 사람의 본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보다 쉬운 일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부자를 문자 그대로 생각하여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하자면, 돈이 많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싶지만, 요즘의 세상에서 부자가 된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어느날 로또가 당첨되어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을 갖게 된다면 삶의 모습이 어떻게 바뀔까를 거울을 마주하고 진지하고 솔직하게 물어본다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어려움을 만나면 새벽기도를 시작하고, 잘 나가면 주말을 이용해서 해외여행을 다니게 된다. 일견 농담같은 이 말이 실은 사람의 본성이다.

잘나가게 되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 어쩌면...저주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집안 어른들 말씀에 내가 어릴 적, 4살 무렵 쯤에 공공연히 '나중에 커서 부자가 되어 오픈카 옆자리에 연예인을 태우고 다니겠다'는 말을 지껄이곤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무슨 생각으로 그런 망언을 입밖에 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되바라진 꿈은 등줄기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정도의 어리석음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웃시야는 잘 나가는 왕이 되자 나병환자가 되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환 사람이라 인정받은 다윗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잘 나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부자의 정의를 새로 바꾸는 이 말이 새삼 진리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적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