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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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평범하고 싶다

아리마대 사람 2016. 9. 24. 00:06


몇주 전쯤, 누군가가 내게 '래디컬'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래디컬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radical [|rӕdɪkl] [형용사] 근본적인, 철저한 이라고 한다.

어떤 책인지 궁금하여 교보문고 사이트의 서평을 검색해 보니

성공신화에 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 진짜 제자의 삶을 만나다!

『래디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이 오신 목적을 제시하며 지금의 교회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책에서 데이비드 플랫은 그동안 복음을 얼마나 문화적인 취향에 맞게 변해왔는지 열린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말하며,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그리고 주님이 앞장서신 길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자고 초청한다. 이 책은 저자가 제안하는 급진적인 실험에 뛰어들라고 재촉하고 있으며, 단 일 년만이라도 참다운 제자의 삶을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권면한다. 예수님의 복음에 목마른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바꿔 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래디컬... '근본적인, 철저한'... 제목으로 미루어보아 뭔가 근본적이고도 철저한 방식으로 믿음생활을 하자고 권하는 책인 것 같다.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앙을 말하는 책들도 많으니 성공신화에 얽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말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쯤은 근본적인 이야기를 말하는 책일 것이다.

문화현상을 강도(세기)에 따라 분류하는 말로 사용되면서도, 좋지 않은 문화장르와 연결되는 바람에, 좋지 않은 어감을 갖게 된 '하드코어'라는 말이 있다. '래디컬'의 뜻을 생각하다보니 이 '하드코어'라는 말이 떠오른다. '래디컬'이라는 말은 '하드코어'라는 말을 대신하여 '믿음'이라는 귀한 단어의 앞에 붙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권해주신 분께 미안하게도 책을 안/못 읽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안/못 읽을지도 모르겠는데...

오늘 퇴근길에 또다른 누군가가 카카오톡을 통해 '래디컬'의 한 구절을 공유해 주었다.


하나님은 속수무책으로 주님의 탁월한 섭리에 기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즐겨 쓰신다  -래디컬 중에서-


카카오톡을 확인하는 순간,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평범한'...

래디컬할 것을 외치는 저자가 말하는 평범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아~ 나는 책을 안 읽었으므로 전적으로 국어에 기반하여 생각할 수 밖에 없겠구나...


주님께서 섭리하심을 아는 사람, 그 섭리가 탁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 섭리에 기댈 수 있는 사람, 마치 손이 묶인 것처럼 꼼짝없이 전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탁월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잔머리를 굴리고 내 방법을 준비해두는 연약한 믿음을 질질 끌고 살아가는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우러러 보이는 믿음이다. 여기서 쓰인 '속수무책'을 요즘의 단어로 바꾼다면 '번지점프'가 아닐까 싶다. 다른 잔꾀를 부리지 않고 하나님께 나를 내던지는 믿음을 나타낼 수 있는 효과적인 표현인 것 같다.

자신 속에 이런 탁월한 믿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드러난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가졌음에도 자신을 낮추고 겸손의 옷을 입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을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주님께서 섭리하심을 아는 사람, 그 섭리가 탁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 섭리에 기댈 수 있는 사람, 마치 손이 묶인 것처럼 꼼짝없이 전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졸업시험을 치르는 데 있어서 그간 학교생활을 통해 배운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좋은 성적을 받고 졸업장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믿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온전히 믿을 수 있다면 주님의 섭리에 나를 내어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바요, 평범한 일이다.

탁월한 믿음을 갖는 것,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갖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일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을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이처럼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매우 '평범'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열왕기상 19:14)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18)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19:14) 아합왕 시대에 엘리야는 아합왕과 이세벨을 피해 도망가서 하나님께 왕과 온 나라의 죄악을 말씀드렸다. 우상숭배에 찌들어버린 세태에서 모든 선지자들이 다 죽고 자신만이 남게 되었다고 하나님께 일러바친 것이다...

(열왕기상 19:18) 이 때,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말씀하신다...

능력이 넘치는 선지자 엘리야도 미처 그 존재를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

한, 두 명이 아니라 칠천 명이나 되는 숫자인데도 너무나 평범하여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상에게 무릎 꿇고 절하지 않는 당연함을 간직했던 평범한 사람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으므로 자기가 사는 나라가 곧 온 세상과 다름없던 시대에, 온 나라 안을 휩쓸던, 곧 온 세상을 휩쓸던 우상숭배의 물결, 죄악의 물결에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 꿇는 당연한 믿음을 간직했던 평범한 사람들.

그런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음이 떠올랐다.

나도 평범해져야 겠다. 나도 평범해지고 싶다. 격렬하게, 나도 평범해질테다.

나는 오늘, 이리 보아도 평범하고, 저리 보아도 평범한, 그런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장래희망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