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AjPHlrlXYA
"예수의 그 이름"이라는 찬양이 있다. 홀리원이라는 그룹의 앨범 수록곡인데, 잘 알려진 복음성가 가수인 주리와 함께 부른 곡으로서도 유명한 찬양이다.
예수의 그 이름
이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 믿음으로 영원을 보는 자
살아 계신 하나님께 이 세상 모든 것 속하였음을 알고 가는 자
광야라도 폭풍 중이라도, 보이쟎고 들리지 않아도
나는 믿네, 날 살리신 예수의 십자가
그 은혜로 나 승리하였네
예수의 이름에 큰 능력이 있고, 예수의 이름이 날 일으키시니
나 가는 이 길이 낯선 곳이라도 기꺼이 눈 감고도 뛰겠네
광야라도 폭풍 중이라도, 보이쟎고 들리지 않아도
나는 믿네, 날 살리신 예수의 십자가
그 은혜로 나 승리하였네
예수의 이름에 큰 능력이 있고, 예수의 이름이 날 일으키시니
나 가는 이 길이 낯선 곳이라도 기꺼이 눈 감고도 뛰겠네
소망 없고 사랑 없는 날 당신의 임재로 인도하소서
모든 것을 가능케하신 그 이름 날 이끄시네
예수의 이름에 큰 능력이 있고, 예수의 이름이 날 일으키시니
나 가는 이 길이 낯선 곳이라도 기꺼이 눈 감고도 뛰겠네
찬양을 들어보면 맑고 고우면서도 힘있는 두 가수의 목소리가 귀에 쏙 들어오지만, 무엇보다 이 찬양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이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으로 시작하는 첫 구절이다. 이 첫 구절은 히브리서 11장 38절을 떠올리게 하여 귀와 머리 속과 마음과 생각을 붙든다.
(히브리서 11:38)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
이러한 사람을 이 세상은 가둘 수 없고, 이러한 사람에 대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며,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히브리서 11장은 전체에 걸쳐 38절의 괄호 안에 들어있는 "이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믿음으로 살아간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의 부모, 모세, 출애굽의 여정, 라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또한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을 언급한다.
이 사람들은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
이 사람들의 삶 가운데에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온전히 드러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사람의 생각을 넘어선 전쟁에서의 승리와 기적을 경험하고, 때로는 참혹한 고난과 시련을 의연하게 감당하는 그들의 삶은 무게중심이 온전히 하나님께 놓여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것이며, 세상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이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찬양은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한 이유가 이 사람들이 믿음으로 영원의 세계를 보고, 이 세상 모든 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이 사람들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았고(3절),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바라며(6절, 26절),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성을 바랐던(10절, 16절) 사람이라고 히브리서는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서 11:3, 6, 10, 16, 26)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 모든 일은 "믿음으로" 가능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이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이며, 그 하나님을 실상으로서 만날 것을 바라는 바램의 근거이다.
물질에 근거한 관점에서 보자면, 믿음이라는 것은 관념적인 바램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믿음은 심히 어리석은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감탄하는 아름다운 예술품들과 일상에서 접하는 생활기구들이 실은 사람의 머릿 속의 미적 상상과 관념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생각한다면, '믿음'의 존재와 역할을 어리석은 것으로 취급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히브리서 11:3)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일상의 도구들, 의복과 가구들, 자동차와 집들도 실은 설계자와 제작자의 머릿 속의 사고와 상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님은 현대의 입자 물리학이 밝혀주고 있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물질은, 작디 작은 입자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그 구성요소들은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고,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로 하여금 물질로서 존재하게 하는 힘, 그것은 만물을 붙드는 힘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의 말씀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히브리서 1:3)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요한복음 1:1-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아마도 과학과 사고의 궁극에서는 모든 것의 존재에 대한 설명, 곧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부여하셨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그리고 그 분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그 믿음이 하나님을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예수의 이름에 큰 능력이 있고, 예수의 이름이 날 일으키심을 믿는 사람은 그가 가는 길이 낯선 곳이라도 기꺼이 눈 감고도 뛸 수가 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물질만을 바라보는 이 세상은 감당하지 못한다.
운전 중에 문득 "이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으로 시작하는 첫 구절이 스피커로부터 들려온다. 이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기를 구하고 다짐하며...
.........
.....
.
찬양을 들으며 말씀를 떠올리던 중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낯선 길이라도 전혀 당황할 필요 없이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다.
네비게이션이 나에게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네비게이션을 의지하여 길을 가듯...
삶에서 낯선 길을 가더라도 기꺼이 눈 감고도 뛸 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큰 능력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날 일으키시고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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