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누구에게 피해야 할까

아리마대 사람 2018. 9. 11. 15:12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h3bvFFp8Kw

 

성경에서 가장 짧은 장은 시편 117편이다. 단 두 절로 이루어져 있다.

 

************ 시편 117장 ************

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이처럼 117편은 한 장을 통째로 가져오는 것과 읽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렇지만, 이 두 절에는 지구 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마땅히 해야할 바가 무엇인지, 왜 해야하는지가 담겨있다.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은 시편 119편이다. 모두 176절로 이루어져 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119편의 각 절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레프부터 마지막 22번째 글자인 타브까지의 순서로 시작되며, 이것이 8번 반복되어 176절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형식에 맞추어 글을 쓰는 방식을 답관체라고 한다는데, 어려운 말이지만 구성만 놓고보면 '하나하면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는다고 잘잘잘, 둘하면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잘잘잘, 셋하면 새색시가 거울을 본다고 잘잘잘, ...'하는 동요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성경에서 가장 짧은 장인 시편 117편과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인 시편 119편의 사이에 위치한 '시편 118편'은 흥미롭게도 성경의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장이다. 성경은 구약 929장, 신약 260장, 모두 1189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시편 118편의 앞에 594장이 있고, 시편 118편의 뒤에 594장이 있는 것이다. 시편 118편을 중심으로 앞과 뒤에 있는 장수는 모두 1188장이다.

성경은 모두 31,173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흥미롭게도 성경의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절은 시편 118:8이라고 한다. 지정학적으로 성경의 가장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시편 118:8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시편 118:8)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성경의 가장 한 가운데'라는 자리는 흥미롭게도 특별한 구조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이처럼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성경의 가장 한 가운데'라고 한다면, 물론 단순하게 위치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심오하고 놀라운 영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대단히 평범해 보이는 말씀이 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얼핏 평범해 보인다. 자세히 봐도 평범해 보인다. 다시 봐도 평범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씀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으며,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이 말씀을 이루는 데에는 참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

   -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살아계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적어도 이상과 같은 전제가 충족되어야만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께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전제들은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니다. 만일 이것이 쉬운 일이라면, 지구 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그들의 가치관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은 위의 전제들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이론 물리학자들 중에는 세상이 수학적으로 표현가능한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신'의 존재를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로마서 1:20)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만물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고, 지금 살아계신 분임을 믿을 수 있고,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임을 믿을 수가 있다. 이것은 이론물리학자가 되어 극히 거대한 우주나 극히 미소한 입자나 만물의 움직임을 통일시켜 설명하는 이론을 연구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일이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것만 보아도, 또는 지금 살아 움직이는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아도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눈에 보이는 물질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고, 따라서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로마서 1:21)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뺏겨, 마음이 미련해지고,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미련함과 어두움은 애써 하나님을 외면하려는 '죄성(罪性)'에서 비롯된다.

 

(로마서 1:28)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사람에게는 눈이 있고 뇌가 있으니, 눈으로 보고 머리로 약간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가 있으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백지와 같은 무지에서 시작해 본다면,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계시느냐는 똑같은 확률의 가정으로서 취급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애초에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조차 갖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너무나 명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나님은 명백하게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 애써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겠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깎아내리려는 시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이사야 14장에 기록된 사건과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질 것이며, 조만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존재하시기가 참 피곤하실 것 같다.

 

(이사야 14:12-14)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우리의 눈에 보여서도 안된다. 이것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믿을 때에 우리를 예쁘게 여겨주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성을 거슬러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택하신 자들'이라고 불러주시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께 피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들을 지키시며, 요새가 되어 주시며, 피난처가 되어 주시며, 방패가 되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 분명하다. 혹시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우리가 보기에는 가장 좋아 보이지 않을 지라도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영혼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곁에서 살아가게 해 주실 것이 분명하다.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은 사람을 의지할 것이다. 어리석게도 같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썩어서 없어질 세상의 물질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고 짧은 생명과 적은 힘을 가진 사람의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을 의지한다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잠깐의 유익을 얻을 수 있을 뿐이며, 이 유익 또한 아무런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의지하던 사람의 마음이 갑자기 변한다거나 의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면, 소위 '낙동강 오리알'이나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정말로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결국 허망할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세상에 매여서 사느라 정말 중요한 구원의 문제는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인생들을 보시며 간절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눈을 뜨고, 자연을 둘러보고, 열린 마음으로 나의 존재에 관해 조금만 생각을 해본다면...

참으로 든든한 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삶이 바뀔 수가 있다.

그러면, 성경의 가운데에 위치한 매우 간단해 보이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이 말씀이 얼마나 든든하고 큰 축복인지 감사하게 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지...

 

※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를 기록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2021년 11월 16일자로 유튜브에 업로드된 "한 선교사가 경험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가지"라는 동영상 (전체 이야기는 김윤상 선교사님편, 표인봉, 윤유선의 하늘빛향기 563편) 을 보면 예수님 앞에 서는 체험을 하게 된 멕시코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살아날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영작 체험을 했는데 심판의 자리에서는 지나간 삶이 빠르게 지나가며,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치있는 순간들을 꼽으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전적으로 예수님과 동행한 시간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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