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성찬

아리마대 사람 2019. 2. 15. 16:04

몇 군데의 교회를 다녀본 경험에 따르면, 어떤 교회는 한 해에 한 번 혹은 두 번쯤 성찬식을 행하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매달 성찬식을 행하기도 한다.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몸소 본을 보여주신 바를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이 무엇인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26:26-28)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22-24)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떡을 주시며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잔을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떡을 주시며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잔을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으라'와 '받으라'의 차이, '이것을 마시라'라는 말씀이 있는가, 또는 이미 마신 까닭에 이 말씀이 없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복음서의 말씀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성찬과 관련하여 떡과 잔이 글자 그대로 예수님의 실제적인 몸과 피라는 주장, 또는 예수님의 실제적인 몸과 피가 된다는 설이 주장되었는데, 아마도 여기서의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은 내 피니라'라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싶다. 

흥미롭게도 누가복음의 기록은 이와 약간 다르다.

 

(누가복음 22:19-20)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은 이방인 의사인 누가가 기록했기에 포도주를 마시고 식사를 시작했던 로마시대의 풍습을 따라 잔이 먼저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잔은 성찬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크지 않아 보이고, 누가복음의 기록이 지닌 특징적인 점으로서는 떡을 주실 때에 '나를 기념하라'라는 말씀이 더해져 있다는 점이다.

이 기록들을 비교해 보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은 말그대로 '기름기를 완전히 빼고' 예수님의 발언의 핵심만을 기록한 것이고, 누가복음의 기록은 약간의 해석이 더해졌거나, 예수님의 발언의 뉘앙스를 포함하여 기록한 것처럼 이해될 수가 있다. 물론, 누가복음의 기록이 더 정확한 기록일 수도 있다.

어느쪽이 더 정확한 기록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데...

과연 누가복음은 뉘앙스를 더한 것일까? 누가복음의 저자는 떡과 잔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아마도 '기념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서 기록한 것일까? 아니면, 글자 그대로 떡은 예수님의 몸이고, 잔은 예수님의 피였던 것일까?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만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이 정확한 것이라면, 예수님께로부터 떡과 잔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 그 자리에서 먹고 마신 것으로서 성찬은 끝난 일이 되어버린다. 먹어라, 마셔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제자들이 먹고 마심으로써 마무리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찬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것은 성찬이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라는 누가복음의 말씀에 근거했기 때문일 것이다. 떡과 잔은 글자 그대로 예수님의 몸과 피요, 먹고 마심으로써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심을 행함으로써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한가지, 떡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인가에 관해서는 십계명의 말씀을 참고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출애굽기 20:4-5)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께서는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어떤 '형상' 자체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한정할 뿐 아니라 그 '형상' 자체가 하나님을 대체하고 결국 하나님의 자리에 앉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쉽게 신뢰해 버리는, 취약한 인간의 습성을 생각해 볼 때 지극히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십계명의 말씀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떡이나 잔은 그 자체로서 결코 예수님의 몸과 피를 대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떡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이기 때문에 결국은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라는 말씀이 포함된 누가복음의 말씀은 저자가 예수님의 말씀의 뉘앙스를 포함시켰거나 자의적인 해석을 추가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떡과 잔은 예수님의 몸과 피, 곧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의 죽으심,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을 '기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누가복음의 말씀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하여 사전의 도움을 받아 '기념(紀念/記念)'의 뜻을 찾아보면,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으로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누가복음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떡과 마찬가지로 잔에 대해서도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구조적인 측면에서 자연스러움을 생각할 때, 떡을 먹고 잔을 마심으로서 예수님 자신의 몸과 피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라는 뜻을 담아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라

 

현재의 성찬은 위와 같은 이해에 기초하여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이러한 이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찬에 관해 보다 깊이 설명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1:23-26)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떡을 먹음은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잔을 마심도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임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서 한걸음 더나가 이 기념은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기념의 뜻을 국어사전을 통해 살펴보면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으로 나타나 있다. '나를 기념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념'의 사전적 의미에 대입해 보면, '뜻깊은 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사역,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이루신 일로 생각할 수 있고, '훌륭한 인물'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심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오래도록 잊지 아니함'은 성찬식을 지속적으로 거행함으로써 떡과 잔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사역을 잊지 않는 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이것이 '기념'으로서의 성찬의 의미의 전부일까?

비록 국어사전은 기념의 뜻을 이와 같이 정의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념의 뜻을 생각할 때 이는 매우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의미에 불과할 뿐이며,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기념'을 그저 이 정도만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기념'의 행위를 실제로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 단체인 각종 '기념회', '기념사업회', '기념사업단', '기념위원회' 등의 목적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기념하고, ~를 계승, 발전시킨다'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실생활에서의 기념의 뜻은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승, 발전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적인 기념의 뜻을 정리해 보면,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할 뿐만 아니라 (기념), 뜻깊은 일을 지속적으로 동일하게 행하거나 휼륭한 인물을 닮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계승), 이를 통해 보다 더 뜻깊은 상태로 변화시키거나 휼륭한 인물의 됨됨이를 배우도록 널리 전한다 (발전)'로 이해할 수가 있다. 

이러한 실제적인 의미를 성찬에 적용해 본다면, 성찬의 의미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할 뿐만 아니라 (기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사랑을 삶 가운데서 실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계승), 이를 통해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고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도록 실천해 나아간다 (발전)'는 뜻이 될 것이다.

성경의 기록도 실은 이와 같은 '기념'의 개념에 기반하여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서 "떡은 내 몸이니라, 잔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셨음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는 말씀을 따르는 것은 곧 우리도 성찬을 행함으로써 이를 '계승'하는 것이며,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성찬의 의미를 널리 알림으로써 한 단계 높은 성찬의 상태, 곧 성찬의 '발전'을 나타낸 말씀이다.

성찬을 한 해에 한 두 번만 행하든, 또는 매달 행하든, 성찬은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행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을 계승해 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 분을 전함으로써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켜 나가는 행위인 것이다.

성찬식 중에 카스테라 조각과 소량의 포도주를 입에 넣고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잠깐 생각이 스치며 그렇게 성찬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