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초

아리마대 사람 2019. 7. 19. 22:54

현재 출석 중인 교회에서는 찬양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예배 전에 많은 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찬양단이 다양한 악기들의 반주에 맞춰 강단을 무대삼아 찬양을 부르며 예배를 시작한다. 주일 낮예배에서는 이 순서가 준비찬양처럼 진행되지만... 이는 단순한 준비찬양으로만 생각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주일 낮예배 이외의 예배에서는 예배 앞부분의 30분 가량을 찬양단의 찬양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매우 '컨템포러리'한 이들 찬양단 외에 예배마다 예배순서의 일부로서 또한 성가대가 찬양을 한다. 또한, 각종 특송순서도 많다.

뿐만 아니라, 설교 도중에도 본문 말씀이나 설교내용과 관련있는 찬양, 복음성가를 부르는 경우가 매우 잦다. 또한, 금요철야예배나 작정기도회 등등에서는 죽복의 의미를 지닌 찬양을 부르며 교인 간에 서로 축복해 주도록 권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 내에 무척 많은 수의 찬양단이 존재하고 있고, 또한 찬양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은 것 같다.

예배당 앞의 강단에 서서 찬양을 부르는 찬양단원들은 중고등부 학생들부터, 청년부,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눈을 감고, 손을 높이 들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매우 감격스러운 모습으로 찬양을 부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은혜로운 모습으로, 감격하는 모습으로 찬양을 부르며 찬양을 인도하는 찬양단 내에서 알게 모르게 다툼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모습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교회이니, 당연히 현재로서는 부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마음 속에 세상 사람들과 같은 욕심을 지니고 있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까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토록 감격스럽게 찬양하는 모습과 내부의 문제점들 간에 괴리가 상당히 크다는 점은 일견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신실함'이라는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수함'이나 '뛰어남'보다, '화려함'이나 '부요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세상에서는 조변석개하는 모습이 너무도 흔해서, 그리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결혼생활의 신실함... 결혼을 할 때에도 평생동안 생활을 함께하는 가운데 늘 사랑하며 지낼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관계의 신실함... 사람을 만나서도 늘 반갑게 만나고 작은 것이나마 좋은 것을 나누어 줄 것을 생각해야 한다.

믿음생활의 신실함... 믿음생활을 할 때에도 잠시 잠깐 뜨겁게 은혜받는 것만을 사모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꾸준히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려 애쓰며 살아갈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마라톤 코스를 줄발할 때의 마음가짐과 같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빨리 뛰어나가 1등으로 달리는 것을 욕심내지 말고, 먼 거리를 끝까지 달려낼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믿음에 있어서 '신실함'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은혜의 체험을 갖게 되는데, 사는 동안 그 은혜가 바싹 말라버리지 않을 '신실함'을 어떻게 갖고 살 수 있을까...

비록, 불의 혀와 같지는 않더라도 차츰차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양팔을 높이 들고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부를 만큼 뜨거워지기까지는 않더라도 결코 식어버리지 않게 하며 언제나 따뜻한 믿음을 간직하고 꾸준히 천국을 향해 걸어가도록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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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일 수 밖에 없다.

나를 사랑하셔서 사람이 사는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시고, 날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하늘로 오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그 분께서 이루어주신 구원에 감격하고 감사할 때... 내 속의 믿음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 인해 흔들릴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함으로부터 비롯되며 이러한 과정이 보다 자연스럽지만, 때로는 구원의 막연한 감격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첫째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구원을 이루신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혼에까지 퍼져서, 어느 순간, 서서히 눈가를 적시는 감격이 된다.

둘째는 그분이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혼에까지 이르러, 어느 순간, 사람의 전 인격을 엎드리게 만드는 떨림이 된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집에서 영원히 함께 거할 것이라는 소망을 품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혼에까지 이르러, 어느 순간, 세상의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 단 위에 눕는 이삭과 같이 나를 하나님의 손에 가볍게 올려 드리는 자유를 누리게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는 것이며,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한다.


또한, 믿음 위에 서있도록, 비록 굳건하게는 아니더라도 결코 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역사를 예정하시고, 나와 함께 거하실 때까지 역사의 모든 순간을 예정대로 이끌어 가시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그분께서 사람을 감동시키셔서 글로 기록하여 남기게 하신 말씀을 믿을 때... 내 속의 믿음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 인해서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데에는 때로는 약간의 상식이나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효율성의 측면에서 필요한 것 뿐이며 그분의 말씀의 정확성과 일관성은 쉽게 꺠달을 수 있을 만큼 너무나 명확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관적, 감성적 체험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객관적, 과학적 증거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상을 만드신 일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과 죽으심, 살아나심과 다시 오심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모든 일을 이루어가시는 역사의 과정이 담겨있다. 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완전하게 진행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이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을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

이것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사람은 그 믿음이 전기밥솥의 보온 스위치를 켜둔 상태와 같이 늘 따뜻하여 결코 식어버리지 않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반의 기간 동안 예수님을 따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적을 보았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불치의 병이 낫고, 사람 속의 귀신이 도망가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르침의 말씀을 듣고 배웠다. 하늘나라에 관해서, 구원받는 삶에 관해서, 심지어는 역사의 끝자락에 관한 말씀들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모두 도망가고 말았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기적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또한, 훌륭한 가르침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하물며, 찬양은 어떨까? 찬양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기억력의 한계와 죄의 본성을 지닌 사람에게 있어서 그저 그 때의 놀라움과 즉흥적인 감동 뿐인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를 외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체험을 허락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이 은혜의 체험만큼 중요한 것,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귀한 체험이 일과성의 감동으로 사그라들지 않고, 이후에도 일상의 삶 속에서 꾸준히 타올라 이 땅을 사는 동안 꺼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 믿음의 불씨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빨간 글씨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적힌 노란 띠를 두르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곤했다. 어느 교단, 어느 교파, 어느 교회 소속인지는 알 수 없고, 정신상태에 대해서도 알 수 없으며, 어쩌면 이단에 소속된 사람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띠에 적힌 그 글귀는 분명히 올바르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을 통해서만 천당에 갈 수 있고,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뜨거움과 또한 식지않음의 근원은 '오직 예수'일 수 밖에 없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는,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약간의 세월이 흐른 뒤 이 세상에서 없어지겠지만, '오직 예수'는 스위치가 켜진 채로 영원히 변함없을 것이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분명히,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 믿음이 결코 식지 아니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 앞에 이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