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메세지와 관련해서는 형과 동생이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참고할 수가 있다. 탕자의 이야기, 그리고 포도원에 보낸 두 아들의 이야기이다.
. * * *
탕자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에 아버지와 두 아들, 곧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나온다는 점이 이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게 한다.
위에서 살펴본 창세기의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초점은 둘째 아들에게 향하고 있다. (이젠 이 사실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누가복음 15:11-12)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신의 분깃을 받게 되는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일 것이다. 그런데, 되바라진 둘째는 뻔뻔하게도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라고 요구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에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요구하는 행위는 요즘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버릇없고 막돼먹은 태도이다. 버릇없고 막돼먹은 아들, 곧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은 본래 율법에 따르면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다.
(신명기 21:18-21)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그러나, 아버지는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에게 살림을 나눠주었다.
막돼먹은 둘째 아들은 자신의 분깃으로 미리 받은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모두 써버렸고,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자 궁핍한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정한 동물로 여기는 돼지를 치는 일까지 하며, 마침내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해도 그 마저도 먹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는 굶주림을 해결할 요량에 품꾼으로 일할 각오를 하고 아버지께 돌아갔다.
(누가복음 15:20-24)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을 온전히 아들로 대하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로 생각하고 기뻐하였다.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 이제 이야기의 초점은 맏아들로 향한다.
(누가복음 15:25-30)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맏아들, 곧 형은 둘째 아들, 곧 동생을 '탕자'로 생각했고, 동생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전해듣고, 또한 아버지의 말을 직접 들고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이 불평불만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실은 오랜동안 쌓여온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기고 명을 어긴 일이 없지만, 친구들과 즐기도록 염소 새끼라도 주신 적이 없다는 말에서 맏아들의 불평불만이 즉흥적이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첫째 아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 동생은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렸다.
- 그러나, 동생이 돌아오니 아버지는 동생을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다.
- 나는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다.
-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맏아들에게 이야기한다.
(누가복음 15:31-32)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에게 있어서 맏아들은 늘 함께 지내온 아들이고,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아들이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아들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자신의 것들을 이미 다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 제 분깃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모두 써버렸지만, 이제 다시 돌아온 작은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과 같다.
- 작은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도 즐겁고 기쁘다.
- 나의 모든 것은 나와 항상 함께 있는 큰아들의 것이다.
- 그런데, 겨우 염소 새끼로 친구들과 잔치를 벌이지 못한 것에 섭섭함을 느끼니?
맏아들의 생각과 아버지의 생각은 분명히 다르다. 맏아들은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더 챙기고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하고 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맏아들이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다면 당장의 불평불만이 가라앉은 후, 아버지의 이야기를 되새길 것이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고, 마침내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있어서 더 소중한 아들은 누구일까?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잃었다가 얻은 것처럼 느껴지는 둘째 아들도 소중하지만, 항상 함께 있어온 맏아들도 소중하다.
또한, 항상 함께 있어온 맏아들도 소중하지만,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잃었다가 얻은 것처럼 느껴지는 둘째 아들도 소중하다.
큰 아들도 소중하고, 둘째 아들도 소중하다는 것... 탕자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특별하고도 중요한 메세지는 실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 * *
탕자의 비유 직전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를 찾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복음 15:4-7)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8-10)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백 마리 중의 하나이고,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열 드라크마 중의 하나이다.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는 전체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을 찾은 사람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을 나누며 즐기고 싶어한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여자도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을 나누며 즐기고 싶어한다.
여기서 양과 드라크마는 '죄인'을 가리키며, 양과 드라크마를 찾은 것은 '죄인이 회개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고,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기고자 함은 '하늘에서도 기뻐함'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살펴볼 때, 작은 아들이 돌아온 사건은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것과 같은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잃어버렸던 하나를 찾는 기쁨을 말한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생각해보면, '죄인 한 사람의 회개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는 기쁨보다 더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도 중요하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은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너희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말씀했는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5:3-10)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을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이해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 * *
또한, 형과 동생이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서 포도원에 보낸 두 아들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다.
(마태복음21:28-31)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맏아들은 아버지가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시켰을 때,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하고서는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라고 대답했다가 뉘우치고 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마치신 후의 예수님의 설명과 전후 사정을 통해 '맏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말'이 무엇을 비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맏아들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 대한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음21:23)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또한, 둘째 아들은 세리들과 창녀들에 대한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음21:32)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은 요한이 전한 의의 도에 대한 비유로 이해할 수가 있다.
포도원에 가지 않은 맏아들과 같이 요한이 전한 의의 도를 들었으나 그를 믿지 않고 뉘우치지 않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불순종을 뉘우치고 포도원에 간 둘째 아들과 같이 요한이 전한 의의 도를 듣고 그를 믿은 세리들과 창녀들.
이 이야기 속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탕자 이야기 속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과 비슷하며, 두 이야기의 구성도 서로 흡사하다. (1) 탕자 이야기, (2) 포도원에 보낸 두 아들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
맏아들
- 처음의 순종하는 모습
(1) 여러 해 아버지를 섬기면서 명을 어긴 적이 없음
(2) '아버지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함
- 나중의 불순종의 모습
(1) 벗들과 즐기도록 염소 새끼라도 준 적이 없고, 동생이 돌아오자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아버지에게 불평 불만을 쏟아냄
(2) 그러나, 포도원에 가지 않음
둘째 아들
- 처음의 불순종의 모습
(1) 자신의 분깃으로 미리 받은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모두 써버림
(2) '싫소이다'라고 대답함
- 나중의 뉘우치고 순종하는 모습
(1)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라고 말하며 아버지에게 돌아옴
(2)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감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 또는 요한의 도를 들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그리고 세리들과 창녀들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두 이야기의 구성이 동일하다고 이해해도 될 만큼 서로 흡사하다는 것이다.
맏아들은 순종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은 불순종하는 모습을 드러냈고, 둘째 아들은 불순종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은 순종하는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아브라함부터 요셉이 이르는 가계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들에서 왜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 선택되고,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또 다른 의미를, 혹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 * *
그렇다면, 맏아들과 둘째아들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맏아들'이나 '둘째 아들'에 관해 알려주신 말씀은 없는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맏아들, 곧 '장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신 바가 있다.
(출애굽기 4:22)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이 말씀을 참고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맏아들이다. 물론, 여기서의 맏아들이라는 개념은 이 말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땅의 나라와 민족과 백성 중에서의 맏아들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셨을 때, 나라와 민족과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창세기 17:7-8)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맏아들이 되었음은 바로가 완악하여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보내지 않을 때,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신 유월절 사건에서 드러난다.
(출애굽기 4:23)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출애굽기 12:29)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하나님께서 맏아들이 된 백성을 위해, 맏아들이 된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시기 위해 애굽의 모든 맏아들을 치신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출애굽기 13:15)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이스라엘 백성은 맏아들로서 하나님께 특별한 백성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출애굽기 19:5-6)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맏아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을 주셨다.
(출애굽기 20:1-1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애굽기 24:12)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맏아들이 되었다면, 둘째 아들은 누구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이외의 이방 백성들이다. 그렇다면, 나라와 민족과 백성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맏아들, 이방 백성들은 둘째아들이 되는 것이다.
둘째 아들인 이방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도 모르고, 언약과 율법으로부터 동떨어져서 살아왔다.
(에베소서 2:11-12)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둘째 아들인 이방 백성들은 명백히 이방인이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였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맏아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 그러나, 둘째 아들인 이방 백성들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사도행전 28:28)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이러한 이해는 탕자의 이야기, 그리고 포도원에 보낸 두 아들의 이야기의 구성,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맏아들 - 이스라엘 백성
- 처음의 순종하는 모습
(1) 여러 해 아버지를 섬기면서 명을 어긴 적이 없음
(2) '아버지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함
(3)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함
- 나중의 불순종의 모습
(1) 벗들과 즐기도록 염소 새끼라도 준 적이 없고, 동생이 돌아오자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아버지에게 불평 불만을 쏟아냄
(2) 그러나, 포도원에 가지 않음
(3)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
둘째 아들 - 이방 백성
- 처음의 불순종의 모습
(1) 자신의 분깃으로 미리 받은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모두 써버림
(2) '싫소이다'라고 대답함
(3) 하나님을 모르고 언약도 없고 율법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감
- 나중의 뉘우치고 순종하는 모습
(1)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라고 말하며 아버지에게 돌아옴
(2)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감
(3) 복음 전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지구상의 다른 민족들은 율법을 지키라는, 특별히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관해 알지 못했고, 따라서 지키지도 않고 살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했으며, 이를 지키지 않을 때는 죽임을 당했다. (이는 안식일에 관한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철이 들었다고 생각되는 맏이가 철없는 동생들을 대표해서 혼나는 상황이 연상된다.
* *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무엇을 바라실까?
이솝우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또한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맏아들인 이스라엘 백성과 둘째 아들인 이방 백성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서로 너무나 다르다. 아버지 곁에서 명을 어김이 없이 아버지를 섬겼던 맏아들과 자기 분깃의 재산을 맏아 방탕하게 탕진한 둘째 아들처럼, 또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가겠다고 대답했으나 가지 않은 맏아들과 싫다고 대답했다가 뉘우치고 갔던 둘째 아들처럼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백성들은 서로 너무나 다르다. 과연 이들은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것일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백성들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에베소서 2:13)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것이다. 지구 상의 모든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백성들로 하여금 사이좋게 지내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유전자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DNA인 셈이다. 그리고, DNA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아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좋은 형제, 곧 '한 새 사람'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아들이 사이좋은 형제가 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다.
(에베소서 2:14-18)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둘째 아들은 맏아들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에베소서 3:6)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이 사이좋은 형제가 되도록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셨다.
(에베소서 3:7)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두 아들이 마침내 사이좋은 형제가 되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야기인 것이다.
(에베소서 3:8-9)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늘상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아들들에 관한 이솝우화에서 아들들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깊이 깨닫고 이후에 서로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는 결말을 붙여넣게 된다면,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역사의 그림자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 새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예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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