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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모습

로렌스 형제, 『하나님의 임재 연습』

아리마대 사람 2021. 11. 4. 02:18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항상 하나님을 기뻐하고, 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이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가능하다.

예수님만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향한 나의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은 항상 하나님을 기뻐하고, 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로렌스 형제의 이야기이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실은 이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빠, 엄마와 친밀한 자녀들이 일상 가운데 늘 하고 있는 일이다.

아빠가 장난감을 사주었을 때, 엄마가 맛있게 밥상을 차려주었을 때,

신이 나서(기쁨) 고맙다고(감사) 말하는 것(기도)이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알 때,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을 때,

행복감에 신이 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자녀들은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그 사실을 깨달으며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하는 나의 자녀야, 내가 너의 아버지란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인 것이다.

그 음성에 '네, 아버지, 저도 사랑해요~'라고 응답하는 것은 행복한 자녀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로렌스 형제가 그랬듯이.

 

 


 

로렌스 형제 (1611-1691)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니콜라 에르망(Nicholas Herman)이다. 훗날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생활하면서 '로렌스 형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수도원 회계의 잔심부름꾼으로 일했으며, 30년 전쟁에 참전했다가 심한 부상을 입고 다리를 저는 장애를 지니게 된다. 열여덟 살의 어느 겨울날, 한 그루 나무를 바라보다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붙들린 그는 이처럼 여러 가지 삶의 굴곡을 지나 마침내 카르멜 수도회에 들어가 평수사로 생을 보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깨달은 영척 통찰이다. 한 평신도 수도사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신앙 고백은 300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있는 메시지다.

그는 수도원에서 주방 허드렛일이나 신발을 수선하는 일을 하면서도 매 순간 호흡하듯 하나님의 깊은 임재 속에서 온전히 살았다. 그가 하는 말보다 본이 되는 그의 삶이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이 땅의 단조롭고 고된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함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복을 누리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책 속으로

 

<20-21쪽 중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만큼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 드릴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자기 영혼을 지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영혼은 영적인 일에만 관여할 수는 없으며 어쩔 수 없이 바깥 세상의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여 세상에는 영혼의 속을 다 내비치면서 하나님께는 등을 돌리게 된다면, 그분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따라 자기 영혼을 지키고자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원할 때마다 자유롭게 그분과 깊이 교제할 수 있다.

 

<30쪽 중에서>
그는 종종 생각이 모든 일을 망쳐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악이란 대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로렌스 형제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섬기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우리의 구원을 망가뜨리려는 생각이라면 어떤 것이든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이 그런 생각들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로렌스 형제는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구원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는 종종 기도 시간을 그런 잡념을 떨치는 일로 다 보내 놓고도 이내 다시 그런 생각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곤 했던 것이다.

 

<40-41쪽 중에서>
우리의 성화(聖化)는 우리가 추구하는 활동을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데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활동들을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데 있다고 로렌스 형제는 말했다. 로렌스 형제가 터득한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사를 단순하게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다. 그는 맡은 일과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의 마음으로 감당했으며, 그 사랑을 항상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드리고자 했다.

 

<93쪽 중에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기도 시간뿐 아니라 규칙적인 일과 시간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네. 하루 종일, 매시간, 매분마다 나는 하나님 생각으로부터 나를 떼어 놓으려 드는 모든 것을 내 영혼 바깥으로 몰아냈다네. 내가 하나님과의 동행을 시작한 이후로 그 연습은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네. 물론 그 연습이 주춤주춤해지고 굵직한 실수들로 얼룩지는 시간들도 많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과정들을 통해 커다란 축복을 누리고 있다네.

 

<121쪽 중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즉 어떤 것이 자기 의지에 온당해 보이고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을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해 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온전히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세상이 주는 내 의지의 느낌마저도 버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만일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하나님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방해를 받을 것이다.

 

<144-145쪽 중에서>
수도원 평수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기도는 그에게 특별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해야 할 일이 많건 적건 간에 그는 결코 기도 시간을 줄이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누가 봐도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수도원의 동료 수사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모본이 되었다. 그가 맡은 일은 가장 천한 허드렛일이었지만 그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나 피곤한 일을 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를 지켜 주었다.

 

<149쪽 중에서>
삶에서 꼭 큰일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프라이팬의 작은 달걀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는다. 그 일도 다 끝나 더 할 일이 없으면 나는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분이 주시는 은혜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일어날 때면 나는 어느 세상 나라 왕들보다도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설령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바닥에서 티끌 하나만 주워 올릴 수 있어도 만족할 것이다.

 

<155-156쪽 중에서>
그는 비록 수도원에서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렇다고 경건한 척하거나 늘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꾸며 내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을 선뜻 다 가서지 못하게 할 뿐이다. 오히려 그는 모든 사람을 형제처럼 따뜻하게 대하고, 동료 수사들을 친구처럼 대했으며, 조금도 그들로부터 구별된 존재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존경을 얻을 심산으로 자신의 덕성을 은근히 내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숨겨진 삶, 감춰진 삶을 살아가고자 애썼다.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음에도 결코 겸손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고, 오직 겸손 그 자체만을 추구했다. 그는 자기의 행실을 증거해 주실 분으로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본 유일한 상급은 바로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

 

<166쪽 중에서>
그에게는 모든 것, 모든 곳, 모든 일이 똑같았다. 이 선한 형제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을 때나 신발을 수선하고 있을 때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하나님을 발견했다. 쉼을 갖기 위해 특별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외딴 광야에서뿐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도 자신이 사랑하고 경배해야 할 똑같은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로렌스 형제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수단은 매사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그 일을 하나님을 위해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중시한 것은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