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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성령의 일하심 (2)

아리마대 사람 2021. 12. 21. 14:58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고, 신약성서는 헬라어(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다. 헬라어라는 언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성령의 일하심을 볼 수 있다.

 

신약성서 헬라어 자체를 좀 더 가까이 검토하기로 하자.

과거 어떤 때의 학자들은, 신약성서의 원어가 하나님께서 성서 기자들에게 특별히 주신 특수한 헬라어로서 소위 성령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두 가지 다른 의견이 대두하였다. 하나는 히브리파로서 칠십인역이나 신약성서가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표현 방식을 주로 받은 성서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보았으며, 또 하나는 순수파로서, 그것들이 고전 아티카 방언에 가까운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1825년 비너의 발표를 비롯하여 신약성서 학계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일대 변혁이 생기었다. 독일의 다이스만, 영국의 몰튼, 미국의 로벗슨 같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서, 신약성서 헬라어는 단순히 제1세기에 통용되던 구어체 헬라어, 즉 코이네 헬라어라는 것이 밝혀졌다. 영감을 받은 성서 기자들이 그 당시 대중이 사용하던 일반 용어를 가지고 기록하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

신약성서가 그와 같이 당시의 일상 구어체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신약성서와 칠십인역의 헬라어는 하나의 독특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 파피루스에 기록된 일반 문서들과 비교하면, 문장의 질적인 측면에서 뛰어나지만 그 시대에 아티카 방언을 사용하여 기록한 고전 작가들의 글과 같이 고전적인 면은 발견되지 않는다. 신약 헬라어는 그 시대의 통용어와 같으면서도 이런 특징을 가지는 것은, 누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자들이 유대 사람이었다는 데서 먼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유대인들의 관용적인 술어가 많이 사용되며,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어법과 칠십인역의 영향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물론 당시 팔레스타인의 토착어이던 아람어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 헬라어는 일반 코이네 헬라어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 코이네 시대에도 고전적인 아티카 방언으로 글을 쓴 고전파 작가들도 많이 있다. 스트라보, 플루타르코스, 폴리비오스, 요세푸스, 필론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반면에 이집트에서 많이 발견된 파피루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 당시의 사사로운 편지, 계약서, 유언서, 법정 기록, 정부 문서 등에는 비문학적인 일상 구어체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성서 헬라어는 이런 일반 문헌에 사용된 헬라어 형태를 따르고 있다. (신약성서 중에서도 누가와 히브리서 기자는 코이네이면서도 문어체 코이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신약성서 헬라어는 히브리어, 아람어, 구약성서, 칠십인역 등이 영향을 받아 문체상의 특이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서 기자들의 창의적 요소들이 그 언어 속에 침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사회에서 보통 쓰던 개념과는 무척 다르거나, 개념의 폭이 넓어지거나 승화된 경우들도 많이 있다. 이집트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조각들이나 그 밖의 비문들이나 옛 유물들에 적혀 있는 글이 투명하지 못하던 헬라어 낱말들의 뜻을 밝혀 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독창적으로 만들거나 사용한 표현과 낱말들은 기독교의 고유한 사상을 연구하기 전에는 이해하기 곤란하다. 사랑, 은혜, 신앙 등의 많은 낱말들이 보다 깊고 넓을 어의를 함축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시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인간에게 주려 하실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의 언어적인 통일을 먼저 이루시고, 만민에게 미치는 기쁜 소식을 가장 짧은 시일에 가장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떠나서 그 당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통용 구어체를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는 것은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쉬운 말로써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이 헬라어를 택하신 줄로 안다. 그 밖에도 헬라어를 성서 원어로 사용하신 특별한 뜻이 계신 줄로 안다. 즉 헬라어는 그 당시는 말할 필요도 없고 현대의 어떠한 언어에 비교하더라도 뒤떨어지지 않는 정확성과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으로부터 성령의 일하심을 볼 수 있다.

 

인쇄술은 화약, 나침반, 종이와 함께 인류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인쇄술이란 일정한 판면에 잉크를 묻힌 뒤 종이 등의 재료에 찍어 문자나 그림을 반복적으로 복제하는 기술이다. 인쇄술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글자를 베껴 쓰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인쇄술은 크게 목판 인쇄술과 활판 인쇄술로 구분할 수 있다. 목판 인쇄술은 나무판에 글자를 음각으로 파내거나 양각으로 새긴 후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기술이고, 활판 인쇄술은 활자를 하나하나 따로 만든 뒤 그 활자들을 조합해 문서를 찍어내는 기술이다. 목판 인쇄술과 활판 인쇄술은 모두 동양에서 시작되었지만 한자 문화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활판 인쇄술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수천 자나 되는 한자를 일일이 활판으로 만들어 찍는 것보다 차라리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편이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서양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436년~1446년에 걸쳐 독일의 인쇄업자인 구텐베르크가 납으로 활자를 만들었다. 납에다 주석, 안티몬 등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녹인 다음, 글자를 새긴 틀에 부어 활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만들 때 사용하던 압착기를 응용해 힘이 고루 가해지는 압착 인쇄기를 발명했다. 이어 그을음과 아마씨 기름을 혼합한 새로운 잉크를 만들고, 압착 인쇄기의 압력에 잘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이탈리아산 종이도 찾아냈다. 그리고 구텐베르크는 인쇄용 금속활자를 나무틀에 심어 조판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한 글자만 잘못돼도 판 전체를 갈아야 했던 목판인쇄와 달리 자유롭게 배치가 가능한 이동식 금속활자는 신속하고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는 1454년 금속활자로 1282쪽에 이르는 '42행 성경'을 인쇄했다. 각 쪽마다 42줄씩 인쇄돼 있어 '42행 성경'이라고 불린다. 이를 만들기 위해 구텐베르크는 서로 다르게 생긴 알파벳과 기호 등 활자 290개를 만들었고, 당시 30여 권을 찍어냈다.

하지만 정작 구텐베르크는 인쇄술로 떼돈을 벌거나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42행 성경'을 찍고 파산하는 바람에 인쇄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1460년 이후에는 지병으로 시력까지 잃어 인쇄업을 그만두고 고향인 마인츠로 돌아와 대주교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468년 2월 3일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구텐베르크 이후 독일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 인쇄소가 속속 설립되었다. 1500년쯤 독일에만 300곳 가량의 인쇄소가 있었다. 대량으로 쏟아지는 인쇄물 덕분에 유럽 사회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를 경험한다. 이전에는 책 한 권을 필사하는 데 대략 2개월이 걸렸지만, 이후로는 1주일 만에 500권 넘는 책을 인쇄할 수 있었다. 인쇄술을 통해 사람들은 더 이상 정보를 얻을 때 소수의 통치자나 교회 성직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해석하거나 기존 견해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15세기 후반 발달한 인쇄술에 힘입어 성경이 대중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루터의 종교개혁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