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이어령 선생님은 젊은 시절 가난했고 너무 바빴다고 합니다.
아빠로서 딸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은 돈을 벌어 바비인형이나 피아노를 사주고 좋은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답니다.
어느 날 어린 딸 민아가 글쓰던 자신의 서재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빠에게 굿나잇을 하러 온 것입니다.
아마도 딸은 아빠가 안아주기를, 그리고 새 잠옷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마침 떠오르는 영감을 글에 담아내기에 여력이 없었습니다.
글에 집중하느라 뒤돌아 보지도 않은 채 손만 흔들며 "굿나잇 민아." 라고 했습니다.
예민한 아이였던 딸 민아는 아빠의 뒷모습만 보고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딸은 결혼도 하고 중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은 암에 걸려 결국 아버지보다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죽은 딸이 생전에 했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때 수십 년 전의 그 날 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딸이 얼마나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를 알았습니다.
딸은 인터뷰 기사에서 퇴근해 온 아빠의 팔에 매달렸을 때, 아빠가 "아빠 밥 좀 먹자" 하고 밀쳐낸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날 아빠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원고 마감이야, 얘 좀 데려가!" 라고 엄마에게 소리치는 아버지의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인터뷰에서 아빠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며 아빠를 두둔해 줍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합니다.
자신의 사랑 자체가 부족했다고.
자기가 지금 일하지 않으면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거야' 하는 불안한 마음에 돌아볼 수 없었노라고.
그는 잘못을 깨닫고, 늦었지만 이미 천국에 간 딸에게 편지를 쓰며 단 30초만 달라고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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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굿나잇 키스
네가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는 시간이었고 너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내게 들려온 것은 "아빠, 굿나잇!" 하는 너의 목소리 뿐이었지. 이 세상 어떤 새가 그렇게 예쁘게 지저귈 수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목소리만 들었지, 너의 모습은 보지 않았다. 뒤 돌아보지 않은 채 그냥 손만 흔들었어. "굿나잇, 민아." 하고 네 인사에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너는 그때 아빠가 뒤돌아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안아주기를, 그리고 볼에 굿나잇 키스를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니면 새 잠옷을 자랑하고 싶어 얼마 동안 머뭇거렸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때 네가 본 것은 어차피 아빠의 뒷모습뿐이었을 테니까.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는 너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글의 호흡이 끊길까봐 널 돌아다볼 틈이 없었노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때 아빠는 가난했고 너무 바빴다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바비인형이나 테디베어를 사주는 것이 너에 대한 사랑인 줄 알았고 네가 바라는 것이 피아노이거나, 좋은 승용차를 타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것인 줄로만 여겼다.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그런 것들을 너에게 주는 것이 아빠의 능력이요 행복이라고 믿었다.
너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였을 뿐이라고 날 두둔해주었지만, 아니다. 진실은 그게 아니야. 그건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부족함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다.
아무리 바빠도 삼십 초면 족하다. 사형수에게도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고 땅을 볼 시간은 주어지는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이면 된다. 그런데 그 삼십 초의 순간이 너에게는 삼십 년, 아니 어쩌면 일생의 모든 날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만일 지금 나에게 그 삼십 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 번만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치켜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빰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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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박사님은 기억 속의 그날의 행동이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 혹은 서툰 표현이었던 것이 아니라, 실은 사랑 그 자체의 부족함때문이었다고 말씀하지만... 뒤늦은 후회 속에서 그리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듯 싶다.
사랑에 있어서는 사랑하는 마음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표현하는 때와 장소, 표현하는 용기도 참 중요하다. 마음 속에 가둬두고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아무런 유익이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2:15-16)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래서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야고보서 4:17)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고 말씀해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셨다.
(마가복음 12:29-31)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을 행하고, 사람에게 사랑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행하며 살자.
고개를 돌려 사랑스런 얼굴을 바라보자.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꼬옥 안아주자.
눈길을 돌려 배고프고 지친 얼굴을 찾아보자. 그리고 두 팔에 뻗어 내 손에 쥔 것을 나누어 주자.
그렇게 안아주고... 그렇게 내 것을 주자...
그렇게 사랑하자...
그것이 마땅히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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