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하루가 천 년 같고...

아리마대 사람 2022. 7. 23. 02:10

여러 해 전에  유튜브에서 창조과학에 관한 강의를 본 적이 있다. 김명현 박사님의 강의였는데 무척 흥미롭게 보았고, 이러한 접근 방법을 통해서 성경이 진리임을 증거하려는 노력도 있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창조과학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다. 애초에 '창조'와 '과학'이 결합된 창조과학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창조'가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창조과학이 근본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 특히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창조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보니 소위 과학적 방법론이나 과학적 사실들만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나 성경을 근동지방의 신화 정도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창조과학을 '과학'으로 분류하거나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 있어서 더더욱 반대가 심하다. 그런 부류에게 창조과학은 유사 과학내지는 사이비 과학 또는 쓰레기 과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과학도 완전할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새로운 발견과 관측을 통해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거나 기존의 이론을 수정하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을 진행 중일 뿐이다.

최근 이책 저책 둘러보다가 보니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내용들을 현대과학과 접목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표현들을 현대과학과 상충되지 않는 이론을 근거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비판적으로, 혹은 근거, 특별히 과학적 근거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성경이 객관적으로 진리임을 주장하기 위해서, 성경이 객관적인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러한 검증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러운 점은 성경이 객관적으로 진리로서의 인정을 획득하더라도 복음전파의 능력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믿음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경이 과학적 검증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점은 성경이 마냥 영적인 이야기만 기록한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은 명백하게 사실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당연히 역사적 측면에서의 사실성은 기본적인 사항이며, 성경이 고대 역사 발굴의 주요한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또한 과학적 측면에서의 사실성도 역사적인 면 못지 않게 기본적인 사항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읽다가... 다음의 구절을 만났을 때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베드로후서 3:8)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같다... 주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부터 유도된 시간팽창의 공식을 이용해서 저 구절을 실제로 계산해서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이 공식에 따르면 속도가 광속의 0.866배가 되면 로렌츠 인자가 2.0이 되어 시간이 절반의 속도로 흐르게 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광속의 0.866배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을 하고 1년 만에 지구로 돌아오면 지구의 시간은 2년이 흘러 있게 된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하루와 천 년을 비교해 보자.

하루=1일

천 년=(1000년)X(365일/년)=365,000일

시간팽창의 공식으로부터 만일 광속의 0.999999999996247배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을 하고 하루만에 지구로 돌아오면 지구의 시간은 1000년이 흘러 있게 된다는 말이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99,792,458 m/s라는 광속의 값으로부터 위의 속도는 299,792,457.998875 m/s라는 값으로 계산된다. 거의 광속에 가까운 이 속도로 이동한다면 하루가 천 년 같이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은 주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주께서는 광속에 준하는 속도로 이동하신다고 이해하실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속도가 광속을 넘어서게 된다면... 로렌츠 인자의 분모에 자리잡고 있는 제곱근 안의 값이 음수가 되어버리고 수학적으로는 허수가 나타나게 되는데... 혹시 이것은 물질세계가 아닌, 영적인 세계에서의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하루가 천 년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한 조각을 떠올려 본다. 어쩌면 유사 과학내지는 사이비 과학 또는 쓰레기 과학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생각은 성경의 말씀이 어떤 식으로든 정확한 사실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믿음은 지금으로서는 '믿음'에 불과하다. 다만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증거가 된다.

 

(히브리서 11:1)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성경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에 성경의 말씀은 실상이 되고 증거가 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이는 실상이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가 된다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참 쉽고 편하겠지만, 그렇다면 믿음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믿음은 더이상 '의'가 되지 못한다. 이 세상이라는 장소,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는 실상과 증거가 믿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라는 장소,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의 믿음은 하나님 앞에 '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4:19-25)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세상이라는 장소와 현재라는 시간을 떠나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실상과 증거는 온전해져서 굳이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고린도전서 13:12)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희미하게 볼 수 밖에 없고 부분적으로 알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지만 눈을 뜨고 바라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다.

 

(로마서 1:20)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장래에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모든 것을 온전히 보고 온전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의 실상과 증거에 대해 믿음에 근거한 한 조각의 생각을 통해서 세상과 역사와 우주를 바라보는 흥미와 즐거움을 누려보자.

적외선을 통해서 우주를 관측하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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