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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불"

아리마대 사람 2022. 8. 7. 18:44

국민학교... 초등학교... 아니, 분명 국민학교를 다녔으니... 국민학교 때, 과학시간에 배웠던 것 중에 리트머스 시험지를 이용한 실험이 있었다. 단순하게 산과 염기만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리트머스 시험지의 특성은 "산성일 때 붉은색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즉 파란색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성 물질을 만나면 붉은색으로 변하고, 빨간색 리트머스 시험지는 염기성 물질을 만나면 파란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선생님께서 "산"성일 때 "붉"은 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불"을 외우도록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리트머스 시험지 외에도 산성 물질과 염기성 물질를 알려주는 보다 많은 시약들이 있는데 이를 지시약이라고 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쓰이는 개념인데, 어떤 현상이나 증상의 정도를 알려주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요즘 흔히 사용되고 있는 개념으로는 "센서"인 셈이다.

기술개발의 목적 중에 하나인 인간의 편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최근에는 사람의 개입없이 기계 스스로가 사람이 정해준 기준을 따라 판단하고 동작을 하도록 기계에 센서를 장착하고 있으며, 마치 사람이 뇌를 사용하여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를 지능화라고 부르고 있다. 요즈음 특별히 활발한 응용분야인 차량에서는 인간의 편의 중 가장 중요한 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해 각종 센서들이 장착되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운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차량이 미끄러지고 있지는 않는지, 가까운 곳에 다른 차량이나 사람이 위치하고 있지는 않는지, 주변의 차량이나 사람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차를 강제로 제동시켜야 할 상황은 아닌지, 주행 중인 차선을 유지하고 있는지, 지금 주행 중인 도로의 제한속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판단하여 편의와 안전을 향상시키는 동작을 하게끔 되어 있다. 센서는 이 동작의 필요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능, 말그대로 지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센서의 판단을 따라 필요한 어떠한 동작을 하게 되므로 센서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며, 따라서 센서는 주변상황에 영향받지 않아야 하고 예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에서만 안전과 편의를 위한 센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생활과 관련된 것은 어쩌면 모든 것이 센서를 필요로 한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큰 울타리,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도 센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도 안전하고 편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센서는 기본적으로 사회 구성원 각자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변화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위치에 있으며, 또한 사회의 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의 변화라는 것은 때때로 급격하게 발생하기도 하지만, 안정화된 사회의 경우에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완만하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이를 깨닫기가 쉽지 않다. 사회 구성원은 사회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존재이면서도 센서로서 예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나 지시약처럼 각종 사회지표와 통계들이 직관적인 센서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수치는 정확한 판단을 돕고, 객관적인 판단을 도와준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사회현상 저변에 걸친 방대한 입력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매우 큰 단위의 사회인 국가의 영역에서 입력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는다면 센서로서 동작하기가 쉽지 않으며, 센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회지표와 통계를 고안할 수 있는 사회학 전문가, 그리고 이에 준하는 지식을 보유한 분석 전문가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이 지닌 센서로서의 둔감성, 사회지표와 통계가 지닌 입력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 등을 극복하여 보다 쉽고 직접적으로 할용할 수 있는 센서는 사회구성원이 일상에서 접하는 대중문화가 아닐까 싶다. 대중문화, 곧 다수의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를 통해 사회를 판단하고 판정할 수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사기는 당시의 사회상을 요약해서 표현한 한 구절로 마무리된다.

(사사기 21:25)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사람이" 가치관을 만들고 주장하는 사회는 사람의 주장과 사상이 우선인 사회이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회이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악한 사회를 향할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그와 같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르는 사회였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각각" 행하며 살아가는 사회는 분열되어 사회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기력하고 비효율적인 사회이며,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는 사람과 사람 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 사회이다. 가치관이 다른 각자가 서로 옳다고 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사기가 이와 같은 결론으로 끝맺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적이다. 사사기 전체에 걸쳐 이미 하나님을 부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떠나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사기 2:11)

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사사기 3:7)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사사기 3:12)

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사사기 4:1)

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사사기 6:1)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사사기 10:6)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사사기 13:1)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이처럼 사사기에는 지속적으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는 기록이 반복되고 있다.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는 저 상징적이면서 실제적인 맨 마지막 구절을 뒷받침하듯이 사사기의 후반부 17장부터 21장에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극단적이고 원색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사기의 저자는 격한 감정으로 이 죄악의 시대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가... 퍼뜩 생각이 난 것처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기록해두었다.

 

(사사기 17:6)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에 기록된 시대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면서 사람마다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던 시대였던 것이다. 사람의 뜻을 따르는 시대는 인본주의의 시대이며, 각각 제 뜻을 따르는 시대는 인본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대이다. 사람의 뜻을 따른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할 수밖에 없으며 악이 번성하는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대중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사사기 시대의 센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풍조였던 것이다.

 

최근 뉴스를 읽다가 "영화, 드라마"란에서 사사기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센서로서 대중문화의 활용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이다. 신생 방송국에서 제작한 드라마임에도 시청률이 15%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이 17.8%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한다. 드라마 소개를 보면 "이 드라마는 엉뚱하고 열정적인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가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진정한 변호사로 성장하는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린다.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의 편견, 부조리에 맞서 나가는 우영우의 도전이 따뜻하고 유쾌하게 펼쳐지는 작품이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조금은 다른"이란 말은 주인공이 자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 드라마이다보니 지능이나 감정에 장애를 지닌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희귀한 증상을 차용하여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이를 대중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 드라마의 작가와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는데, 작가의 발언 중에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고 제목을 정했나
▲ 이상하다는 단어가 우영우란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굉장히 적절하다 생각했다. 낯설고 이질적인 부정적 의미도 있지만 이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들,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힘이 이상함에 있다 생각했다.

- 동성커플, 탈북자 등 상대적 소외 계층이 등장하는데
▲ 자폐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짜보라고 한다면 많은 창작자들이 자폐가 없는 대다수 시청자들이 편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이나 화자로 설정해놓고 그 사람의 시선을 통해 관찰되는 자폐인을 묘사할거라 생각했다. '증인'이 그런 구성의 영화였다. '우영우'를 하면서는 내 나름대로 도전 과제였다. 우영우를 단독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우영우와 시청자들 사이에 매개 없이 직접 소통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이상하고 낯선 우영우에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직접 감정이입해 같이 울고 웃고 성장하는 기적같은 체험이라 생각한다. 이왕 그게 의도인 것이라면 이 드라마 전체가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갈 필요는 있겠다 생각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 제작사도 이견 없이 환영해주시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주셨다. 동성커플이라든지 하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을 벗어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가 달라진 점 중에 하나는 과거와 달리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장애인들이 밝은 곳으로 나올 수가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변화의 연상선 상에서 보자면 이 드라마는 박수받을 만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그 지점에 최근의 소위 '다양성, 포용, 평등' 사상이 개입하면서 이 드라마는 단순히 사회상의 반영이 아니라 사회풍조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로 변질된 부분이 있지 않은가 의심된다.

이상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일부 IT 기업들이 동성애자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이유와 매우 흡사하다. 장애인을 다양성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써 소위 소수자들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이를 발판삼아 드라마에 동성커플을 등장시키는 것은 마치 소위 '소수자'에 대한 적응을 학습시키고 강요하려는 의도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이 과도한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센서는 예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대중문화 가운데 굳이 예민할 필요조차 없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분명한 경우를 보게 되기도 한다.

요즘 한창 국민멘트로서 인기있는 오은영 박사님은 육아 상담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새끼"만이 아니라 연예인 등의 유명인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멘토로서 출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상담을 목적으로 부부동반 출연자에 대해 부부 만의 고유한 사생활을 드러내놓고 묻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밝은 곳에서 올바른 '성'을 말한다는 것도 취지와 달리 변색되기 쉬운데, '성관계'를 말하는 것은 더더욱 말초적 흥미로 전락하기 쉬운 위험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출연하는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서 부부 만의 고유한 사생활을 노골적으로, 심지어는 개그의 소재로까지 사용하는 일이 무척 흔해졌다. 단지 시청률만을 생각하여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기 위한 것인지, 실제로 본인에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인지, 혹은 때때로 시청자들을 웃기려는 직업 정신의 발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생계를 위해 출연해서 출연료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솔직하다'라고 공감하기보다는 '과연 부끄럽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훨씬 앞선다.

최근에는 이 프로그램에 트랜스젠터 유튜버까지 출연해서 고민을 상담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을 바꾸는 일을 행하는 데에 있어서 심각한 고민과 갈등 상황에 처했을 것은 당연한데, 이것이 공공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서 드러내어 다루어질 소재인지는 의문이다. 과연 이 또한 '다양성, 포용, 평등' 사상의 발로인지, 아니면 그릇된 사상의 선전 목적인지 의문이다.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고 극단적인 경우로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중에는 아예 동성애자나 이상성애자 커플이 출연하는 관찰 예능을 방송하는 곳까지 있다고 한다. 무엇을 보여주려는 의도일까. 그런 내용을 본 시청자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사사기 시대 전체에 걸쳐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당시에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 큰 문제였다. 사사기의 저자는 당시의 사회를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사회로 정의했다.

지금의 시대는 어떨까?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위한 교묘한 행태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동시에 대중문화를 통해 '다양성, 포용, 평등' 사상을 지속적으로 교육하며 동성애자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훗날 이 시대를 바라본다면 성적인 타락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멸망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다시 나타났다고 평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사기의 시대보다 지금의 시대가 더욱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사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더 지능적으로 '다양성, 포용, 평등'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휩쓸리거나 속지 않도록 리트머스 시험지를 가져다 대보아야 한다. "산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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