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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6. 예배의 순서는 왜 교회마다 다른가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14. 16:38

▒ 어떤 교회는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는데 어떤 교회는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교회는 설교 전에 헌금을 하는데 또 어떤 교회는 설교 후에 합니다. 이렇게 교회마다 예배 순서가 달라도 상관없는 것인가요?
 
▒ 어떤 목사님은 학생들이 예배 시간에 졸거나 집중하지 않는 것을 보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매주 예배 순서를 바꾸어서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번 순서를 바꿔도 괜찮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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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께서는 유학하던 시절에 한국 사람들이 다니는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했는데, 한번은 출석하던 교회에서 서너 집 건너에 위치한 남미 사람들이 다니는 '복음주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예배하는 모습이 전혀 달랐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앉아서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는데, 남미 사람들은 예배 시간 내내 일어서서 춤을 추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 이렇게 예배의 모습이 다른 것일까요? 언제부터 교회의 예배가 서로 달라지기 시작했을까요?
본래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세계 곳곳에 전파된 뒤 많은 세월이 흐르자 각 지역의 예배가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예배하는 회중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 예배자들이 사는 지역의 지리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어떠한지 등이 예배에 반영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 온화한 기후와 풍성한 수확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그 이유는 홍수가 나서 나일 강물이 범람하면 농사를 망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성도들의 가정 경제가 피폐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안디옥이나 로마의 교회는 그러한 기도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예배의 형식이나 순서가 시대마다 또 지역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4세기 서방교회(1054년 두 개로 분열된 교회 중에 로마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가리킵니다. 서방교회는 중세 가톨릭 교회를 거쳐서 로마 가톨릭 교회 및 여러 개신교회로 분화되었습니다.)와 동방교회(1054년 두 개로 분열된 교회 중에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등 당시 로마 제국의 동쪽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가 동방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입니다.)의 예배 형식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방교회 예배 형식>
면죄: 죄가 용서되고 말끔히 씻겨졌다는 선언으로서 전통적으로 안수받은 목사에게 주어진 직무입니다.
입당시편: 예배를 시작하기 위해 입장할 때 주로 시편을 노래로 불렀기 때문에 입당시편이라고 합니다.
그날의 기도: 성도들의 기도를 모아서 한 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드리는 기도로서 모음기도, 본기도, 집도문이라고도 불립니다.
층계송과 속창: 성가대가 부르는 시편찬송이며, 양쪽에 앉은 성가대가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행해집니다. 속창은 보통 서신서와 복음서 사이에 불리는 찬송입니다.
대감사기도: 성찬 기도와 같은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구원사를 요약하는 내용입니다.
수찬 후 기도: 성찬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에 참여한 뒤 드리는 기도입니다.

<동방교회 예배 형식>
제의실 기도: 예배 담당자들이 예복을 보관하는 방에서 예복을 입으면서 하는 기도입니다.
연도: 교창 형식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소입당: 복음서를 들고 행진한 후에 성경봉독과 설교를 하는 의식입니다.
삼성송: 이사야 6:3에 기록된 대로 스랍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로 이루어진 가사를 지닌 찬송입니다.
예비자: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교육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신자들의 기도: 교회 공동체의 간구와 중보가 주된 내용인 기도입니다.
대입당: 성찬의 빵과 잔을 운반하는 행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단 안의 예비식탁에 미리 준비해 둔 빵과 잔을 들고 들어가며 여러 성화상을 거쳐 회중 앞을 지나 봉헌을 위해 다시 제단으로 올립니다.
평화의 인사: 회중 사이에 평화를 주고받는 인사로서 포옹이나 악수 또는 목례를 동반합니다.
거양: 성찬에서 모든 사람이 빵과 잔을 볼 수 있도록 높이 드는 의식입니다.
 
그뿐 아니라 4세기에는 시리아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예배와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예배,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예배 등도 모두 외형적 모습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틀에서는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첫째, 말씀과 성찬을 중심으로 하며, 둘째, 신약과 구약을 공히 읽고,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공생애,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 전체를 요약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예배학자들은 '다양성 속의 일치'라고 말합니다.
예배의 역사는 이처럼 다양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일치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교회를 놓고 볼 때에 그렇다는 것이지 개교회가 제각각 다른 예배 형식을 가져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배의 역사는 오히려 예배 전통(교단)별로 통일된 예배 형식을 취해왔음을 증언합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 가톨릭이나 루터교, 성공회 등에는 모두 그들만의 통일된 예배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일된 예배를 거부하고 개별 회중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17세기 청교도 전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은 예배에 관한 결정권을 국가나 교단이 아닌 개별 회중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모든 개별 회중이 예배의 자치권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각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한 예배서와 예식서가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 순서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배 순서를 마음대로 정하는 것은 자칫 다음과 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너무 불경스럽지 않은가 하는 문제, 둘째, 이러한 변화는 과연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 셋째, 이렇게 마음대로 예배를 바꿀 때에 과연 충분한 신학적 검토가 수반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행해지는 것이므로 회중이 하는 말 한마디, 동작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신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변화를 가져올 때는 충분한 신학적 검토와 토론을 거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