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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7. 예배는 무엇이며, 어떻게 드려야 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15. 00:22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배는 누구를 위하여, 무슨 목적으로 드리는 것인가요? 또 어떻게 드려야 좋은 예배라고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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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그리고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초대교회의 문헌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인용한 『플리니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비두니아 지역의 지방장관이자 비그리스도인이던 플리니가 로마의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기원후 112년에 보낸 것인데, 예배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정된 날이 되면, 그들은 날이 밝기 전에 모여서 그리스도라는 신에게 교창 형식의 찬양을 합니다. 그리고 절도, 강도, 간음, 배교 등 일체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서약하며, 기부를 요청 받을 때에 거절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식을 마친 뒤에 그들은 헤어졌다가 음식을 먹기 위해 다시 모입니다. 그러나 이 식사는 통상적인 것이어서 해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명령에 의거하여 비밀 모임을 금지한다는 칙령을 제가 내린 이후로는 이 모임조차도 그만두었습니다.

이 문헌을 보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절도, 강도, 강간, 간음, 배교 등을 하지 않음으로써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부나 후원 등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사회적으로 칭찬을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로마 황제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매주일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나 휼륭한 시민이 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 동기와 목적과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연로하신 부모를 위해 생신잔치를 해드린다고 가정해 봅시다. 집에서 할까 아니면 식당이나 연회장에서 할까 하는 장소의 문제, 무슨 종류의 음식을 할까 하는 메뉴의 문제, 그리고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복장의 문제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항 외에 생신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식들이 부모에게 드리는 '감사'와 '송덕'입니다. 물론 감사와 송덕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헌사를 바치거나, 노래를 불러드리거나, 부모가 살아온 인생역정을 간추려 발표하는 것은 감사와 송덕을 표현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또 부모에게 절을 하거나, 선물을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생신잔치에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내리는 '한 말씀'도 필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신잔치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식들이 부모에게 바치는 데 있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생신잔치는 그 주인공인 부모를 위한 잔치이지, 그 잔치를 행하는 자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신잔치를 계획하는 자식들이 최대한 신경 써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이 잔치를 통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잔치를 통해서 부모에게 한몫 얻어낼까, 어떻게 하면 하객이 많이 오게 할까, 심지어 어떻게 하면 이 잔치를 통해 나의 체면을 세울까 하는 데만 신경 쓴다면, 부모는 그 생신잔치를 기뻐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러한 자식들은 결코 효성스러운 자식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을 기리고 감사하는 행위이지, 결코 무엇을 받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또 예배는 신자를 많이 끌어모으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참으로 열심히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기독교 역사 100여 년 만에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고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것은 모두 성도들의 '열성적 믿음'이 한국교회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구역예배 등 각종 예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수많은 성경공부, 제자훈련, 선교사역, 봉사활동 등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다고 모든 것이 다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열심이 과연 무엇을 위한 열심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얼굴을 세우고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부모의 생신잔치를 벌이는 자식처럼, 우리도 혹시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예배의 내용과 형식입니다. 특정 회중의 모임을 예배로 볼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그 모임이 과연 옳고 좋은 예배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예배의 내용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예배의 내용이란 예배의 '텍스트'를 말합니다. 텍스트란 쉽게 말해서 예배 중에 행해지는 모든 말을 적어놓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텍스트 속에는 우리가 예배 중에 하는 기도와 찬송에 관한 모든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텍스트를 분석해보면, 우리의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구원론, 우주관, 가치관, 예배관 등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생신잔치의 경우로 돌아가봅시다. 그 잔치를 위해서 자식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 한상 떡 벌어지게 잘 차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아버지 어머니, 이 음식 드시고 아버지 어머니 이름으로 된 전답 다 팔아 저희에게 주세요!"라거나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필요한 것이 많으니 필요한 것 전부를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잔칫상을 아무리 잘 차렸다고 하더라도 그 잔치를 진정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잔치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말하는 기도와 찬송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모여서 입만 열면 "하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세요. 지금 하는 일도 잘되게 하시고, 자식도 잘되게 해주세요."하는 식으로 달라고만 한다면,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별로 기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님의 권능은 비할 데 없고, 그 영광은 무한하오며, 주의 자비는 헤아릴 수 없고, 그 자애는 형언할 수 없사오니 주여, 주의 사랑으로 저희와 거룩한 집을 굽어 살피시고, 저희와 또 함께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의 지극한 자비와 은혜를 내려주소서. 모든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영원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드림이 마땅하나이다.

이것은 동방교회의 한 기도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과 영광에 대한 많은 칭송과 함께 간단한 간구를 아뢰는 이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고 신학적인 기도입니다. 이쯤 되면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다 응답해주실 것만 같습니다.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531장) 이 찬송은 전도집회에서 부르기에는 적합하지만 예배 찬송으로는 부적합니다. 하나님의 송덕을 기리는 찬송이 아니라 불신자를 향해 지금 주님께 나아오라고 촉구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이 찬송을 부르는 것은 마치 부모의 생신잔치를 차려놓고 그 앞에서 자식들이 부모의 송덕을 노래하는 대신 아직 오지 않은 하객들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 지르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주세주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강하신 분께서 제게 큰일을 행하셨으니 주님의 이름 거룩하십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구원의 자비를 베푸십니다.(눅 1:46-55)

이 '마리아의 찬가'는 예배 찬송으로서 적합하기 때문에 대대로 기독교 예배에서 불려왔습니다. 그 이유는 이 찬송이 하나님의 속성, 즉 하나님의 권능과 그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위대하신 일을 나열하여 찬송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송덕이라고 할 만 합니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한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홀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열심히 일해서 대기업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된 그 회사 사장의 딸과 가까워지면서 어려울 때 함께하던 애인을 버리고 사장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시아버지의 생신이 되자, 며느리인 사장의 딸은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와인을 곁들인 값비싼 식사를 대접해드리며 '아버님, 생신 축하드립니다.'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아버지는 평생 시골에서 사신 분이라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나는 며느리가 직접 끓여주는 미역국 한 대접이 먹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비싼 돈을 들여서 생신상을 대접해드렸는데 왜 타박이냐'며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예배를 떠올렸습니다.
예배의 수납자는 분명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명령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가 분명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찬송과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듣는다고 해서 모두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회중 중심'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내용이 아니라 회중이 좋아하는 내용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절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기도와 찬송의 내용, 그리고 예배의 형식과 내용을 신학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배의 본질을 지켜서 예배를 예배답게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진정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최고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