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13. 예배에서 사도신경을 꼭 해야 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0. 28. 14:49

▒ 예배에서 사도신경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도신경을 하지 않으면 이단인가요?
====================================
'신앙고백'이 예배에서 행해진 것은 기독교가 시작된 때부터이며 우리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9-10)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린도전서 12:3)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러한 구절들로 미루어보아 초대교회의 예배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신앙고백이 행해졌으리라 짐작됩니다.
초대교회의 세례 관련 문헌에는 세례를 받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신앙고백은 삼위일체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수제자는 이것을 서술형으로 하거나 질문에 대한 대답의 형식으로 했습니다. 기원후 215년경에 기록된 『사도전승』은 당시 세례식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했는데, 여기에 따르면 수제자는 다음과 같이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세례 받을 사람이 물에 내려가면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그에게 안수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하고 물어볼 것이다.
세계 받을 사람은 "믿습니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즉시 그의 머리에 안수하면서 한 번 물에 침수시킬 것이다.
그 다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고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습니까?"하고 물어볼 것이다.
그가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를 다시 침수시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까?"라고 물어볼 것이다. 세례 받는 이가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세 번째로 그를 침수시킬 것이다.

4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이 신앙고백이 점점 더 확장되었으며 세례교육의 핵심 내용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세례교육은 이 신앙고백의 내용을 '전수'하고 '설명'하며 '반복'하는 것이 중심이었습니다.
4세기 말에는 '사도신경'이 세례에서 행하는 신앙고백이 되었고, 9세기경에는 사도신경이 매일기도회의 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사도신경을 성만찬이 동반되지 않는 말씀 예배의 한 요소로 확립했으며, 특히 사도신경은 성만찬 예전에서 니케아 신경을 대체하는 신앙고백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본래 니케아 신경(정확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4세기경 그리스도론에 대한 여러 이단적 교설이 왕성하게 되었을 때, 특히 아리안주의로부터 올바른 신앙을 지키고자 탄생된 것이었는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 초안이 채택되었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보다 확장된 형태로 통과되었습니다.
주일 정규 예배인 성만찬 예전에서 신앙고백이 행해지지 않았던 것은 성만찬 기도에 신앙고백의 내용과 형식이 이미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세기 후반 또는 6세기 초반의 안디옥 교회나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는 성만찬 예전에서도 신앙고백이 별도로 포함되었고, 11세기에는 로마 예전에도 신앙고백이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파를 초월해서 거의 모든 교회가 주일낮예배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배 중 어느 곳에 신앙고백이 위치해야 할까요? 그것은 신앙고백의 기능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5-6세기 당시 신앙고백은 성만찬 기도와 매우 밀접한 위치에 놓여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신앙고백이 성만찬의 빵과 잔을 받기 전에 행하는 일종의 준비 의식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기 위해서 신앙고백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비잔틴 예배 의식에서도 신앙고백은 비슷한 이유로 대입당과 성만찬 기도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이보다 더 후대에 들어와 서방교회에서 신앙고백이 보다 더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 신앙고백은 복음서 봉독 직후에 행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신앙고백이 선포된 복음말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의 표시로 이해됐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대체로 이런 서방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여 성경봉독 이후에 신앙고백을 위치시켰으며, 성만찬 예전에서 신앙고백을 낭송하는 것을 의무사항으로 만들었습니다.
최근의 예배운동에서는 신앙고백을 설교 이후에 행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학적 이유로서, 신앙고백은 금방 말씀을 선포하신 하나님께 대한 응답의 표현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실천적 이유로서, 성경봉독과 설교가 하나의 말씀이라는 말씀의 단일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즉, 성경봉독과 설교 사이에 다른 순서가 들어가면 말씀의 단일성이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전을 중시하는 교회들, 예컨대 성공회나 루터교회, 마국 감리교회나 미국 장로교회 등이 20세기 후반에 개정한 예배서에 한결같이 반영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사도신경에 대해 좀 더 자유로운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주중의 예배에서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며, 사도신경만 고집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니케아 신경이나 다른 신앙고백을 활용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