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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Q35. 성만찬 때 빵과 포도주는 앞으로 나아가서 받아먹어야 하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2. 12. 20. 16:15

▒ 성만찬 때에 장로님들이 다니면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는 교회가 있는가 하며, 성도들이 각자 앞으로 걸어나아가서 받도록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인가요?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경건하게 기도하다가 받아먹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왜 앞으로 걸어나와서 받아먹으라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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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에서 성만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옆에 앉은 미국인 학생이 빵을 입에 넣자마자 쩝쩝 씹어 먹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런 불경스런 사람이 있나'하는 마음에 고개를 홱 돌려 그 학생을 빤히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생은 목회자의 자녀로서 매우 경건한 학생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경건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빵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너무나 깊이 묵상하다가 자기 앞에 빵이 왔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옆 사람이 슬쩍 옆구리를 치면 그제야 자기 앞에 빵이 온 줄 알고 정성스럽게 빵 한쪽을 집어 입안에 넣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느라 빵을 '씹어 먹을'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하고,  입안에서 빵이 '녹기를' 기다립니다. 이처럼 조용하고 경건하게 성찬에 참여하는 데 익숙해진 한국교회의 성도로서 미국 학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만찬의 의미와 역사를 배우면서 한국교회의 방식이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만찬의 근거와 기원이 되는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최후의 만찬'이라는 성화가 보여주듯이, 분명 한 식탁에 앉은 채로 행해졌을 것입니다. 물론 성화에서처럼 식탁의 한쪽에만 열세 명의 사람들(예수님과 열 두 제자)이 앉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가 상에 둘러앉았겠지요. 최초의 교회들도 소규모의 가정집 같은 곳에서 모였기 때문에 같은 형식으로 성만찬을 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 한 식탁에 둘러낮기가 어려워지자 그들은 다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처럼 사람들이 앉아 있고 그 자리까지 빵과 포도주를 '배달'해 주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식탁 앞으로 사람들이 걸어나와서 받아먹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성만찬의 방식에 관해 자세한 소개를 해주는 최초의 문헌인 『사도전승』은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는 방식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의 수가 넉넉하지 못하면 부제들은 잔들을 들고 경건하게 차례대로 옆에 서 있으십시오. 맨 먼저는 물을 든 부제가 서고, 그 다음은 우유를 든 부제가, 마지막으로는 포도주를 든 부제가 서십시오.

사제들과 부제들이 빵과 잔을 들고 서 있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서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같이 회중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는 관습은 16세기 종교개혁가 중 한사람인 츠빙글리가 고안해낸 방법입니다. 그는 회중이 예배에서 조용히 해야 하고, 능동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만찬 때에도 회중은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아 있도록 하고 봉사자들이 회중의 자리까지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 주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회중이 성만찬의 빵을 받아먹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예배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집전목사와 보조목사는 빵과 포도주를 받은 후에 그것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십시오.

회중이 성찬의 빵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빵을 '주님의 식탁'에서 받아먹는다는 의미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빵을 주신 곳은 분명 '식탁'이었습니다. 본래 식사는 식탁에서 하는 것입니다. 성만찬도 하나의 식사이기 때문에 식탁에서 행해지는 것이 옳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5:1-2)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성찬의 빵과 잔은 원칙적으로 성찬상에서 받아야 합니다. 다만 회중의 숫자가 많아 모든 사람이 성찬상 주위로 모일 수 없을 경우에는, 군데군데 빵을 가진 사람과 잔을 가진 사람이 서고 회중이 그곳으로 가서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서 받아먹는 두 번째 이유는 주님의 몸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성찬은 주님의 언약을 믿으며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주님의 초대에 응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그에게 의미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찬의 떡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는 자발적으로 주님의 몸에 참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만찬은 천국의 잔치를 지금 여기에서 미리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참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