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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을

부활

아리마대 사람 2016. 11. 1. 20:49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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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 지구에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계획하셔서 선지자들을 통해 알려주셨고 선지자들은 자신이 알게 된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에 기록하였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들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 이스라엘 땅 나사렛에서 목수일을 하던 30살의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제자 12명을 불러서 자신을 따르도록 하였으며, 당시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가르쳤고, 믿기 어려운 기적들을 보여주었다. 3년쯤 활동했을 무렵,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정치세력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고, 주변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다.

처형된 지 사흘 뒤, 예수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예수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 다시 살아난 예수는 전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가르쳐주다가 40일 뒤에 하늘로 올라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예수, 하늘로 올라가는 예수를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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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핵심적인 사건은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 사건 자체가 대단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 사건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고 열심을 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 사건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린도전서 15:14)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린도전서 15:17)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에 다시 살아난 사건을 '부활'이라고 부른다.

예수의 '부활'은 끼워맞춘 이야기라고, 집단 최면 현상이었다고, 동화나 전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만일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부활'을 말하는 기독교의 '복음'은 엉터리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믿음도 헛것이 되고, 전도도 헛것이 되며 구원도 헛것이 된다. 기독교 자체가 헛것이 되어 버린다.

'부활'은 이토록 중요한 사건이다. 기독교의 토대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부활'은 왜 이렇게 중요할까...

(마태복음 12:38-40)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부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고, 그 발생이 미리 선언된 사건이었다.

야구만화를 보면... 천재타자가 타석에 서서 배트로 외야를 가리킨 후, 자신이 배트로 가리켰던 정확한 방향으로 투수의 공을 쳐내어 홈런을 만든다. 이 천재타자는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쳐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며, 공이 날아가는 궤적은 그 능력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만일 천재타자가 '나는 마음먹은 방향으로 홈런을 쳐내는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겠지만, 공의 궤적을 본다면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본다면...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표적'은 어떤 대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흔적이나 사건을 가리킨다.

하찮은 직업에 종사했던, 30세에 불과한 예수라는 젊은 목수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가르침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으며, 너무나 생생하고 마음 깊숙이 파고 들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 젊은 목수는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었다. 병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는데, 그 병은 몇 십년을 두고 앓던 병인 경우도 있었고 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 장애인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고도 하며,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앞에 두고 기도함으로써 성인남성만 5000명이 넘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식사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며 당시의 고위 성직자들, 고위 공직자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세상의 가치기준에 사로잡혀 그가 과연 그 사람인지를 인정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맞다는 확신이 있으면서도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싶은 마음의 갈등을 따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 묻는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어릴 적, 전설의 고향을 볼 때, 무서운 장면이 나올 무렵이면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틈 사이로 그 장면을 보고야 마는 모순된 행동과 유사한 갈등, 부인하고 있으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갈등이 빚어낸 질문이다. 물론, 부인하고 싶은 그 마음은 그 어떤 표적이 보여지더라도 끊임없이 이를 반박할 거리를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물음에 예수는 '요나의 표적'을 말했다. 요나의 표적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던 요나와 같이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땅 속에 있는다는 말은 곧 죽는다는 말을 의미한다. 만일 죽은 채로 땅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다면 '밤낮 사흘 동안'이라는 말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밤낮 사흘 동안'이라는 말은 '밤낮 사흘 동안"만"'이라는 뜻이며, 이는 곧 '밤낮 사흘이 지나면 땅 속에서 나올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것은 '부활'이다.

예수는 '요나의 표적'을 통해 두가지를 분명히 선언하였다. 첫째, 죽을 것이다. 둘째, 죽은 후 사흘 뒤에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선언한 대로 다시 살아남으로써 자신이 말한 바를 이루었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었다.

부활은 이 세상이 예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시한 '표적'이다.


(요한복음 2:18-21)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또한, 예수는 또 다른 '표적'으로서 '성전의 재건축'을 말하였다.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너희가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짓겠다'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는데 46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비웃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살아난 예수를 만난 후, 요한은 '성전'의 의미와 '사흘 동안 일으킨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예수는 자신의 육체를 성전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며, 그 육신이 허물어진 상태, 즉 죽은 상태가 된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난 것은 예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대답이자 표적임을 깨달았다.  

예수는 '성전의 재건축'을 통해 두가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선언하였다. 첫째, 죽을 것이다. 둘째, 죽은 후 사흘 뒤에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성전된 육체가 허물어진 후 선언한 대로 사흘 뒤에 다시 세움으로써 자신이 말한 바를 이루었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었다.

요나의 표적과 성전의 재건축을 말하고, 말한대로 이룸으로써 예수는 이 세상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도록 명백한 '표적'을 나타내었다.

 

(마태복음 16:20-21)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요한복음 2:22)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나의 표적'과 '성전의 재건축'이 무슨 의미인지를 제자들이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간단명료하게 '표적'을 말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자신의 죽음을 충분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이며, 실제로 발생하리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고, 알고있다 하더라도 믿지를 않았다. 믿기 어려운 얘기였고, 믿고 싶지 않은, 자신들이 바라지 않는 얘기였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난 예수를 보았을 때 마침내 '표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말이 실현된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제자들은 모두 깨달을 수 있었다.

제자들은 특별한 사람들어있다. 그들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승인 예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말씀을 들었고, 하늘나라의 비밀까지 따로 상세히 배웠으며, 가장 가까이에서 기적을 직접 보고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체포되자 모두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다. 기적을 배우고, 깊이있는 배움을 경험한 3년의 세월도 믿음을 자라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제자들 중에서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던 베드로는 특별히 직접 물 위를 걷기도 했고,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기도 했으며, 마침내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까지 함으로써 예수가 '그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까지 말했던 제자였다. 그러나, 예수가 체포되자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말았다. 특별히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되었음을 고백까지 했으나, 그의 믿음과 고백은 모래 위에 쌓은 집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제자들이 단번에 변하는 순간이 왔다. 예수가 체포되자 도망갔던 제자들, 예수를 모른다고 저주하며 맹세했던 베드로가 어느 순간 변했다. 3년의 깊은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서도 자라지 못했던 믿음이 단번에 자라났다.

그 변화의 역사는 예수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을 본 순간에 비롯되었다. 예수가 말했던 '요나의 표적'과 '성전의 재건축'이 가리키는 표적을 본 순간, 그들은 성경과 예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예수는 자신이 미리 말했던 '표적'을 이루었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이루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었다.

미리 예정된 계획을 정확하게 이루는 일은 그 계획을 정확하게 이해한 존재, 그 계획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존재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만일, 그 계획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세부사항들까지 포함하여 매우 세심하고 치밀하게 수립된 것이라면, 이 계획을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존재는 그 계획을 스스로 수립한 존재뿐이다.
성경에 말씀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 그 이야기의 감추어진 부분까지 세밀하게 이루어낸 예수는 곧 성경의 계획을 수립한 존재인 것이다. 예수는 스스로 말씀하신 분, 사람으로서 지구에 오신 하나님인 것이다. 그리고, '부활'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신 사건인 것이다.
3년 동안 예수를 보면서 살았던 제자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으로는 고백을 하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진심으로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살아난 예수를 본 후에 성경과 예수가 했던 말씀을 믿을 수 있었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성경과 예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것, 성경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하는 것, 그것이 '부활'의 역할이다.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성경과 예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믿음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것, 그것이 '부활'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