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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 타락 (데이비드 포슨 목사)

아리마대 사람 2023. 8. 12. 22:04

죄의 기원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이루어 가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고, 창조를 완성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가 '심히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그 숫자는 아주 적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 세상에 무슨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요? 도대체 언제 그런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요?
창세기 3장이 이에 대한 답을 줍니다. 피조물의 중심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3가지 관계, 즉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자연계,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 이 3가지 관계가 모두 크게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피조 세계가 저주를 받았고,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타락한 후 짊어지게 된 3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람은 출산의 고통을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  사람은 평생 힘들게 수고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셋째, 사람은 결국에는 죽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은 출산의 고통을 갖게 되었고, 왜 평생 힘들게 수고하며 살게 되었고, 왜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된 걸까요?

이 3가지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철학자들이 많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는 선한 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신도 있다'고 주장했고, 어떤 사람은 '신의 존재는 선하지만, 때때로 신도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어떻게든 '죄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며, 죄의 기원에 대한 4가지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첫째, 죄악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둘째, 죄악은 먼저 인간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사단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셋째, 죄악은 육체와는 관계가 없고, 도덕과 관련된다.
어떤 철학자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부분이 죄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육신이 죄의 유혹의 근원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성경적인 답이 아닙니다. 죄는 도적적인 것입니다.
넷째, 죄 자체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죄악된 사람만 존재한다.
세상에는 죄악된 물건은 없습니다. 죄악은 명사가 아니고 형용사와 같습니다. 사람이 죄악을 저지르고 죄악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며, 죄악은 본래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락

 

창세기 3장은 신화가 아니라 실제 사건을 기록한 것이고, 따라서 명확한 시간과 장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 역사에 발생한 이 도덕적 비극은 우화도 아니고 신화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파충류 같은 동물이 언급되는데, 발이 있는 것을 보아서 뱀보다는 도마뱀에 더 가깝습니다.
주일 학교에서 이 대목을 설명할 때는 모두들 사과를 따서 들고 있는 뱀의 모습을 그려서 설명합니다만, 사실은 뱀처럼 생긴 파충류입니다. 그리고 말도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3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것은 마귀가 위장한 것입니다. 마귀가 제일 잘하는 것이 위장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 동물에게 말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셋째, 그 동물이 악령에 붙잡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명하시니 귀신이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서 돼지 떼들이 갈릴리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던 것을 볼 때, 귀신이 짐승에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동물 속에 들어가서 점령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어떤 동물로도 위장할 수가 있습니다.
사단은 강력한 존재지만, 아담과 하와보다 더 연약한 동물로 위장해서 접근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뱀을 얕보았고 쉽게 넘어 간 것입니다. 사단보다 더욱 교활한 존재는 없습니다.
사실 사단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천사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천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릅니다. 세상에는 천사가 확실히 존재하며, 인류의 존재만큼이나 확실히 존재합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사단이 하와에게 먼저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다른 사람을 잘 믿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다른 사람을 쉽게 믿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인도에 쉽게 따라가고, 거짓말에 쉽게 미혹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더욱 중요한 점은, 사단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뒤엎고 하와를 한 가정의 주인으로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그 때 하와의 옆에 서서 단 한 마디 말도 거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종종 TV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됩니다.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큰 고난이나 큰 기쁨 등 어떤 큰 일을 겪은 부부를 초청해서 인터뷰를 하는데, 남편은 옆에 앉아서 말을 별로 하지 않고, 주로 아내가 대부분의 말을 합니다. 가정의 머리로서 남편이 말을 해야합니다.
당시에 아담이 직접 나서서 사단과 말다툼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듣지 못했고, 아담이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서서 사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하고 따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3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는데, 오늘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서 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수정, 변경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사단은 이 3가지를 모두 사용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단은 성경에 아주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는 고의적으로 성경을 왜곡하여 이 3가지 잘못을 모두 범하였던 것입니다.
설교자들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수정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단의 궤계를 모르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2:11)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사단은 당시에 하와를 꾀었던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를 꾀려고 합니다.
사단의 속임수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말씀과 계명을 '의심'하게 합니다.
둘째, 마음에 '욕망'을 일으킵니다.
세째,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항상 이런 전략을 사용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는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게 하거나 의심하게 하거나 원망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욕망이 일어나게 하고, 그 욕망을 더욱 불타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사고칠 준비를 갖추게 합니다. 그러다가 그런 환경이 오면, 드디어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위반하는 행위를 저지르게 합니다.
사단이 이런 방식으로 하와를 속였습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는 이전에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속성을 한 가지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거룩성입니다.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언급하지 않지만, 창세기 3장에서는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반드시 죄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이 똑똑히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죄인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의 메시지입니다.

성경에는 산문과 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문은 마치 신문기사처럼 사실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백도 없이 글을 빽빽하게 붙여 씁니다. 산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생각'을 전달하고 싶으실 때 사용하며, 그분의 생각에서 우리의 생각으로 전달됩니다.
시는 많은 여백을 가지고 있고, 문장도 짧습니다. 시는 그분의 마음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감정'이 전달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한 구절이 시였고, 창세기 2장에서도 한 구절이 시입니다. 성경의 첫 두 장의 두 구절 모두 '사랑의 노래'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면서 이를 시로 낭송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아담이 아름다운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이를 시로 낭송했습니다. 당시 그가 첫 수술을 마치고 방금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입니다. 당시에 아담이 했던 말을 히브리 원어로부터 직접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와! 바로 이거야!'
하지만 몇 주 정도일까요? 얼마의 기간이 지나니 그다지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여자를 주셨다면서 원망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쉽게 변합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시는 하나님의 전혀 다른 감정을 전달하는데, 거기에는 분노, 실망, 불쾌함 등이 담겨있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에덴이 부패한 것을 보신 하나님의 느낌은 아주 강렬했습니다. 인간이 그 아름다운 상태에서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다 타락한 것을 보셨고, 이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시를 통해 탄식하셨습니다. 

흔히 창세기 3장을 '타락장'이라고 합니다. 이후 창세기 4-11장은 3장이 가져온 결과를 보여줍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아담이 하와를 탓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아담이 하와를 주신 하나님을 탓하지 않았더라면, 아담은 그런 심한 판결을 피할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아담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라고 말했다면, 하나님은 그 즉시 그를 용서하셨을 것이고, 아마 그 후의 역사도 바뀌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부르시면서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창세기 3:9)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계셨지요. 이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심문 과정의 첫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물으신 내용은 '네가 내게 용서를 구해 보겠니?'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더러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찾아가서 부르신 것입니다. 자기 죄를 인정해야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범죄한 그들이 마땅히 해야할 도리였습니다.
그런데 불쌍한 아담은 나무 뒤에 숨어서 '제가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창세기 3:10)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창세기 3:7)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무화과나무 잎의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몸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서글프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이 죄에 합당한 벌을 당연히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의 '일'과 연관된 중한 벌을 받았고, 하와는 '가정'과 연관된 중한 벌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 파충류는 뱀으로 변했습니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뱀을 키우는 것이 취미인 친구가 있습니다. 자기 집 차고에 많은 뱀들을 키웠습니다. 친구의 차고를 방문했을 때, 친구가 큰 '보아뱀' 한 마리를 들고서 뱀 몸통의 비늘의 삼분의 이 정도를 벗기니 그 아래 아주 작은 발이 보였습니다. 그는 '모든 뱀에게 발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이 너무 짧아서 땅에 닿지 못히고 춤추듯 배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입니다. 그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저는 그 날 거기서 창세기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