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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신약성경을 신뢰할 수 있나요?

아리마대 사람 2023. 10. 29. 01:11

 

성경의 후반부인 신약성경에는 거의 14만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정확한 원문을 알지 못하는 곳, 즉 이문(異文, textual variant )이 40만 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충격적이죠?
신약성경 원본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에 쓰여진 사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이문에도 불구하고 2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본문의 신성한 계시를 믿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메시지에 평생을 바칩니다.
우리는 과연 신약성경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바트 어만 교수의 주장


바트 어만(Bart Ehrman) 교수는 우리가 신약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본의 첫 번째 사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원본의 사본의 사본이나 원본의 사본의 사본의 사본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사본, 훨씬 늦게 만들어진 사본이다."
그는 이어서 신약성경의 내용이 참고되는 원고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치유받길 원하는 나병 환자에게 화를 내셨나요? 어떤 원고를 읽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죽으셨나요? 어떤 원고를 읽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신약성경은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나요? 어떤 원고를 읽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예수님은 간음을 저지른 여인을 직접 마주하셨나요? 어떤 원고를 읽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 영감설, 즉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작성되었다는 견해를 가집니다. 그러나 성경 영감설은 성경이 쓰여질 때부터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다면 이 견해가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어만의 주장을 심각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면 기독교가 진리라고 보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은 정말 신뢰할 수 없는 것일까요?

 

신약성경의 필사본 수


신약성경의 원본이 현존하지 않는 것은 고대 문서들이 파피루스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파피루스가 종이보다 오래 지속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의 원본은 2세기 말쯤에 먼지로 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것은 신약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고대 문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을 다른 고대 문서들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아래 그림은 각 고대 문서에 대한 두 가지의 정보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해당 문서의 남은 필사본의 갯수로서, 노란색 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원본 문서의 작성과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의 작성 사이의 시간의 길이로서, 빨간색 점선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즉 노란색 원이 클수록 좋고, 빨간색 점선이 짧을수록 좋습니다.
타키투스가 기록한  <로마 편년사>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부터 네로 황제의 치세까지의 로마 제국의 역사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학자들에 의해 신뢰받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최초의 필사본은 원본으로부터 750년이 넘었고, 현존하는 33개의 원고만 있습니다. 다른 고대 문서도 비슷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필사본의 개수 면에서 1757개로 비교적 풍부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을 이 문서들과 비교해 보면 어떻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원어 그리스어 필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원본 이후 40년만에 쓰여졌습니다. 우리는 약 5,800개의 그리스어 원고를 가지고 있고, 라틴어 원고는 1만 개, 다른 고대 언어의 원고는 5천에서 1만 개에 이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교부들이 편지와 해설서에 인용한 신약성경이 100만 건이 넘습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필사본을 잃었다면, 비록 어렵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신약성경 전체를 복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필사본 중에는 4세기에 쓰여진 신약성경의 완전한 필사본인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와 원본이 쓰여진지 50년 이내에 쓰여진 <파피루스 52번>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신약성경 사본은 왜 이렇게 많고, 이 사본들은 어떻게 퍼졌을까요?

 

신약성경은 어떻게 보존되었을까?


예수님의 삶과 사역, 죽음과 부활을 기록한 사복음서가 가장 많이 복사되었고, 바울 등의 서신이 뒤를 이었습니다. 어떤 사본들은 공동체 내에서 배포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어떤 사본들, 특히 서신서의 사본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곳으로 여행하면서 알지 못했던 서신서를 발견하여 그것을 복사해 자신의 공동체에게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고립된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은 나중에 모아져서 함께 묶입니다. 이 중에 복음서 필사본인 <파피루스 75번>과 <파피루스 66번>, 그리고 바울 서신서 필사본인 <파피루스 46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개의 필사본은 2세기 말쯤에 기록되었습니다. 4세기 초에 로마의 박해가 끝난 후, 신약성경의 전체 사본은 <코덱스 바티카누스>와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와 같은 코덱스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 깔끔하고 정확하며 독립적인 전달 경로가 여럿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저자들이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대상을 위해 작성한 이 사본들은 서로 매우 일치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초기 필사본의 전파를 통제할 집단이 없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성경의 본문에 대해 어느 한 사람이나 그룹이 통제권을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는 우스만과 같은 인물이 없었습니다. 교리를 추가하거나, 신학을 변경하거나, 가르침을 제거하는 등의 주장은 모두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권력을 행사하여 본문 전달이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도록 강제할 수 없는 박해받는 소수집단이었습니다."
데럴 보크(Darrell Bock)와 대니얼 월리스(Daniel Wallace)는 <예수 폐위>라는 책에서 <파피루스 75번>과 <코덱스 바티카누스>를 그러한 전파 계통의 예로 꼽습니다.
"교부들의 저술에서 볼 수 있는 증거 외에도 필사본들 자체가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랜 필사본들 가운데 두 가지인 <파피루스 75번>과 바티칸 사본 <코덱스 바티카누스>는 특이하게도 강한 일치를 보여준다. 또 이것들은 오늘날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필사본들 가운데 일부다. <파피루스 75번>은 <코덱스 바티카누스>보다 약 125년 앞서지만, <파피루스 75번>이 <코덱스 바티카누스>의 조상은 아니다. 오히려 <코덱스 바티카누스>는 <파피루스 75번>보다 더 오래된 조상을 필사한 사본이다. 특정 본문에서 이 두 필사본을 결합하여 읽어보면 틀림없이 2세기 초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원본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필사본이 많을지라도 원본의 메시지를 가져올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본문비평이란?

학자들은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사본의 세심한 분석을 통해 원본 메시지를 복구합니다.
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오타를 자주 내고 이번에도 역시 오타를 냅니다.
안년, 오느은 날씨가 참 좋지?
안녕, 오늘은 날씨가 찮 좋지?
안녕, 오늘은 날씨가 찮 좋시?
안녕, 오늘은 날씨가 찮 좋징?
안녕, 오늘은 날씨가 찮 좋쥐?
...
...
근데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 오타 없이 문자를 보낼 때까지 시도를 반복적으로 합니다. 결국에 30번의 시도 끝에 포기하게 됩니다. 이제 모든 문자에는 적어도 하나의 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내려고 했던 메시지를 알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이것이 바로 본문 비평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약성경에 알지 못하는 40만 곳, 즉 이문(textual variant)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이문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문이란?


제임스 화이트는 바트 어만과의 토론에서 이 40만 개의 이문을 무의미한 이문, 원래의 본문일 수 없는 이문, 의미 있고 원래의 본문일 수 있는 이문, 이렇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했습니다.
'무의미한 이문'이란 의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문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잘못된 철자가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요한의 헬라어 이름은 두 개의 'ν'로(Ιωαννην) 쓰이지만, 일부 원고는 하나의 'ν'로만(Ιωανην) 쓰입니다. 그러나 'ν'가 한 개든 두 개든 언급되는 사람이 요한이라는 것을 충분히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신약성경에 요한이라는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두 가지 이문이 카운트됩니다.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이러한 이문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원래의 본문일 수 없는 이문'이란 분명히 원문에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이문이 나중에 쓰여진 필사본에만 있을 경우에 이 범주에 속합니다.
'의미 있고 원래 본문일 수 있는 이문'에는 세 가지의 형태가 있습니다.
첫 번째의 유형은 단순히 필경사가 복사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는 오류입니다. 이 오류의 유형은 가장 흔합니다.
두 번째의 유형은 조화라고 불리는데, 필경사가 더 많은 문맥을 제공하기 위해 다른 글에서 찾을 수 있는 문맥을 갖다 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을 베끼는 누군가는 특정 부분의 문맥이 부족하다고 느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을 덧붙입니다.
세 번째의 유형은 필경사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새로운 오류가 발생될 수도 있습니다.
의미있고 원래 본문일 수 있는 이문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40만 개의 이문 중 1500개에서 2,000개 사이의 이문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하는데, 이는 전체 이문의 1% 미만입니다.

 

신약성경의 원문이 분실되었을까요?


원문은 완전히 분실되지 않습니다. 바트 어만이 브루스 매츠거(Bruce Metzger)와 함께 쓴 책에서 인정했듯이 일단 이문이 나타나면 그 이문의 존재는 지속됩니다.
"신약성경의 본문전통의 전달은 극도로 인상적인 정도의 끈기로 특징지어진다. 일단 특정 본문 이문이 나타나면 그것은 완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바로 신약성경의 본문전통의 전달의 압도적인 양이... 원문의 내용을 확립하는데 확신을 제공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필경사가 필사본 A를 복사하여 필사본 B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실수한다고 해서 필사본 A의 형태가 상실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낼수록 신약성경 형태의 개수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원본의 형태가 다른 버전과 혼합되어 있는 것이지,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이는 95%가 아니라 105%의 직소 퍼즐 조각을 갖는 것과 유사합니다. 95%만 갖는다면 직소 퍼즐을 완성할 수 없지만, 105%를 갖는다면 퍼즐을 완성하고 5%를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어만의 주장을 다시 살펴보기


하지만 우리는 바트 어만이 원본에 무엇이 적혀있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증거를 고려해 보면, 이 유명한 신약성경의 학자가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바트 어만은 브루스 매츠거와 함께 쓴 책에서 이문이 분실되지 않는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다른 책에서 어만은 기독교 신앙과 교리가 이문의 존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그럼 어만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어만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문을 완벽하게 보존하셨어야 한다는 것이 어만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신학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과 관련된 모든 것에 100%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트 어만은 근본적으로 원본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급진적 회의론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은 피해야 하지만, 맹신과 절대적 확신의 입장도 피해야 됩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 비교해도 너무 높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성경 자체가 기독교의 기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구원의 힘을 가진 것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지 글자 그대로의 보존이 아닙니다.

 

결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복음이 전파되고 전승될 수 있도록 쓰여지고 보존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 자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잘 보존되었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성공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부터 전파되기 시작한 그 복음, 박해와 순교의 시기에 기록되고 베껴져 전파된 그 복음과 같은 복음입니다.

 

※ 동영상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