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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데이비드 포슨 목사)

아리마대 사람 2023. 8. 18. 01:39

창세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암시한다는 해석의 열쇠를 손에 쥔 후에 다시 창세기를 읽으면 갑자기 많은 곳에서 예수님의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다섯 가지를 찾아보겠습니다.

① 창세기에 기록한 족보에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족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는 족보가 등장하며, 누가복음 3장에서는 창세기에 나오는 24명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님은 셋의 자손이고, 셋의 아래로 요셉의 아들까지 뻗어 내려갑니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보게 되는 족보가 바로 예수님의 혈통인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예수님을 믿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나는 이 혈통에 속하며 이것이 나의 조상의 족보가 됩니다. 성경의 족보가 바로 나의 족보가 되는 것이며, 이 혈통이 바로 나의 선조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읽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역사가 아니라 나의 역사이며,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역사를 계승 받은 것입니다.

 

② 창세기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요셉에게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삭에게서도 예수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일러 준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2:2)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 산은 나중에 골고다라고 불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거기서 자기 독생자를 번제로 드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신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당시 이삭은 이미 30세 초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결정에 항거할 수 있었지만, 복종하여 결박당했으며 번제단 나무 위에 올려졌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고, 또한 제물을 따로 예비해 놓으셨는데, 그것은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한 마리의 숫양(ram)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묘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교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 항상 예수님을 순한 어린 양으로 묘사했는데 사실은 숫양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포슨 목사님의 의견입니다)
그래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숫양이로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에서 제물로 드린 것은 어린 양이 아니고 뿔이 달린 일 년 된 숫양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5:6에서도 예수님을 머리에 뿔이 일곱 개인 숫양으로 묘사했는데, 건장한 하나님의 숫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숫양을 아브라함에게 공급해주셔서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자신의 새 이름을 주셨는데 그것은 '여호와 이레'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심,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의 뜻이고, '나는 너의 공급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몇 세기 후에 같은 산에서 이삭의 나이와 같은 한 사람이 숫양처럼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왕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살렘 도시의 왕이었으며, 살렘은 후에 예루살렘이 됩니다.
창세기 14장 당시에 아브라함이 사로잡혀간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친척을 구하러 갔었습니다. 그가 승리하여 빼앗겼던 재물과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소돔 왕이 마중나왔고, 또한 살렘이라는 이교 도시의 왕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도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살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의 왕인 멜기세덱은 아주 신기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왕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아주 신기한 조합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이런 사람이 없습니다.

왕이며 제사장인 사람이 떡과 포도주를 가져와서, 아브라함과 그의 부하들에게 주어 원기를 회복하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전리품, 곧 재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브리서 5:10)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④ 야곱의 사닥다리에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집에서 도망쳐 나온 날 밤에 돌을 베개로 삼고 잤는데, 꿈에서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사실 사다리보다 에스컬레이터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움직이는 사닥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닥다리가 하나는 위로 올라갔고, 하나는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천사들이 그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했지요. 사닥다리의 끝은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하늘이었습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난 후, 자기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십일조는 모세 시대에 와서 생긴 율법조항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이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은 하나님과 거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창세기 28:20-22)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당신이 나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 주면 내가 십분의 일을 당신에게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은 하나님과 흥정할 수 없고, 하나님과 계약할 수도 없습니다. 계약이나 언약은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 맺는 것입니다. 야곱이 나중에 고생을 하고 나서야 이 점을 깨달았습니다.
수 세기 이후에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를 가리켜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라고 묻자 그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라고 예수님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아주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이것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들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야곱의 사닥다리', 곧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사닥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⑤ 창세기 3장의 약속에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내리시는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뱀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남성 단수인 '여자의 씨'입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정도로는 죽지 않지만,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은 치명상입니다. 장래 어느 날, 하나님이 사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실 것을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후손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강한 자를 결박하고, 그의 세간을 빼앗아 온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3:27)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을 말합니다.

한 사람은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순종한 사람입니다. 순종하지 않은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순종한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5:19)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아담이고, 순종한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그의 말은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사건 모두가 동산에서 발생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했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또 하나의 대조가 나오는데, 그들 두 사람은 각자 새로운 후손을 발전시켰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인종이 있는데, 아담은 '호모 사피엔스'의 시조이고, 예수님은 '호모 노보스'의 시조입니다.
사람은 모두 아담 안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후에는 새롭게 된 사람 '호모 노보스'로 변합니다.
신약 성경은 '새로운 사람', 곧 영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인류'를 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완전히 새로운 지구에서 살게 되며, 나아가 완전히 새로운 우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창조에 참여하신 예수 그리스도


신약 성경에서 사람을 아주 놀라게 하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주의 창조에 참여하셨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창세기 1장의 작업에 참여하셨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책상과 의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그분께서 나무를 먼저 만드셨고, 우리는 목재를 준비해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설교하시기 전에 그분께서 먼저 산을 만드셨고, 그 산을 설교 장소로 삼으신 것입니다.
나사렛 동네 출신의 목수가 뜻밖에도 전 우주를 창조하신 분인 것입니다!
한낱 나사렛 동네의 목수인 예수께서 어떻게 이렇게 기묘한 창조역사를 이루셨는지요!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를 읽을 때, 거기에 계신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셨습니까?

(창세기 1:26)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그 '우리' 속에 삼위일체로 계셨습니다.  
약 50여년 전에 알게 된 사실은, 지구 위의 사람들이 사실은 계란 껍질 위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표면은 편편한 암석 판 조각들의 연결을 통해 구성되어 있고, 그 아래는 용암 액체입니다. 이 액체의 대류와 지구 표면의 밀도차에 의해 판이 끊임없이 이동하며 서로 부딪히는데, 그 경계선이 서로 맞물리면서 지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금이 간 계란 껍질과 같은 이 불안정한 판 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이 '판 이론'은 성경의 진술과 일치합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세계는 원래 '하나의 마른 땅'으로만 창조되었는데, 이 판이 서로 갈라지고 떠돌아다니다가 오늘날의 여러 대륙으로 나눠진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지질구조 판 이론'을 발견했을 때, 새로운 단어를 생각하여 이 이론에 이름을 붙여야 했습니다. 그 이름은 'tectonic plates'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tectonic'이 헬라어로 예수님의 직업인 '목수'를 의미하는 'tecton(τέκτων)'의 형용사라는 것입니다.
아주 절묘한 용어입니다. 우리가 거처하고 있는 이 지구의 껍질이 실은 '목수의 판'입니다.
그 목수의 이름은 바로 나사렛 출신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에서 예수님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1장부터 예수님을 논했고, 마지막에도 요셉을 통해서 예수님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고, 또한 그를 위해 지어졌습니다.

(골로새서 1:16)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창조의 여러 의문이 해결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칭합니다.

(요한복음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의 '말씀'의 뜻은 그저 '말'뿐만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복음서를 쓰기 오백 년쯤 전에 헤라클라이토스라는 사람이 에베소에 있었는데, 그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학생들이 동물의 생태와 기후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을 알고 '너희들이 무엇을 관찰하든지 왜 그런 현상이 있게 되었는지 배후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원인'이 '말씀', 곧 헬라어 '로고스(λόγος)'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가지 학문과 학설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고스'에서 파생된 '~로지(logy)'는 '~학'을 뜻합니다.
생물학(biology)은 생물의 행위를 연구하고,
동물학(zoology)은 동물의 행위를 연구하고,
심리학(psychology)은 사람 심리의 행위를 연구하고,
사회학(sociology)은 사회의 행위를 연구하고,
기후학(metrology)은 기후의 행위를 연구합니다.
각각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는 다만 이미 창조된 우주의 어떠한 행위나 거동의 현상만 알 수 있을 뿐이며, 왜 우주 만물이 이 창조되어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정답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전 우주의 모든 것의 원인인 '말씀(로고스)'입니다.
(요한복음 1:2-3)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모든 만물이 '말씀(로고스)'이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어졌습니다.

'말씀(로고스)'이신 그분이 모든 만물을 지었습니다.

(요한계시록 4:11)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능이 그분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