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더운 여름. 이 더위는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며칠전 뉴스기사에서 본 이 사진은 중국의 어느 리조트 사진이라고 하는데,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그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애쓰는지, 더 나아가서 중국이 어떠한 나라인지까지도 알려주는 사진처럼 느껴져서 참 흥미롭다.
저렇게 사람들이 다닥다닥 몰려있다보면 필경 서로 밀고 밀치게 되기 마련일테고, 서로 안 밀리겠다고 아둥바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어떤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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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말씀 중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마태복음 11:12)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먼저, 이 말씀에서는 정해진 기한이 나타나 있다. 그 기한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특별히 천국에 관한 사건이나 말씀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곧 다음의 말씀을 찾을 수 있다.
(마태복음 3:1-2)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세례 요한이 전파한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이다. 세례 요한이 외쳤던 이 말씀은 광야에서의 40일 간의 금식기도 후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전파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4:17)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세례 요한이 말한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천국의 소망을 가리킨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길을 열어주실 실제적인 천국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례 요한이 입을 열어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한지 오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직접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으니, '세례 요한의 때부터'라는 말씀은 곧 예수님께서 천국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때, 곧 구속의 사역을 시작하신 때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마치게 되며,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니 '세례 요한의 때부터'라는 말씀은 '천국이 가까이 왔음이 선포된 때', 이를 조금 비약해서 이해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때'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만일 이렇게 이해해도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때'는 언제일까?
이 '때'는 세례 요한이 천국을 전파한 때, 예수님께서 천국을 전파한 때보다 훨씬 오래 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신 것이니, 그 '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역사를 계획하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 '때'는 곧 인간이 죄를 지은 때이다. 인간이 죄를 지은 그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를 통해 죄악 가운데에 빠져버린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선포하셨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동정녀를 통해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마귀를 멸하실 것이라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역사를 선포하셨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선포하셨다.
'세례 요한의 때'의 시작은 바로 이 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는 조금 낯선 말씀이 있다.
'침노'라는 단어는 자주 만나는 단어가 아니다. '침노'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만났던 것은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던 '이순신 장군' 노래의 가사에서의 왜적들의 행태였다. '이 강산 침노하는 적의 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 무찌르시어~'
'침노'라는 단어는 사전을 참고할 때 그 뜻이 다음과 같다.
① 남의 나라를 불법으로 쳐들어가거나 쳐들어옴.
②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그러니까, 천국을 쳐들어가는 자가 천국을 빼앗는다는 말, 또는 성가시게 천국을 치근덕거리며 달라붙는 자가 천국을 빼앗는다는 말로 이해가 된다. 흔한 표현인 "천국에 가려면 천국을 사모해야 한다"는 정도의 말이 아니다.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힘으로 그것을 차지하느니라"라고 나타나 있다. 천국을 차지하는 방법은 점잖고 우아하게 느껴지지 않고, 거칠고 무식하게 느껴진다.
이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천국에 대한 말씀은 누가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가복음 16:16)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이 말씀도 점잖고 우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들어간다'는 표현 대신 사용된 '침입한다'는 표현은 '침노한다', '침노해서 빼앗는다'는 말씀에 가깝다.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면, 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밀치고 들어가느니라"
'밀치고 들어간다'는 말씀은 위의 사진에 나타난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으로서는 단순무식하게 '쳐들어가서 힘으로 차지하는 방법' 또는 '밀치고 들어가는 방법'이 언급되어 있다. 백화점 타임세일코너 앞에서 입구가 열리자마자 달려가서 서로 싼 옷을 사려고 몸싸움을 하는 아줌마들의 모습과도 같은 이 방법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예수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신 말씀 중에는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5:3, 10)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 말씀은 능동적으로 천국을 차지하거나, 밀치고 들어가는 방법이 아니라 피동적으로 천국을 선사받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지만, 일정한 자격이나 기준이 제시되어 있고 이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므로 이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고와 노력에 관해서는 특별히 10절의 말씀이 보다 더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의를 위한 박해'에 관한 말씀을 참고하고자 한다.
우선, 의를 이루는 일, 곧 죄와 싸우는 데 있어서는 피흘리기까지 대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2:4)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고난을 참으셨음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고 싸워야 한다. '참고 싸워야 한다'는 말씀은 '침노한다'는 말씀의 거칠고 무식함과 이어지는 듯 싶다.
또한, '의'를 이루는 방법으로서 믿음으로 의를 이룰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로마서 4:3-5)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의를 위한 박해'에는 '믿음을 위한 박해'가 포함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믿음을 위한 박해는 히브리서 11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브리서 11:24-26, 33-38)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문자 그대로를 참고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난과 수모를 받은 모세의 경우가 나타나 있으며,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문, 조롱, 채찍질, 결박, 옥에 갇힘, 돌로 침, 톱으로 켬, 시험, 칼로 죽임, 유리함, 궁핍, 환난, 학대를 당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의 경우가 나타나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으며,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으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성을 바랐으며,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이 믿음으로써 바라본 그 성, 그 본향, 그 상이 바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이 누리는 복.
그들은 천국을 본 것이 아닐까.
마태복음 5:10의 말씀을 따르면, 이렇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천국이 저희의 것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
즉, 천국을 본 사람들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고 이를 견디었으며, 그들은 그들이 바라던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이 된다.
그들이 알고 가졌던 믿음은 다음과 같다.
(고린도후서 5:1-2)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짓지 않은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
이것이 천국이 아닐까.
그리고, 천국을 덧입기를 사모하는 간절함.
이것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천국에 쳐들어가서 힘으로 차지하는 방법' 또는 '밀치고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이 간절함은 천국을 바랄 때 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을 찾을 때에도 필요한 것이다.
(잠언 8:17)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천국은 간절함을 통해 침노하는 곳, 복음을 통해 침입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천국은 간절함을 통해 침노해야만 하는 곳, 복음을 통해 침입해야만 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무식하게.
이렇게 무식하게 굴어야 하는 이유는 그곳이 우리가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일, 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지옥으로 가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니, 무식하게라도, 우격다짐으로라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국에 가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있다. 여리고 성 밖 길 가에 앉아있던 맹인 거지 바디매오이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입장에서 말씀을 들여다보면 천국에 가는 모습을 배울 수가 있다.
(마가복음 10:46-52)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에 관해 전해들은 바가 있었던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어떤 병이든지 낫게 해 주시며, 소경의 눈도 뜨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예수님을 찾아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는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이 사실을 생각하는 매일마다, 그의 심정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웠겠는가.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마도 그의 머리 속에서는 이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심정이었을 것이다.
여느 날처럼 길 가에 앉아있던 바디매오의 귀에 너무나 놀라운 말이 들렸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자신의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바디매오는 소리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가 한번만 외쳤겠는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자신의 외침이 예수님께 닿을 수 있도록 외쳤을 것이다. 계속해서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분께 찾아가기만 하면 자신이 앞을 볼 수 있도록 고침을 받을 것 같은데도 도무지 찾아갈 방법이 없는 현실. 그런데, 그 분이 지금 자신의 근처에 계시다는 것이다. 바디매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을 볼 수 없는 바디매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지, 예수님과 자신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순간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소리지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금 침착하게 생각하자면, 앞을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의 추측에 따른 상황 인식이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계시지 않을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의 목소리가 닿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계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의 모든 갈구를 담아 내어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다. 그 사람들에게 바디매오는 시끄럽게 떠드는 맹인 거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실했다. 사람들이 꾸짖는 소리가 자신의 외침을 가로 막을까 두려워진 바디매오는 오히려 더욱 크게, 더욱 목놓아 소리 질렀다. 이 순간, 그의 외침은 그에게 있어 생명줄, 그것도 잡을 기회가 단 한번 뿐인 생명줄인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것 없이 소리질렀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시끄러운 맹인 거지에 대해 더욱 불쾌하게 느꼈을 그 때, 예수님께서 맹인 거지를 부르셨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바디매오는 거지에게 소중한 재산이었을지도 모를 겉옷도 내버리고 벌떡 일어나 그 분의 음성이 느껴진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을 예수님께 말씀드렸고, 그는 보게 되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것은 그가 바로 '침노하는 자', '침입하는 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식하게라도, 우격다짐으로라도 가고자 하는 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앞을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가 잠잠히 있었다면...
만일, 소리를 질렀더라도 작은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더라면...
만일, 잠잠하라고 꾸짖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 잠잠해졌다면...
만일,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면...
그는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을 때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겉옷도 내버렸다.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향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무식하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을 때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을 때, 겉옷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향하는 모습.
이 모습인 것이다.
눈을 뜨고 싶다는 간절하고 강렬한 바램으로 소리를 지른 바디매오처럼, 천국의 소망을 지닌 사람들은 그 소망이 간절하고 강렬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눈을 뜰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소리를 지른 바디매오처럼, 천국의 소망을 지닌 사람들은 그 소망이 절실해야 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 바디매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절실하게 믿어야 한다.
주이에서 시끄럽다고 하던지 조용히 하라고 하던지,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예수님을 붙잡은 바디매오처럼, 그렇게 이 세상의 것에 마음두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붙잡고 믿는 삶이 천국을 '침노'하고, '침입'하는 삶인 것이다.
천국은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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